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보드를 타고 전속력으로 허공을 질주하는 것만이 숨막히는 일상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외로운 반항아 짐 호킨스. 우연히 전설로만 전해오는 보물성 지도를 얻게된 그는 주저 없이 보물을 찾아 광활한 우주로 떠난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짐 호킨스의 모험 가득한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세계가 새 천 년을 맞이할 준비에 들떠있던 20세기 말엽, 애니메이션의 절대 강자 월트 디즈니사 역시 21세기 영화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디즈니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존 애니메이션의 틀을 완전히 깨버리는 초 미래지향적 작품이어야 했다. 이미 <인어공주> <알라딘> 등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해온 애니메이션의 두 거장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 감독은 17 년 전 써놓았던 손때 묻은 시나리오 하나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것은 지난 세기의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했던 꿈의 프로젝트, 바로 <보물성> 이었다. <보물성>에 영감을 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불후의 명작 <보물섬>이 그랬듯, 존과 론의 <보물성>도 너무 시대를 앞서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면서 애니메이션 기법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존과 론은 지금이야말로 <보물성>의 제작을 실행에 옮길 때라는 확신을 가졌다. <보물성>은 "최첨단 과학시대에 어울리는 최첨단 애니메이션"이라는 디즈니의 21세기 캐치프레이즈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혁명적 작품이었던 것이다.

어드벤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한 세기가 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미지의 세계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사로잡는다. 마음속에 잠재돼 있는 모험심에 불을 붙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부추기며, 상상의 지평을 넓혀준다. 헐리우드는 일찍부터 <보물섬>의 강렬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서스펜스, 환상적인 어드벤처, 뛰어난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50 여 편이 넘는 영화 <보물섬>을 만들어냈다.

이 위대한 고전은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에게도 깊은 감명과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존과 론은 영화사에 오십 몇 번째로 기록될 또 하나의 <보물섬>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보물섬>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만을 빌려 미래세계의 무한한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완전히 새로운 SF 어드벤처를 창조해냈다. 그것이 현재까지 집약된 최첨단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하여 탄생시킨 <보물성>이다.

17년 전, 존 머스커와 론 클레멘츠는 <인어공주>의 아이디어와 함께 가히 혁명적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보물성>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꺼내놓았다. 디즈니사는 <인어 공주>보다 <보물성>에 더욱 열광했지만, 그 때만해도 디즈니 스튜디오는 2D 애니메이션에 의존하고 있었고, 당시의 기술로는 그들이 원하는 획기적인 입체감을 살려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일을 기약해야만 했다.

론과 존은 <인어공주>(1989)의 대성공 후, <알라딘>(1992), <헤라클레스>(1997)로 이어지는 빅 프로젝트를 계속 맡아 여념이 없는 중에도 틈틈이 <보물성>을 다듬어나갔다. <헤라클레스>가 완성된 후 드디어 <보물성>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보물성>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산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지만, 테크놀로지가 그들의 열정을 따라잡는데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존과 론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딥 캔버스 기법으로 2D와 3D의 합성이 가능해지고, 이어서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VIRTUAL SETS (가상현실세트) 와 INTERACTIVE LIGHTING 기법이 개발되어 360도 3차원 입체촬영이 가능해지자 그들의 오랜 꿈은 스크린에 완벽하게 실현될 수 있었다.

<보물성>의 진정한 보물은 지금까지 개발된 CG 기법들 중에서도 최첨단 CG 애니메이션 기법들만을 총망라해 놓은 "종합 테크놀로지 세트"일 것이다. <보물성>에서는 기존의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다양한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2D와 3D를 절묘하게 결합한 5 D 애니메이션 기법의 완성은 애니메이션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사건이었다. 5 D 기법은 3D SF 애니메이션에 내포된 근본적인 약점을 완전히 보완해주었다. 기존 3D SF 애니메이션의 최대 약점은 바로 3 D 캐릭터에게서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지나치게 테크놀로지를 강조한 화면과 전체적으로 차갑고 싸늘한 느낌 때문에 우리는 쉽게 감정이입을 못하고 거리감만 느끼게 된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잔주름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인간과 99% 흡사하게 제작했다는 3D SF <파이널 환타지>의 캐릭터들조차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SF 환타지를 표방한 <보물성>에 참여한 350여명의 아티스트, 애니메이터, 테크니션들은 기획 초기부터 따뜻하고 친근감 넘치며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온 심혈은 기울였고,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찾아낸 해법이 바로 5 D 캐릭터였다.

<보물성>에서 최초로 선보인 야심적인 7:3 컨셉 역시 영화 속에 표현된 공상적 세계와 온갖 기상천외한 장치들, 그리고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들을 관객이 마치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친숙한 것으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놓은 심리적 장치다. 이 7 : 3 비율은 영화 배경, 세트, 캐릭터, 소품, 스토리, 음악, 미술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빠짐없이 적용된다. 전체 이미지 중 2 D 그래픽 70% 3D 그래픽 30%, 18세기 풍의 고풍스러운 무대 배경과 각종 소품에 7 : 3으로 장치된 하이 테크놀로지, 몸의 70%는 인체, 30%는 기계인 사이보그 해적 존 실버, 인간의 모습에 개 또는 고양이의 모습이 7 : 3으로 섞인 도플러 박사와 아멜리아 선장, 클래식 7 : 모던 팝 3 의 비율로 흐르는 배경 음악 및 주제가, 심지어는 주인공 존 실버와 짐 호킨스의 인물 비중에도 7 : 3의 법칙이 적용된다. 처음 실버와 짐이 만나는 시점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실버가 7, 소심하게 움츠러든 짐이 3이지만, 차츰 중반을 넘어서며 짐이 자신감을 되찾고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면서 전세는 역전, 두 인물의 비중은 짐이 7, 실버가 3으로 뒤바뀐다. 이 7 : 3 비밀을 알고 <보물성>을 본다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듯.

<보물성>의 비주얼 스타일에 많은 영감을 준 것은 브랜디와인(Brandywine) 화풍이다. 이 말은 곧 이 영화가 환타지 및 어드벤처 스토리 북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삽화)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브랜디와인 스타일"은 전통적인 장식 일러스트레이션에 빛과 물체의 역동성을 강조한 인상파 기법을 접목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화풍의 그림은 '색상의 농담'이 매우 짙고, 인물의 형체는 조각상처럼 입체적이며, 명암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고, 선보다는 색채가 강조되는 게 특징이다.

<보물성>의 무대가 되는 세계는 선과 면의 수준을 뛰어넘어 생생한 입체감과 중량감이 강조되는 3차원으로 표현되어야 했기 때문에, 미술 팀은 1911년 출판된 스크리브너(Scribner) 판 <보물섬>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던 브랜디와인 화파 "N.C. 와이스" 외에 "하워드 파일", "맥스필드 패리시" 등의 작품을 면밀히 분석한 후, 붓놀림이 살아있는 그들의 오일 페인팅 기법을 <보물성>에 적용했다. 그러자 놀랍도 로 역동적이고 생생한 질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영상을 얻어낼 수 있었다. <보물성>은 붓 대신 컴퓨터의 커서를 이용해 모든 배경을 오일 페인팅(유화)으로 그린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1. 가상현실세트 VIRTUAL SETS
- 3차원 가상공간에 설치되는 정교한 영화 세트

<타잔>에 사용된 딥 캔버스 기법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개발된 "가상현실세트"는 컴퓨터 안에 3차원 세트를 만들고 카메라가 그 안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장치다. 완성된 가상현실 세트는 마치 실사 액션 영화의 세트처럼 사실적이고 정교하다. 이 세트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카메라를 어디에든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제작진에게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제공해준다.

<보물성>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의, 무수히 많은 정교한 세트가 필요했다. 또한 그 중 상당수는 반복해서 사용되어야 했다. 이 세트를 모두 현실 공간에 만들어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의 문제를 떠나서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상현실세트는 그러한 제작진의 걱정을 한 순간에 날려주었다. 그들은 3 D 가상현실세트 덕분에 핵심적인 세트를 거의 모두 만들어낼 수 있었고, 세트 안에서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이동시키고 배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 장면의 액션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조명 역시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다. <보물성>의 가상현실세트 덕을 특히 많이 본 곳은 짐 호킨스와 존 실버가 처음 만나는 장소인 범선의 주방과 선실, 식료품 저장창고 그리고 짐의 침실이다. 범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LS) 호" 도 3D 세트로 완성된 것이다.

2. INTERACTIVE LIGHTING
- 실사영화에서나 가능했던 3차원 입체조명

가상현실세트 안에서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이동시키는 딥 캔버스 기법 외에 <보물성>에 최초로 사용된 독창적 테크놀로지가 바로 Interactive Lighting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일단 하나의 가상 세트를 만든 후에는 동일한 세트 안에서 특정 장면의 조명을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의 조명, 이글거리는 불길 뒤로 화염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위한 조명, 가까이 에서 별이 폭발할 때의 조명등을 반복적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놀라운 3차원 입체조명(3-dimensional lighting)은 아티스트들의 능력을 훨씬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조명의 효과까지 표현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3. 딥 캔버스 DEEP CANVAS
-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듯한 역동적인 화면
- 실사영화를 뛰어넘는 숨막히는 액션장면 연출

<타잔>에서 겨우 10분 정도 사용된 것만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던 딥 캔버스 기법은 <보물성>에서 새롭게 도입된 "가상현실세트"와 "INTERACTIVE LIGHTING"의 도움으로 전체 영화의 75%에 사용되어 실사영화를 능가하는 박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딥 캔버스란 마치 핸드헬드 카메라로 실제 인물의 움직임을 밀착 촬영한 듯한 착각을 주는 기법이다.

영화 초반 짐이 솔라보드를 타고 우주경찰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자유자재로 허공을 질주하는 스릴 넘치는 장면이 바로 딥 캔버스 기법을 이용한 대표적 시퀀스다. 그것은 <백 투더 퓨쳐>의 마이클 제이 폭스가 보여줬던 스케이트보드 묘기보다 10배는 더 현란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4. 브랜디와인 스타일 오일페인팅
- 붓터치가 살아있는 강렬한 유화기법과 CGI가 결합한 디지털 영상예술의 극치

1894년, '미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창시자' 로 추앙받던 미술가 하워드 파일은 필라델피아의 '드렉셀 미술과학 인스티튜트'(Drexel Institute of Arts and Sciences)에서 후학 양성을 시작했다. 그는 1898년과 1903년 사이 여름 학기 동안 자신이 직접 교수하는 중간학기 과정을 개설했는데, 이때 모인 제자 그룹을 가리켜 '브랜디와인 스쿨' 화파라고 부르게 됐다.

<보물성>의 미술팀은 브랜디와인의 유화기법을 전면적으로 차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만들어냈다. RLS 범선의 항해 장면, 솔라보드 서핑 장면, 우주 폭풍, 소용돌이치는 블랙홀, 번개, 화염, 폭풍우, 물, 증기, 산처럼 쌓여 눈부시게 반짝이는 황금과 보석 등등...

이런 시도는 혁신적인 CG기술이 없었다면 실현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유화로 배경 그림을 그린다면, 수백 장의 그림을 건조시키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에서 붓대신 스타일러스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오일 페인팅 작업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