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새로움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는 '태극기 휘날리며'

'전쟁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전쟁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쟁 영화를 만드는 것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전쟁 영화는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잘 만들기는 더욱 힘들다.

순수 제작비 147억에 준비 기간 4년이 넘게 걸린 이 영화는 한국 최고의 감독과 최고 인기 배우인 장동건, 원빈의 결합으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국내 최고의 스텝들로 구성, 한국 전쟁을 스크린에 재연하겠다는 거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결과는 한마디로 별로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주제도, 내용도 빈약하다. 과거 전쟁 영화의 공식을 답습하고 내용은 미국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이 진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비극적인 전쟁에 휘말린 형제의 잔인한 운명

서울 종로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구두수선공 진태는 병약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동생 진석과 말 못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약혼녀 영신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진석이 강제로 징집되자 진태는 동생을 위해서 함께 군대에 입대한다. 훈련도 못 받고 낙동강 최전방 전투에 배치된 형제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형 진태는 동생 진석을 제대시키기 위해서는 훈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무공을 세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을 위해서 점점 전쟁 광이 되어 가는 형의 모습을 보는 동생 진석은 형의 광기가 원망스럽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으로 향하는 두 형제. 진태는 그토록 원하는 무공훈장을 받게 되지만 진석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중공군의 투입으로 다시 후퇴하는 형제에게는 비정한 운명의 덫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영화의 난이도를 넘지 못하는 빈약한 이야기 구조

영화의 전투장면과 특수효과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느낄 수 있는 1950년대의 재현과 배우들이 온몸을 불사르며 열연한 전투 장면은 기대 이상의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영화는 기대만큼의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화면의 구성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하다.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전쟁 이야기 중에서 왜 하필이면 동생을 구한다는 이런 소재를 택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야기의 전개 역시 부족하고 논리성이 떨어진다.

사람이 예사로 죽는 전쟁 영화는 극의 긴장을 유지하기가 다른 장르의 영화에 비해서 오히려 더 힘들다. 편집과 구성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툭툭 끊어지는 느낌으로 편집과 구성에 안일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 '실미도'가 투박한 느낌을 주는데도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며 흥행에 성공한 것은 나름대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그간 보지 못했던 참신한 소재,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주제의식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주제와 내용이 새롭지 않다. 넘치는 물량과 박진감 있는 화면만으로는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수는 없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인만큼 세심하게 시나리오작업과 새로운 스토리를 만드는데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장르가 아닌 새로운 스토리다.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다행이라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한국판 진석 일병 구하기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리아필름 객원기자 강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