십대여 자존심을 가져라
- 가볍고도 가벼운 십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자화상 '그놈은 멋있었다'

이제 영화도 세대별, 나이별, 성별에 따라서 제작하는 맞춤 제작 방식으로 다양하게 관객의 입맛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별다른 문화 활동이 없는 대한민국 십대들은 극장에 자주 온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화계의 큰손에 해당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한국 영화에서 하이틴 영화가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흔히 '얄개세대'로 통하는 이 영화들은 까까머리, 갈래머리 고등학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그러나 같은 하이틴 영화라도 지금과 그때의 영화를 보면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난다.

요즘 만들어지는 십대 영화의 특징이 있다. 일단 욕이 많다. 거의 욕끝마다 말이 나오는 수준이다.

가볍다. 주제도 특별한 것이 없고, 스토리도 별다른 것이 없고,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서 그냥 웃기고 자극하고 어설퍼도 즐거운 세상이라고 말한다.

폭력과 선정이 난무한다. 입시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으나 주변의 기대는 높은 기형적인 성장기를 보내야하는 불쌍한 대한민국 십대들에게 영화는 폭력과 선정으로 얼룩진 설탕가루를 마구잡이로 뿌려댄다. 이빨이 썩든 비만이 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무조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에는 끝이 있다.

원작자 귀여니는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안티싸이트를 보유한 고소득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이 20대초반에 벌써 세 편이나 영화화되고 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 병리적인 현상의 중심에서 엉터리 작가에서 십대의 대변자까지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인기 작가가 되어버렸다. 별다른 생각없이 움직였는데 큰 파문이 이는 경우가 세상에는 종종 있다. 귀여니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했고 사회는 열정적으로 수용했다. 결국 잘잘못의 문제는 아니다는 말이다. 귀여니는 문화적인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개성 있는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의 은총에 비해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닐 능력과 정신을 보유하고 있는가는 향후 행보에서 다시금 보여지게 될 것이다. 귀여니는 아직 젊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십대를 위한 영화다. 따라서 십대의 코드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분명 십대를 위해서 설탕가루로 중무장하고 사카린보다 더 단맛을 뿜어대기 위해서 고심했다. 그러나 단맛만 맛이 아니다. 쓴맛도 분명 맛이다.

멋져보이는 놈과 착한 년의 하이틴 로맨스

상고에서 제일 잘 나가는 지은성(송승헌)은 도일여고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겁도 없이 험악한 리플을 단 한예원(정다빈)을 따라다니며 응징하려고 한다. 도주하던 예원은 뜻하지 않게 은성에게 키스하게 되고, 두 사람은 아주 가볍게 엮이게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얼짱, 몸짱, 쌈짱 지은성은 화려한 폭력으로 주변의 남자들을 응징하고 뭐든 자기 맘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솔직하고 배짱만 좋은 예원은 좌충우돌 사랑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은성에게는 비밀이 있고, 아픔도 있고, 결국 떠나게 된다.

십대를 구원하라

아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 자라서 어른이 된다. 십대는 한순간인 것이다. 십대는 평생의 인성이 형성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일 이십년이 흘러서 다시 만난 친구들이 십대의 생각과 품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정말 힘들지만 아울러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불쌍한 십대들은 이 귀한 시간을 대학 입시를 위한 무한 경쟁에 몰입하며 보내고 있다. 매년 졸속으로 바뀌는 대학입시와 학부모가 학교에 오면 의례 촌지를 주기 위해서라는 부정부패한 열악한 교육제도가 있는 나라의 십대는 괴롭다. 대한민국 교육제도는 이제 괴물들을 양산하기 위해서 애쓰고있고 십대들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십대의 모습이 바로 기성세대의 확실한 자화상이다.

폭력과 선정과 가벼움으로 대변되는 십대 영화가 짜임새도 깊이도 없는 현재 우리의 문화와 기성세대의 의식구조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태에 편승해서 십대의 유행을 조장하며 돈을 챙기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의 영화를 논하며 너무 심각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극장에 심각하기 위해서 가는 사람은 없고, 십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심심풀이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좀 무거워야 할 것 같다.

미래의 문화 소비와 생산의 주체라는 점에서 십대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원이자 시장이다. 이 귀한 곳에 단 맛만 생각하고, 독성을 무시한 체 사카린을 뿌려댄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과거 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하이틴 영화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규제가 있었음에도 나름대로의 멋과 맛을 지녔다. 웃음과 함께 감동을 주었고 사랑과 우정과 정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하이틴 영화는 그냥 웃고 즐기는 소비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십대 문화는 척박하다. 어느 누가 십대 문화를 위해서 투자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일었는가? 그냥 이것저것 편승해서 한탕 우려먹자라는 심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서 뒤통수를 후려치게 되어 있다.

십대여 자존심을 가져라

십대는 어른이라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아이라고 생각하면 아이이고, 십대라고 생각하면 십대가 되는 나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존심에 있다. 십대는 반드시 어른이 된다. 자신이 과거에 열광했던 것에 대해서 뒤돌아보아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것도 역시 그 순간의 자존심이다. 어른이 되어서 뒤돌아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열정과 자존심을 가지기 바란다.

십대를 위한 영화에서 꼭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일단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는 정말 곤란하다. 리얼리티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꼭 욕설을 섞어서 십대의 언어적인 자존심을 비하시킬 이유가 없다. 욕설을 섞지 않아도 얼마든지 리얼하고 십대를 대변하는 영화가 가능하다. 엄마 아빠가 함께 볼 수 있는 십대 영화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어른이다. 십대의 코드를 맞추더라도 최소한 십대에게 생각할 공간을 주어야한다. 단맛과 아울러 다양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도도 조절해야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십대들의 자존심과 그 십대라는 순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한다. 자신의 가족이라면 사카린을 무작정 뿌려대겠는가?

가벼움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폭력과 선정만이 십대를 대변한다는 식의 구조와 발상은 십대를 거의 무뇌충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양한 영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다양한 십대도 존재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이 공부하는 기계로 찍어낸 똑같은 제품처럼 보이겠지만 십대의 다양한 개성과 수준도 존재한다. 너무 가볍게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품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십대가 보면서 즐거워하고 가족들이 보면서 공감하는 십대 영화는 거의 없었다.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십대 영화는 과거의 하이틴 영화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와 과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가벼움과 그 천박스러움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 대중 영화의 현주소다.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들이 두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