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는 건, 삶의 의미를 안다는 건, 그리고 마침내... 그걸 아는 건, 그걸 사랑한다는 건... 삶을 정면으로 살지 못하면 평화는 없다...."

"이것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세 여인들의 단 하루동안의 이야기이다. 세 가지 이야기는 겉으로는 모두 다른 듯 보이지만, 주인공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어떤 이미지로든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세월을 살고 있다."

그들의 세월이 겹쳐지는 순간, 당신의 잔잔한 일상이 흔들린다!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는 오늘도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그녀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레나드'의 보호를 받으며 언니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식사 시간을 얼마 앞둔 버지니아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런던행 기차역으로 간다. 그러나 급하게 그녀를 쫓아온 남편과 팔짱을 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잠시동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채 기차표를 품안에 고이 간직하고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는 로라(줄리안 무어). 둘째를 임신한 채 세살난 아들- 리차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바 없이 평온하다. 오늘도 남편은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일날 아침을 손수 차린다. 아들 리차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던 로라는 갑자기 자신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아들을 맡겨놓은 채 무작정 집을 나선다. 호텔방에 누워 자살을 생각하던 그녀. 그러나 다시 부랴부랴 남편과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만든다. 둘째를 낳은 후엔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래리사(메릴 스크립). 그녀는 지금 옛애인인 리차드(에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엄마 로라(줄리안 무어)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리차드는 지금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꽃도 사고 음식도 준비하고 파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클래리사는 리차드를 찾아 가지만, 그는 그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클래리사가 보는 눈 앞에서 5층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마는데....

연초록빛 풀잎과 새빨간 들장미 넝쿨위로 황금빛 태양이 내리쬐는 더없이 평화로운 6월의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1941년의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주머니에 큰돌을 넣고 급물살이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되는 영화 <디 아워스>. 이후 영화는 현대를 살고있는 두 여인- 1951년 LA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로라'(줄리안 무어)와 2001년 뉴욕의 '클래리사'(메릴 스트립)-의 삶으로 옮겨가고 다시 1923년 리치몬드에 살고있는 젊은 '버지니아 울프'를 포함한 세 여인이 알람이 울리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 개의 시간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단 하루동안의 일상을 교차편집으로 번갈아 보여주며 70년간 시간의 편린들을 매혹적으로 넘나드는 영화 <디 아워스>. 이 영화는 단 하루동안에 그려지는 여자의 일생을 통해 바로 그 날이 삶의 전부인 듯 디테일한 상황과 감정묘사를 통해 한 시대를 살고있는 누군가는 전 시대 누군가의 삶을 반복해서 사는 것 같은 윤회의 또다른 모습을 보인다. <디 아워스>는 시공간적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부터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이야기가 평행 몽타쥬로 진행되는 D.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와 비견될 만큼 매우 영화적인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23년, 1951년, 2001년이라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얽힌 세 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디 아워스>는 처음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고, 두 번째 이야기가 세 번째에 그리고 마침내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중심을 이루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순간을 맞게된다. 주인공들의 '단 하루동안의 시간'을 지켜보던 관객들 역시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나온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들' 속으로 빠져들며 극장을 나서는 순간, 가슴에 남는 긴 여운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시카고><갱스 오브 뉴욕><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디 아워스> 등 2003년 골든 글로브 후보작들이 발표되면서 바야흐로 할리우드에 아카데미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특히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초호화 스타들의 열연과 전작 <빌리 엘리어트>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결합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 <디 아워스>가 골든 글로브 7개 부문(작품상/감독상-스티븐 달드리/여우주연상-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남우조연상- 에드 해리스/각본상- 데이빗 헤어/작곡상- 필립 글래스)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아카데미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됐다.

이는 이미 지난해 말, 다음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최초의 영화상인 전미비평가협회(NBR)에서 <디 아워스>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으며,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즈, LA타임즈, U.S.A. TODAY와 AFI 등이 이 영화를 '2002년 최고의 영화 TOP 10'에 선정한데서부터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또한, 할리우드 움직임에 정통한 '버라이어티'도 전통적으로 뮤지컬과 판타지보다는 휴먼 드라마를 선호하는 아카데미의 성격 상 오스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품 중 하나로 바로 이 영화를 점찍어 벌써부터 전 세계의 시선이 <디 아워스>로 주목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디 아워스>의 주연 여배우 세 명인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가 <디 아워스>와 함께 자신들이 출연한 다른 영화들로도 모두 골든 글로브에 나란히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 먼저 니콜 키드먼과 메릴 스트립은 <디 아워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줄리안 무어는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으로 여우주연상에, 메릴 스트립은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이중으로올라 있는 것. 아무튼 <디 아워스>에서 세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경합을 지켜보는 것과 함께 아카데미의 전초전이 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받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듯.

도대체 어떤 장면에 니콜 키드먼이 나온다는 거야? <디 아워스>를 보면서 관객들은 이런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연기하는 한 배우를 놓고서 누가 그녀인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 주인공이 남자배우도 아닌 여자배우에다가, 거의 여신에 가까운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인 니콜 키드먼일때는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그만큼 그녀는 <디 아워스>에서 세기의 지성 '버지니아 울프'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버렸다!

평단과 관객이 인정한 전작 <디 아더스>에서의 창백하면서도 세련된 '그레이스' 역, <물랑루즈>의 화려한 쇼걸 '사틴'을 잊고 <디 아워스>에서 기존 자신의 이미지와 상반된 역할을 맡게된 니콜 키드먼,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외모와 비슷해 보이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매부리 코를 붙이고, 긴 머리를 윤기 없는 두터운 회색 가발 아래 숨긴 채,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로 고뇌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열연했다.

또한 독서와 고독으로 표상되는 버지니아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아무도 없는 오두막에서 수개월이나 혼자서 은둔하면서 오른손잡이였던 버지니아를 따라 오른손 쓰는 법을 훈련하기도.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마지막 모습인 강물에서의 자살 장면을 위해 그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역을 거부했다. 초여름 햇살아래 급물살이 흐르는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머리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 속으로 잠기는 것은 대역이어도 분명 위험한 일이었던 것.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감독에게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는 수차례나 차가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결국은 마지막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니콜 키드먼은 비록 자신의 미모가 망가지긴 했지만, 평소 존경하던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다는 사실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스터를 본 그녀의 아이들이 '엄마! 더 이상 그 코는 보고싶지 않아요!'라고 소리쳤다고...

영화 <디 아워스>는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The Hour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98년 출간된 이 소설은 99년 소설가 최고의 영예인 펜 포크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뉴욕 타임즈, LA타임즈, 보스턴 글로브 등에서 최고의 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커닝햄의 「The Hours」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공된 두 명의 허구의 인물들과 실제 버지니아 울프의 삶,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절묘하게 얽혀있는 수작.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의 문제를 지닌 세 명의 여인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며 보내는 '하루동안의 시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세 명의 여인들이 그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커닝햄의 「The Hours」는 모든 생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느낀 버지니아 울프의 생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디 아워스>는 소설「The Hours」의 매혹적인 플롯을 고스란히 살린 채, 빠르고 경쾌하며 놀랄 만큼 암시적인 화면을 선사한다. 이와 더불어 인물들간의 대화와 디테일한 상황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전개방식이 아닌 느낌을 통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게 배려했다.

영화 <디 아워스>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세 개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찌 보면 또 그리 다르지 않은 인생의 빛깔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감독은 이 영화의 색감을 특히 중시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의상 디자이너 앤 로스가 각기 다른 시대를 사는 세 명의 여인들의 의상을 준비했다. 세 개의 시대는 각기 다른 칼라이면서 하나의 유사한 느낌을 줘야 했다. 앤은 우울한 지성과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지식인 모임인‘블룸즈베리 그룹’사람들의 의상이 녹색과 회청색이 주를 이뤘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세 여성에게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변형된 Color를 부여했다.

버지니아 울프 VS 니콜 키드먼... 먼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하는 니콜 키드먼에게는 무채색에 가까운 '회색'톤에 자잘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옷감을 이용, 그녀가 지니고 있는 갖가지 병적인 요소와 불안감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하얀 손수건, 섬유로 만든 듯한 신발 등의 특별한 소품도 이용했는데, 키드먼은 "내가 그 소품들과 의상을 착용하자마자, 난 바로 버지니아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할 만큼 세밀한 부분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로라 VS 줄리안 무어... 1950년대 2차대전 직후의 매우 감성적인 여성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의 경우, 허리를 바짝 조이는 '블루'톤에 빨간 꽃무늬가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이 의상은 촬영 당시 실제로 임신 중이었던 그녀의 신체를 최대한 아름답게 살려줄 뿐만 아니라, 소설에 심취해 감정의 기복이 심한 전후 여성의 심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클래리사 VS 메릴 스트립... 2001년 전형적인 미국의 현대여성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은 그녀의 이지적인 외모와도 잘 어울리는 '스카이 블루'가 니트부터 심지어 고무장갑까지 사용돼, 파티를 준비하는 그녀의 하루를 화사하게 꾸며주고 있다. 스트립의 경우, 다른 두 배우들과는 달리 목걸이, 히피풍의 팔찌, 선글라스, 헤어 핀 등 비교적 '치장'을 많이 해, 항상 남들의 시선 속에 갇혀 사는 소심한 현대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분홍신'의 마법에 걸린 탄광촌 소년의 희망을 담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로 2000년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스티븐 달드리. 달드리 감독은 현실적이지만 풍부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열정적인 그의 감성을 관객들의 심장에 그대로 전달하는데 성공했고, 드라마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감독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데뷔의 성공과 함께 명성을 얻게 된 달드리는 아카데미 이외에도 영국 아카데미(BAFTA)상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32개 가량의 트로피를 석권한 바 있다.

<아메리칸 뷰티><로드 투 퍼디션>의 샘 멘데스 감독과 런던 극장 동료인 달드리는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포함해 100편에 이르는 연극 무대를 지휘하였다. 그의 경력에는 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재연된 [Via Dolorosa]를 포함, [Rat in the skull], [This is Chair] , [Far away], [A Number]와 토니 상에 빛나는 [An inspector Calls] 등 영국뿐 아니라 미국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게 된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다.

<디 아워스>로 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의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달드리는 차기작으로 쥬드 로가 주연할 풀리처상 수상작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모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Old Vic' 과 'Young Vic' 이라는 극장의 상임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옥스포드 대학에서 '현대 연극론'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또한, 뉴욕에서 공연할 'Far away' 와 런던에서 공연할 'A Number'를 연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