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볼거리, 빈약한 이야기

곽경택 감독, 장동건·이정재·이미연 주연의 화제작 <태풍>은 조국과 가족을 잃어버리고 한반도에 복수를 하려는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 분)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해군장교 ‘강세종’(이정재 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대결을 그린다.

동남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해적 씬은 미국 선박에서 핵 위성유도장치인 리시버 커트를 탈취해 전 세계에 긴장에 빠뜨린다. 씬은 20여년 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귀순하여 했으나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한 한국 정보의 외면으로 북으로 돌려 보내지던 중 온 가족이 눈앞에서 몰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증오를 키우며 살아온 인물. 국가정보원은 비밀리에 해군 대위 강세종을 착출해 태국으로 급파시킨다. 어릴 적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강세종은 한반도를 향한 씬의 복수를 막기 위해 태국, 한국, 러시아에서 집요한 추적을 펼치고 씬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 최명주를 찾아내고 그와 거래를 한다. 최명주를 통해 분단 현실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씬의 가족사를 알게 된 강세종은 잠시 흔들리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반도를 향한 씬의 복수를 막으러간다.

한국, 러시아, 태국의 3개국 로케이션의 거대한 스케일과 볼거리를 무장한 영화는, 탈북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조금씩 무뎌져 가고 있는 분단국가의 상처와 비극을 담아낸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력이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장동건의 눈빛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또,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과 총격신 뿐만 아니라 김블(Gimbal)이라는 특수장치를 이용한 폭풍우 속의 실감나는 선상 액션신은 한국영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비해 다소 뻔한 스토리와 전형적인 캐릭터로 인해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히 씬과 강세종의 대결구도 속에서 그들의 고뇌와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내질 못하고 있다. 또, 단순히 아버지를 따라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심을 가진 강세종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또 그를 만난다면 그때 꼭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라는 강세종의 다짐은 울림을 주질 못한다. ‘장동건-이정재’라는 스타파워가 <킹콩>을 누르고 거센 흥행 몰이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영화 <태풍>은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을 통해 역대영화사상 가장 많은 513개 스크린에서 12월 14일 개봉된다.

2005.12.05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