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건방진 찬욱씨

- 전작에 못 미친 어설픈 올드 보이의 후예

한국 영화에서 올드 보이가 준 충격과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독특한 스타일, 뛰어난 연출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박찬욱 감독은 한국 영화를 업그레이드 시킨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모두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감독에게는 몇 가지 숙제가 있다. 우선 올드 보이가 결코 행운이나 요행이 아닌 자신의 뛰어난 실력으로 이룬 업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차기작의 중압감을 극복하며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매우 드물다는 징크스를 깨야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숙제는 미흡했고, 문제는 대충 엉성하게 풀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마 한국 영화 제작의 구조적인 시스템을 극복하지 못한 것과 감독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크게 밀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전작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에서 작업을 했지만 전작에 크게 못 미치는 작품이 나왔다. 결국 올드 보이가 우연히 만들어진 행운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 작품에서 증명해야하는 더 어려운 숙제를 스스로 떠안게 되었다.

친절한 금자씨의 어설픈 복수극

13년 반을 복역하고 모범수로 출감한 이금자. 그녀는 13년전 6살 어린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다는 죄로 복역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모범적인 생활로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을 얻으며 동료 죄수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출감해서 빵가게에 취직하고 동료들을 모아서 복수극을 준비한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백선생에게 복수를 준비하는 금자. 백선생도 금자의 복수에 대비책을 세우면서 처절한 복수극은 불을 뿜게 된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닌 스토리

감독은 영화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과 방법을 대부분 자유롭게 사용했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자신의 느낌과 의지와 방식을 말리거나 방해하는 조건이나 사람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스타일은 더욱 뛰어나졌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축을 이끌고 가기에는 박감독 스타일의 카리스마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체로 한번 크게 성공하면 좀 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차기작은 전작과 연관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 두 가지 공식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매우 크게 남는다. 전반기 한국 영화가 너무 부진했기에 이 영화에 거는 기대가 상대적으로 매우 컸기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올드 보이가 가진 논리적이고 개성적인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올드 보이가 탄탄한 스토리에 독특한 스타일을 입힌 것이라면, 친절한 금자씨는 탄탄한 스타일에 독특한 스토리를 입히려고 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주기 어렵다. 누구나 공감하는 논리적인 스토리는 하루아침에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세간의 기대와 마켓팅의 힘이 있으니 흥행에 기본은 하겠지만 박감독의 열성 팬과 그의 참신한 후속작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적잖이 실망감을 안겨 주겠다. 마치 작년의 이십승 투수가 올해는 10승도 버거워 보이는 기분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은 매우 민감하다. 조금만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바로 실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롱런하는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가 우선이다. 박감독이 제발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실패한 감독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성공이라는 환상이 재능을 갉아 먹어버리는 너무도 뻔한 진부한 스토리를 다시 보고 싶은 관객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