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로맨스가 안 되는 이유
- 한국판 '노팅힐'을 꿈만 꾸다만 '내 남자의 로맨스'

멜로 영화는 솔직히 뻔하다. 그런데 관객들은 뻔해도 본다. 그 뻔한 스토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에 사랑보다 흔하면서도 세상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것이 또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랑을 했거나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랑은 생활 밀착형에게다 모두 갈구형이라는 말씀. 살아가면서 연쇄살인을 접하면서 고심하거나 치고 받는 액션에 참여할 가능성에 비하면 멜로의 가능성은 아주 높다. 따라서 관객들은 나름대로 멜로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이다. 뻔한 영화니까 뻔하게 대충 만들면 되겠지? 김정은이 나와서 웃기는데 안 볼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은 한국 영화 퇴보와 공멸의 신호탄이다.

영화는 분명 '노팅힐'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유명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휴 그랜트가 만약 여자친구가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에서 스토리의 모티브가 출발했다. 또한 노팅힐에 모여 살던 아기자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병풍처럼 깔고 전개되는 이야기는 수유리라는 공간에서 모여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바꿔서 전개된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고 재미있는 생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재미있는 영화인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의 여자친구가 빠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멜로 영화는 대층 이것저것 끌어다가 만들어서는 대충 망치게 되어 있는 거다.

7년만에 찾아온 남자 친구의 스캔들

평범한 지하철 역무원 김현주(김정은)는 7년째 방역회사에 다니는 김소훈(김상경)과 애인으로 지내고 있다. 프로포즈 받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유명 여배우 은다영(오승현)이 끼어들어서 김소훈을 흔들어댄다. 함께 생활하는 죽마고우들인 수유리 5총사는 힘을 합쳐서 김현주의 남자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최고의 여배우 근처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악전고투 하던 중에 은다영이 수우리 5총사의 집에 초대된다. 그리고 친구들마저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다. 사면초가에 몰린 현주는 과연 남자친구 소훈을 지켜낼 수 있을까?

너무너무 새로움이 없다

이미 이 이야기의 스토리를 '노팅힐'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모르겠다는 사람도 비디오 가게에 가서 '노팅힐'을 빌려보면 된다. 스토리를 가져 온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물 배치도 비슷하고 가장 유명한 자기 인생 최악을 말하는 유명한 장면은 그대로 베껴 썼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채워 넣을 자신이 없었으면 '노팅힐'의 스토리를 가져와서는 안 되는 거다. 가져왔으면 최소한 관객들에게 정말 새롭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노팅힐'이 꽤 된 영화니까 지금 관객들 중에는 그 영화를 안 본 사람도 많지 않을까? 하는 요행수를 바라며 영화를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결국 비평에서는 어설픈 차용이니, 떨어지는 완성도니 하는 말 듣게 되고, 흥행에서는 성패 여부를 떠나서 쉽게 안주해서 가려고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제발 부탁이다. 한국 관객은 한국 영화에 대해서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 벌써 한국 영화의 이런 태도에 식상한 관객들이 많고, 한번 떠난 관객은 웬만해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또한, 과다한 기업 상품 광고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엘라어쩌구하는 풍선이 전지현을 구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재수없는 존재가 된다. 돈을 내고 들어왔는데 수시로 들이대는 상품 간접 광고와 기업 선전은 분명 관객을 무시하는 처사다. 상품 간접 광고는 영화 홍보와 자금을 위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노골적이고 무차별적이어서 오히려 상품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라는 것이다. 살짝 살짝 애교로 들어가야 맛이 나는 것이지 큰 화면에 여기저기 들이미는 것은 영화의 품격과 상품을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광고주들도 조만간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 전에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발 시트콤을 버려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TV를 안보는 모양이다. 이제는 제발 시트콤을 봐라. 그리고 시트콤처럼 영화를 만들지 않기 바란다. 관객들은 TV에서 해주는 시트콤만으로 충분하다. 영화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억지스런 상황을 연출하고, 오버해서 연기하고, 대충 가볍게 웃기려고 들면서 그때그때 에피소드위주로 2시간 짜리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꾸 실험해서 깨달아서는 안 된다. 깨닫는 사이에 한국 영화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다. 관객은 실험실의 쥐가 결코 아니다.

영화는 초반에 김정은의 애드립과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로 대충 강세를 나타내지만 이내 힘을 잃고서 우왕좌왕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고 어설프게 상황을 전개하고 비틀거리다 간신히 영화의 막을 내린다. 이유는 시나리오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고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재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시트콤처럼 웃기려고 애를 쓰면서 진을 뺏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웃음은 자연스럽고, 깊은 맛이 있어야한다.

'노팅힐'에 나오는 조연들과 버금간다고 선전을 했지만 여기서의 조연들은 무작정 웃기기 위해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초반말고는 별로 웃기지도 않는다. 게다가 웃음에 깊이도 없다. 한마디로 시트콤처럼 웃기려고 무지하게 애를 쓴다.

감히 관객을 가르치다

중반을 넘어서 종반으로 가면 영화는 갑자기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며 관객들을 가르친다. 사랑과 우정을 논하면서 관객들에게 주제를 전달하는데 그 어설픔에 놀라울 뿐이다. '노팅힐'에는 그런 장면이 없는데 그건 왜 못 베꼈을까?

연출과 연기도 거의 김정은의 애드립에 의존하고 스토리와 상황의 비약이 심해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죽어들어 간다. 결국 연기자들도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끝나는 셈이다.

논리의 비약도 심하다. 캐릭터들의 상황이나 설정이 개연성을 잃고서 이야기를 짜 맞추기 위한 억지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쓸만하다 싶은 상황이나 대사는 번번이 자꾸 되풀이된다. 수능시험과목이라도 되는지 관객들에게 암기를 강요하는 듯 하다.

멜로 영화는 섬세함이 생명이다. 감정선을 잘 살리고 웃길 때 웃기고 감동을 줄 때 감동을 주면 된다. 막무가내로 들이대면 막무가내로 깨지게 되어있다.

현재 한국 영화는 스크린 쿼터라는 보호막도 있고, 극장도 많아져서 일단 만들면 관객들과 쉽게 접하며 웬만큼은 팔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시장 구조 속에서 이런 류의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하면 결국 조만한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시장의 구조 개편을 요구 당하게 된다. 스크린 쿼터가 언제까지 한국 영화를 지켜줄 수는 없다. 적어도 기본기와 참신성을 갖춘 작품들이 시장에 나와야한다.

결국 '노팅힐'을 안 보았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비디오로 빌려보고 분통을 터트리던지, '노팅힐'을 보았다면 한국 영화의 수준 앞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극장 문을 나설 수밖에 없다.

나라면 '노팅힐'을 보겠다. 아니면 '노팅힐'을 다시 보겠다. 그도 아니면 TV에서 '노팅힐'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