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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와
올드보이, 김기덕과 박찬욱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과
자신의 딸이 원조교제를 하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복수와 화해를 그린 작품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은 김기덕 감독의 10번째 작품. 이번에도 순제작비가 단 5억원 정도가
소요된 저예산 영화로 제작되었다.
제목 '사마리아'는 이교도에 의해 더럽혀진 땅이라는 이유로 유태인으로부터 천대와 배척을 받은
성서에 나오는 지명이다. 2002년 영화 <나쁜 남자>에 이어 다시 한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출품되어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했다.
파격을 위한 ‘사마리아’의 작위적인 설정들
김기덕은 파격적 영상과 파격적 설정을 자기스타일로 하는 감독이다. 설정이 파격적일 수록 개연성(그럴만한
이유와 설정)이 충분해야 한다.
사마리아는 2가지 파격적인 설정으로부터 출발하고, 나는 이 2가지 설정의 개연성에 주목했다.
1. 유럽여행을 위해 원조교제를 하고, 원조교제를 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여고생(재영)
-> 유럽여행을 위해 원조교제를…?
-> 어른들에게 노리개가 되면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여고생?
2. 죽은 친구의 원조교제 대상을 만나 섹스를 하고 돈을 돌려주는 또다른 여고생(여진)
-> 친구가 죽었다고 다 원조교제 하나?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 아님 친구의 못다이룬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 ?
사마리아는 이런 의문에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재영은 원조교제의 상대남자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만, 나는 결코 사마리아와 교감할 수 없었다. 사마리아가 교감해야 하는 상대는 원조교제의
어른이 아니라 관객이다.
또다시 제기되는 ‘개연성의 힘’에 대하여
평범한 이야기보다 파격적인 영상에 우리는 더 긴장하고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비일상성’이라는
영화의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나 파격적인 스토리, 파격적인 영상을 만들 수는 있다. 단 하나의 파격적인 장면이 모티브가
되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스크린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아무리 강조해조 지나침이
없는 ‘개연성’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 ‘개연성’이 스토리를 끌어가는 동력이며, 감독의 역량과 배우의 연기력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사마리아는 파격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개연성, 이 개연성을 생성할 만한 감독의
역량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과 상황, 심리와 심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빠진 상태에서 ‘사마리아’는
감독의 작위로만 스토리를 지탱하고 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원조교제라는 설정이 아니다
여고생이 원조교제할 수 있다. 그 친구도 따라서 어떤 상황에선 그럴 수 있겠다. 도덕적 판단
이전에 현실로서 그럴 수 있다. 더구나 영화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한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가 아무런 죄의식이나 부끄럼 없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이유와 설정이 충분한가이다.
오! 브라더스가 재미와 적절한 감동까지 주는 고품격 코미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감독(김용화)의
말대로 ‘특이한 설정과 말도 안되는 헤프닝’을 말이 되도록 끌어가는 ‘개연성의 힘’이다. 김기덕은
오! 브라더스의 봉구에게 배워야 한다. 조루증에 걸린 12살짜리가 어떻게 어른세계를 휘젓고 다닐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원조교제라는 설정이 아니다. 바로 이 개연성의 문제를 어설프게 처리한 감독의
어설픈 역량이다.
올드보이와 사마리아, 박찬욱과 김기덕
이유 없이 15년을 갇혀지내는 한 남자와 그를 가둔 또다른 남자의 이야기, 올드보이.
15년은 갇힌 자뿐 아니라 15년을 하나의 사물에 집착하는 가둔 자 또한 황폐하고 고독하게 만든다.
올드보이는 이 15년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을 풀어낸다.
영화를 본 아무도 왜 15년을 가둘만한 복수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도덕적 잣대를 가진 사람들조차 근친상간을 올드보이의 중심논쟁으로 삼진 않았다.
이렇게 15년이라는 복수의 세월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까지 박찬욱감독은 곳곳에
예리한 복선과 깊은 이유와 칼날같은 장치를 해두었다.
한편의 영화 속에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모든 죽음은 이유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것이 올드보이와 사마리아의 차이다. 올드보이의 근친상간이 영화소재로 이해된 반면,
사마리아의 중심부에 ‘원조교제의 미화’라는 도덕적 평가가 떠오른 차이다. 바로 작위적인 설정,
부실한 영화가 불러온 도덕적 논쟁이다. 바로 감독의 역량의 차이다.
누가 이 사마리아 소녀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김기덕은 감독의 변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이것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화두이며,
관객들이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사마리아’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일 것이다.
나도 정말 고민하고 싶다, 이 사마리아 소녀들에게 돌을 던질지 말지에 대해…
그러나 사마리아 소녀들과 아무런 교감을 하지 못한 나는 여전히 이 소녀들과 무관한 관계에 있다.
다만 이런 화두를 던지는 감독, 이 영화를 두고 화해와 용서를 표방하는 감독, 이 영화를 두고
작품성을 말하는 감독에 돌을 던지고 싶다.
다음은 사족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모든 여자가 창녀가 되고 그들의 예찬에 바쁘다.’
이 공식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섹스를 통해 남자를 정화시킨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섹스한 후 원조교제의 상대남자들이 차례로
정화되는 설정에서는 폭소를 금치 못했다.
여진과 섹스한 한 남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딸에게 전화하는 장면은 코미디를 넘어 엽기였다.
원조교제에 나선 남자들이 그렇게 쉽게 정화되는가 말이다.
코리아필름 객원기자 류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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