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방이여! 정체를 밝혀라!

<링>을 비롯해서 <피어닷컴>, <폰>, 심은하의 드라마까지 구구절절 생각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바로 단편영화 <눈물><아쿠아 레퀴엠 Aqua Requiem>로 유명한 임창재 감독의 장편데뷔작<하얀방>이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등장하는 병석의 시나리오와 닮아있다. 병석의 시나리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영화들을 완벽하게 짜집기한 형태였다. 명길은 병석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제작한 후에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얀방>이 이와 비슷하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얀방>의 이야기는 너무 심하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을 골고루 섞어서 펼쳐놓았을 뿐이다. 물론 그 시작이자 모든 것이 되는 영화는 바로 <링>이다. <하얀방>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분별한 짜집기의 형태는 관객을 무시하는 처사일까.

모방이라는 것도 자기화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하얀방>엔 자기화라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교묘한 짜집기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한 여인의 저주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전염되고,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은 보름만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 여인의 저주에는 낙태에 대한 아픔과 사랑에 대한 배신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사람은 최형사(정준호)와 한수진(이은주)이다. 이 정도면 <링>과 <피어닷컴>, <폰>, 까지 노골적으로 배합되어있다. 정말 의아해진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한번도 없었단 말인가. 짜집기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으니 칭찬이라도 해주어야한단 말인가. 몇몇 충격효과의 장면들 말고는 아무런 존재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기화의 노력도 없는 무분별한 모방을 무엇이라고 칭해야할까.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