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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일탈과 로맨스

영화 <로맨틱 아일랜드>는 퇴출 위기에 놓인 까칠하고 시니컬한 독불장군형 CEO ‘재혁’(이선균)과 항상 밝고 명랑하지만 불쾌지수 높이는 직장과 오직 자신만 바라보는 가족들 때문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생계형 캔디 ‘수진’(이수경), 여친에게 차이고 영문과 출신이지만 영어 울렁증으로 매번 면접에서 떨어져 편의점 알바로 연연하는 착한 것 빼고는 내세울 것 없는 어리버리 백수 ‘정환’(이민기), 빡빡한 스케줄과 매일같이 반복되는 악플로 심신이 지친 자기밖에 모르는 도도한 톱스타 가수 ‘가영’(유진), 그리고 뇌종양에 걸려 수술 대신 가족에게 남겨줄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살 여행을 결심한 남편 ‘중식’(이문식)과 이러한 사정도 모른 채 오로지 남편과의 첫 해외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한 아내 ‘연숙’(이일화) 등 저마다의 사연과 힘들고 짜증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필리핀의 섬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난 네 청춘 남녀와 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를 보라카이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경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언뜻 멀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네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듯 하지만 영화는 결국 여행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 듣고 필리핀에 오게 된 재혁은 호텔 로비에서 계속 사진을 부탁하는 수진의 들뜬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만 자신과 정반대인 성격을 지닌 생기발랄한 수진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고,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나온 수진도 재혁의 난감한 부탁을 선뜻 들어주며 같이 돌아다니면서 까칠하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재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친구의 초대만 믿고 무작정 보라카이로 온 정환은 우연히 톱스타 가영을 공항에서 만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놓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짐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그녀의 당당하고 도도한 매력에 빠져들고,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는 가영은 어리버리한 정환 때문에 하루의 일정이 엉망이 되지만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순수한 정환의 매력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흔히 봐왔던 설정에 뻔한 스토리 전개,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은 결말이지만 배우들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며 세 커플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분해 펼쳐냈다. 이선균의 훈훈함, 이수경의 상큼 발랄함, 이민기의 능청스러움과 엉뚱함, 유진의 도도함 등 배우들 각자의 매력이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다. 자살 소동을 펼치는 이문식의 특유의 코믹 연기도 볼만하다. 그래도 상투적인 이야기 탓에 재미와 감동은 반감된다. 특히 세 커플이 서로 연결되거나 교차되지 못한 채 각기 따로 전개되는 구성은 아쉽다. 낯선 곳에서의 백마 탄 왕자와 톱스타의 로맨스를 꿈꾸는 관객이라면 추천하나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면 재고해 봐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