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숲이 안 되는 이유
- 반전에 목숨걸다 사망하는 부족한 스릴러 '거미숲'

영화 '식스 센스' 이후에 스릴러 장르는 반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겼다. 마지막에 부르스 윌리스의 깨달음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 아주 기를 쓴다. 하지만, '식스 센스'는 마지막 반전이 없더라도 매우 잘 만들어진 짜임새를 갖춘 아주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너무 안일하게 보는 것 같다.

디지털 귀신이 판치는 영화판에서 고전적인 아날로그 귀신 이야기를 아이의 눈과 정신과 의사를 통해서 조명하면서, 가족과 학교에서 소외된 아이가 결국 가족의 사랑과 자신감을 찾아가는 스토리는 일품이다. 주제도 명확하고 관객들과의 소통과 공감도 충분히 얻어낸다. 게다가 극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는 편집과 스토리는 매우 뛰어나다. 결코 마지막 반전에 의해서만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반전만으로 좋은 재미있는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은 큰 오판이다. 수많은 영화가 저지른 이 실수를 '거미숲'이 어김없이 답습한다. 게다가 목숨 걸었던 반전도 별로 신통치가 않다.

송일곤 감독은 이미 전작들을 통해서 작가적인 감각과 예술적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적인 촬영, 편집, 음악 등의 면에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음산한 숲에서 조고 되는 긴장을 잘 포착한 촬영과 복잡한 시간을 오고가는 어려운 스토리를 풀어낸 외형적으로 만들기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스릴러에서 장르를 혼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나 방법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별거 아닌 이야기를 황당하게 부풀렸다가 싱겁게 끝나버린다. 마치 '진짜 어려운 문제를 낼게, 이거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 함정도 있어, 풀 수 있을까?'하고 뜸을 들이다 '알았어, 문제 낼게. 음, 22 곱하기 2가 얼마냐?'라고 묻는 것처럼 어이없을 만큼 황당하다.

거미숲에서 벌어진 치정 살인극

방송국 PD로 일하는 강민(감우성)은 아내 서은아(서정)가 갑자기 비행기 사고로 죽자 심한 충격을 받는다. 이때 아나운서 황수영(강경헌)이 나타나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황수영과 방송국 국장은 거미숲 별장에서 살해되고 강민은 범인을 쫓던 중에 교통사고로 뇌 수술을 받게 된다.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강민은 자신의 기억을 짜맞추기 위해서 애를 쓴다. 강민의 부탁으로 친구인 형사 최성현(장현성)은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노력한다. 강민의 기억은 점점 충격적인 사건 현장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설픈 장르의 혼합과 논리적 개연성의 부족

영화 초반 '거미숲'은 시간을 넘나드는 편집과 긴장감 있는 촬영으로 관객을 잔뜩 기대에 부풀게 한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긴장은 풀어지고 영화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 하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치고 나가는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무시한 것이다. 초반 재미는 계속 하향세를 유지하다 나중에는 제멋대로 끝나 버린다. 마지막 반전도 황당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머리가 나빠서 마지막 반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상은 흩어져 있던 복선들이 전혀 개연성이 없고, 에피소드들이 엉뚱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서정의 1인 2역 역시 의아하기 짝이 없다. 꼭 1인 2역을 맡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출연료를 아껴서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다면 할말은 없지만 극의 혼란만을 가중시켜서 짜증을 동반하게 하는 무책임한 제작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 기억 속의 기억을 오고 가는 스토리는 아주 개연성이 부족하고 살인 사건에 귀신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나타나면서 스토리는 어처구니없게 변하면서 죽은 자들을 위로하려는 듯 하다가 잔인한 치정살인극으로 막을 내린다. 복선과 반전으로 애를 쓰며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원래 이야기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뻔한 치정 살인 사건 수사물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관객들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는 것은 참으로 얄팍한 수작이다. 초반 형사반장의 말이 사건 전모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는 관객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키는 기본적인 주제가 없다. '올드보이'에서 보여주었던 사회의 금기를 깨는 목숨을 건 사랑도 없고, '식스 센스'에서 보여주는 어머니와 어린 아들의 가족애도 없다.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의 정서를 줄 건지가 명확하지 않다. 관객들에게 뭘 줄건 지가 명확하지 않으니 당연히 재미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머리싸움에서 기가 막힌 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어디선가 많이 본 스토리고, 어디선가 아이템과 스토리를 차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자의식의 세계를 다룬 스릴러가 어디 한 둘인가? 전체적으로 그냥 안쓰러울 뿐이다.

영화계에서 자꾸 새로운 시도, 참신한 실험 작품이라는 말을 하는데, 관객은 절대로 실험용 쥐가 아니다. 실험과 시도는 실험실에서 하는 거지 겁도 없이 인체 실험을 함부로 하는 것은 결코 자랑의 대상이 아니다. 장르를 혼합하고 관객들과의 머리싸움을 원한다면 관객의 수준에서 충분히 만족할만한 시나리오와 모든 준비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제작이 되어야한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상품이다. 상품은 완성도가 뛰어나고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한다. 적어도 돈을 내고 들어온 관객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작가주의도 있고, 예술 영화도 있고, 다양한 시도도 있는 것이다. 기본도 안 되어 있는데 폼만 잡는 것은 반드시 고쳐져야 하는 관행이다.

조금만 더 완성도에 신경을 쓰고, 시나리오를 매만지고 공을 들였어야 한다.
이런저런 실수와 실책이 더해져서 결국 '거미숲'은 '아무도 살지 않는 숲'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