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더러운 세상에 화해의 손을 내밀다.

원조교제. 그렇다. 이번에도 소재로만 영화를 말하기엔 충분히 논쟁거리가 넘쳐날 듯싶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하 봄)>부터 김기덕 감독의 시선이 변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그 표출로 선택된 폭력성은 '김기덕 영화'의 주된 표현방법으로서 칼집 없는 칼처럼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됐지만, <봄>부터 변화의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사회를 겨누는 그 칼에, 칼집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회에 대한 분노표출에서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용서와 화해의 손짓을 넌지시 건넨다는 것이다. 투박하고 직설적이던 시선에 온화한 숨결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논쟁거리를 찾는 이들에겐 못내 아쉬운 상황이겠지만 김기덕 감독 자신에겐 영화적인 진일보 혹은 성숙일 것이다.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사마리아>는 원조교제에 관련된 딸과 아버지의 복수를 통해서, 더럽혀진 세상에 노출된 순수한 영혼들의 오염과 그에 대한 복수, 용서를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바수밀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윤리의식이 제대로 생성되기도 전에 더러운 세상에 내던져진 순수한 영혼들의 파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린 소녀들과 성관계를 맺으려 돈으로 그 몸을 사는 어른들, 그리고 돈을 위해서 몸을 빌려주는 소녀들. 기본적인 윤리의식은 무너졌으며 그 무너진 틈에서 아이들은 그것을 보며 성장하고 따라한다. 어른들은 애써 아닌척한다. 누구를 욕할 것인가.

두 번째 에피소드 ‘사마리아’는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자신도 어른들에게 몸을 맡기는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아버지가 행하는 복수를 담고 있다. 죽은 친구를 위한 정화 과정으로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소녀와 그 몸을 탐한 어른들에게 응징을 가하는 아버지 혹은 어른. 아버지도 오염된 세상에 일조한 기성세대이기에 공범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딸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고통스럽게 바라보기만 하면서, 복수보다는 자기학대에 가까운 어른들에 대한 복수를 행한다. 더렵혀진 세상에 순수한 영혼을 내보내야만 하는 아버지의 고통과 그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에 대한 공범의식, 이것이 뒤엉키면서 우리의 아버지는 분노와 오열을 내뱉는다. 누구를 욕할 것인가.

세 번째 에피소드 ‘소나타’는 아버지와 딸의 화해와 용서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딸은 여행을 떠나면서 서로 치유하고 보듬는다. 상처 입은 스스로에게, 상처 준 상대에게 화해와 용서를 빈다. '김기덕 영화'에서 항상 만날 수 있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소통부재의 칼날이 <사마리아>를 통해서 화해와 용서를 말하려고 한다. 진흙탕에 빠져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소녀를 보여주면서 화해와 용서 뒤에도 사회는 험난하고 더러울 것이라고 암시하지만, 그래도 화해와 용서의 씻김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지는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용서해야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성장을 읽을 수 있다. 거친 반항아 같기만 하던 '김기덕 영화'가 이젠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김기덕 영화'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 성숙함이 싫지도 않다.

김기덕 감독에게 돌을 던지던 일부 관객과 평론들도 이번엔 돌팔매가 어려울 것이다. 누구도 욕할 수 없을 <사마리아>에 어떻게 돌을 던지겠는가. 비록 그 표현이 직설적이긴 하지만(물론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더렵혀진 세상에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데 나무랄 수 있겠는가. 11일 만에 촬영을 끝마쳤다는 <사마리아>는 기술적인 결함 등이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훌륭하다. 특히 신인배우들의 어색하지 않은 연기와 이얼의 열연은 충분히 칭찬할만하다. 억눌린 카리스마를 멋지게 표현해낸 이얼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발견이라고 말할만하다. <사마리아>, 기존의 '김기덕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 영화를 대한다면 당신은 분명 넘쳐나는 대작들 틈에서 진정한 보석하나를 찾아내는 행운을 얻을 것이다. 원조교재라는 소재에 묻혀서, 김기덕이라는 이름에 묻혀서 <사마리아>를 등지지 않기를 바란다.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감독 특유의 냉소적 시각과 화법으로 풀어내..

영화 <사마리아>는 유럽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던 중 재영(서민정)이 죽자, 친구인 여진(곽지민)이 재영을 이해하고 용서받기 위해 다시 상대 남자들을 찾아가 매춘을 한 다음 돈을 돌려주고 이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 아버지 영기(이얼)가 상대 남자를 찾아가 차례대로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바수밀다', '사마리아', '소나타' 등 세 개의 차트로 나누어 각 차트의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원조교제를 하는 딸과 그런 딸을 바라보며 복수를 자행하는 아버지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그린 사회성 드라마로도 읽을 수 있지만 좀 더 깊숙이 인간의 원죄를 다루고 있으며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김기덕 감독 특유의 냉소적 시각과 화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감독은 전작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각 차트로 나누어 특별한 기교 없이도 각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끄집어내며 한층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여기에 신인 여배우들의 비교적 안정된 연기와 이얼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더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반면 극중 여진의 감정 변화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채 종반으로 치달아 말하고자 이야기가 다소 모호하게 들리게끔 한다. 군데군데 사운드 등 기술적인 결합도 흠이다.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과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여전히 일반 관객들에게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조금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꽤 볼만한 영화이고 한국의 몇 안 되는 독특한 색깔을 가진 감독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김기덕 감독의 10번째 영화 <사마리아>는 쇼이스트가 배급하고 오는 3월 5일 개봉한다.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