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과의 교감, 그들이 살아서 돌아왔다! 인형사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닮은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은 자신을 만들어준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여자가 죽게 되자 그 여자를 사랑하던 남자가 살인범이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게 된다. 이를 지켜본 인형은 남자의 무덤가를 헤매고 자신의 사랑을 되살리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무생물에도 때로는 영이 깃든다. 그것은 인간이 무생물을 섬기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지닌 생명체이며 오직 자신의 주인만을 찾아 헤맨다. '인형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랜드호텔식의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공포

핸드폰도 통화 이탈권으로 나오는 오지의 숲 속 미술관. 이곳에 조각가 해미, 여고생 선영, 포토그래퍼 정기, 직업 모델 태승, 인형과 늘 말을 하는 영하는 구체관절인형을 만드는 재원에 의해 초대를 받고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그랜드호텔 형식의 구조를 빌어 시작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괴기스러운 사건의 연속은 인물간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증폭으로 극한의 공포를 자아내야 하는 출발선이다.

공포의 체험에서 한정된 공간이나 밀실은 인간의 공포를 극도로 몰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때문에 밀실 안에서의 이야기는 도망갈 틈이 없다. 도망갈 틈을 주거나 이야기의 허점을 노출하게 되면 그때부터 더 이상의 공포는 없고 개연성의 부재만이 영화를 보는 이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서로를 떠나지 말고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라

미술관에 초대받은 첫날부터 해미의 눈에만 보이는 미나. 미나는 해미를 반갑게 해후하지만 해미는 미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초대된 인물들은 하나씩 죽어간다.

인형과 말을 나누는 영하의 죽음을 시작으로 초대된 자들의 불안은 시작된다. 전부 모인 자리에서 화장실이 급해 자리를 뜨게 되는 선영과 정기. 화장실 안에 들어간 선영이 살해되는 장면을 사진에 담게 되는 정기는 살인자의 모습에 기겁을 하고 차를 몰고 도망치다 결국 사고로 죽는다.

한정된 공간에서 죽음을 맞닥트린 인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서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자리를 벗어나면 죽는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 공포감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표현되지 않는다. 벗어나지 말아야함에도 벗어나게 되고 비밀스럽게 죽어가야 함에도 죽음 앞에 놓인 공포가 전해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관객은 과연 공포를 전달받을 수 있을까?

살인은 철저하게 살인자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정기의 사고로 인한 죽음, 여기서부터 영화는 공포영화의 규칙을 위반하게 되고 영화는 관객에게 공포를 느끼라고 강요라도 하듯 뻔한 설정들을 보여준다.

정기가 찍은 사진에 찍힌 살인자의 모습은 다름아닌 해미다. 그 사진 한 장으로 태승은 너무나 쉽게 경찰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사건을 성급하게 마무리지으려 한다. 의외의 범인,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살인 동기는 시작부터 너무 많은 정보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다 알고 보는 듣는 귀신이야기처럼 식상한 공포가 또 있을까?

그랜드호텔 식의 한정된 공간 안의 공포가 옥스퍼드 천처럼 꼼꼼하고 실크처럼 부드럽게 잘 짜여진 천이 아니라 거친 삼베처럼 시나리오 역시 거칠고 성기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극한의 공포, 그것은 도망갈 수도 없는 그래서 맞서야 함에도 범인을 알 수 없어 맞설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