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인간의 환경 파괴에 의해 보금자리를 잃은 너구리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변신술을 무기로 하여 인간들에게 대응한다는 이야기로, ‘너구리’를 소재로 하여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1995, 일본, 2D 애니메이션, 119분

기 획 : 미야자키 하야오 l 프로듀서 : 스즈키 토시오
원작·각본·감독 : 다카하타 이사오
제 작 : 스튜디오 지브리
제 공 : 토쿠마 쇼텐, 니혼 TV 네트워크, 하쿠호도 제휴작품
음 악 : 코류, 와타나베 만토, 이노 요코, 고토 마사루(샹샹 타이픈), 후루사와 료지로
이미지 제작 : 모모세 요시유키, 오오츠카 신지가
작화 구성 : 모모세 요시유키 l 캐릭터 디자인 : 오오츠카 신이치
미 술 : 오가 카즈오 l 촬영감독 : 오쿠이 아츠시

개 봉 : 2005년 4월 28일(목) 개봉 l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수입/배급 : 대원C&A홀딩스㈜
국내 홈페이지 미정

- 제43회 마이니치영화 콩쿨 애니메이션영화상.
- 제12회 머니 메이킹 감독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부문 출품.
- 95년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발 장편영화상 외 다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메가박스 단독 개봉!
 

오는 4월 28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 메가박스 코엑스와 해운대, 2개관에서 단독 개봉된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든 후, 지브리에서 세 번째로 제작한 작품이다. 기획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등 화려한 제작진으로, 일본 개봉 당시 350만 관객을 동원했던 화제작이기도 하다.

인간의 환경 파괴에 의해 보금자리를 잃은 너구리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변신술을 무기로 하여 인간들에게 대응한다는 이야기로, ‘너구리’를 소재로 하여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타마 구릉지의 너구리 보호 운동을 면밀히 취재했으며,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너구리들의 실태와 생태계를 조사했다. 여기에 너구리 전설과 너구리 요괴를 그린 옛날 그림 등 다각도에서 너구리를 연구를 더하면서, 인간과 너구리의 관계에 대한 총결산했다고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인간들에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너구리들이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 TV를 설치하고는 오히려 TV에 중독되어 버린다던지, 인간을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다가 인간이 주는 튀김과 햄버거를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지는 우습고도 서글픈 모습은, 환경 파괴라던가 물질 문명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만 그로 인한 달콤함은 거부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이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은유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빼먹을 수 없는 깜짝 선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감상하다 보면,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관객들을 위해 마련한 깜짝 카메오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인간들에게 너구리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기 위해 너구리들이 벌이는 “요괴대작전”을 주의해서 보시면, 다양하고 화려한 요괴 캐릭터들 사이로 ‘토토로’, ‘붉은돼지’, ‘마녀배달부 키키’ 등 우리 눈에 익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들이 깜짝 까메오로 등장하여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제목의 ‘폼포코’는 너구리들이 배를 두들길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제43회 마이니치 영화 콩쿨 애니메이션 영화상, 제12회 머니 메이킹 감독상 등 각종 영화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5.4.12)

코리아필름 편집부


폼포코 31년,
더 이상 갈 곳 없는 너구리들이 봉기했다!!
조상대대로 전해지는 변신술로 인간들과의 대전투를 선언하다!
순진하고 천진하기만 한 너구리들의 내 땅 지키기 대작전!

도쿄 근방의 타마(多摩) 구릉지.
 

다카숲과 스즈가숲, 두 무리로 나뉘어 살던 너구리들은 도쿄의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로 인해 그들의 숲이 파괴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중지되어 있던 '변신술의 부흥'과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다. 또한 시코쿠(四國)와 사도(佐渡) 지방에 살고 있는 전설의 장로 등에게도 원군을 청하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 시합'을 통해 사자를 보낸다.

너구리들은 외부의 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변신술 특훈과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으로 인간들의 개발 계획과 공사를 방해하지만 결국 '뉴타운 개발 계획 저지'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때, 그토록 기다리던 전설의 장로 3명이 시코쿠 지방에서 온다. 3명의 장로는 너구리 변신학을 집대성한 『요괴대작전』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이 작전을 경험한 인간들로 하여금 다시 너구리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품도록 함으로써, "뉴타운 개발 계획을 백지화"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자! 과연!!
이후, 이들의 작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 PRE-PRODUCTION NOTE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말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89년 정월
「스즈키 씨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독자적인 동물인 너구리의 영화가 없다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 만든다고 한다면 시코쿠(四國)가 무대인 너구리 이야기『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을 이야기화 시키면 좋을 것 같은데」

어느 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야심적인 기획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솔직히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프로듀서 업종의 슬픈 특성상 수익성과 기타 세속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됨으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말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스즈키 씨 우리 너구리를 하자고,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를 하자고」 라고 말했습니다.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 를 듣고 나는, 나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팬인 만화가 스기우라 시게루(杉浦茂)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八百八だぬき)』가 떠올랐다.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좋군요」라고 대답하자, 「다음 작품은『토토로 대 팔백팔 너구리)』로 결정이다」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만족한 듯이 이야기 하였다. 일주일 정도 이야기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림까지 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정확히「마녀 배달부 키키」로 가장 바쁠 때 였었습니다. 바빠지면 눈 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징이지요(웃음).

1992년 3월
「스즈키 씨 너구리를 하자고」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진지하게 말을 한 것은 그 뒤로 2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좋겠지요」라고 나도 주저하지 않고 맞장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2년 전의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다그쳐 묻듯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좋겠습니까? 그럴 경우에는 『팔백팔 너구리(八百八狸)』가 아니라, 『아와 너구리 전쟁(阿波狸合?)』이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순 망설이는 듯 보였으나, 그는 사리 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입니다. 무언가 생각한 뒤, 곧 조건 두개를 첨부하였습니다. 「너구리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렸으면 한다. 그리고 『박장대소』를 원한다」였습니다.

이번에는 「붉은 돼지」에 쫓기고 있는 중으로 '스튜디오 지브리' 로서는 새로운 기획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였기에, 「알겠습니다」라고 답을 하고, 곧바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지요(웃음). 예상대로 탐탁치 않은 답이 돌아 왔습니다. 「내가 너구리가 주인공인 영화를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내가 만들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기획이 있으면 응원 하겠지만요」

「그런 말씀 마시고 부탁 드립니다」 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스기우라 시게루 씨가 그린 『팔백팔 너구리(八百八だぬき)』를 보여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아 너구리 연구를 추진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음~그가 간단히 승낙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렇기 때문에「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습니다.

1992년 5월
시간이 흐른 뒤, 다카하타 감독이 이노우에 히사시 씨의 소설 「복고기(腹鼓記)」를 들고 왔습니다. 이것은 직접 영화의 원작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작품 이였습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이노우에 히사시 씨라면 지혜를 빌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몇 번 연락을 취한 후, 이노우에 씨는 우리에게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이노우에 씨는 나와 다카하타 감독에게 수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복고기」를 지필 할 당시 모아 두었던 자료를 「한번 보시겠습니까?」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너구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5명정도 일걸요. 너구리의 일이라면 꼭 협력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어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이 자료가 있다는 야마가타현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볼수록 현대에 있어서의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같습니다.

이노우에 씨의 자료를 가지고 도쿄로 돌아 오는 도중, 다카하타 감독과 나는 「너구리」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안으로『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다카하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쿄에 도착하여, 이 일을 미야자키 감독에게 보고하자, 감독은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헤이케 이야기』에 나오는 무수한 갑옷을 손으로 그리고, 움직이고, 색을 칠하는 어려움이란 말로다 표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카하타 감독도 「지당한 말이다」라고 납득하였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영화화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붉은 돼지」가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1992년 6월
「너구리가 주인공인『헤이케 이야기』는 어떻겠습니까?」
어느날, 다카하타 감독이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드디어 이 기획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의 격렬했던 사람들의 생과 장렬한 죽음을, 너구리로 바꾸어 집단극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너구리의 변신 이야기와 시대를 현대로 옮겨서, 너구리가 개발에 의해 주거지를 빼앗기는 모습을 연결해 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하여 지금 작품의 근본이 되는 이야기가 탄생하였습니다.

1992년 7월

기획은 구체화 되었다. 무대도 타마(多摩)로 결정. 타마구릉지에 있던 너구리들이 개발에 의해 주거지에서 쫓겨날 지경에 놓이게 되고, 「변신술(학)」을 부활시켜서, 저항한다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적으로 그려 보고 싶다. 이것은 현재의 도시에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운명을 그대로 그려 내는 것이 된다" 라고 하는 다카하타 감독의 생각에 의해, 즉시 타마(多摩) 베드 타운의 너구리에 대한 취재를 개시, 9월에는 시나리오 작업을 착수 하였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입장

미야자기 감독의 역할 말입니까?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역할상 기획자로 되어있습니다만, 본인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듯이 「나는 기획자가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지요(웃음). 위의 그림과 같이 이번에 미야자키 감독의 역할은 「독촉 부대」입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아군의 가장 후방에 서서 「진격~」이라고 외치고, 우리 편을 격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역을 해 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개봉 시기를 맞출 수 있었을까요(웃음).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너구리」라고 하는 한마디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말하는 쪽도 말을 듣는 쪽도, 주는 쪽도 받아들이는 쪽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웃음).

* 헤이케 이야기 :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와 비슷한 시기)를 열게 된 전쟁으로, 이전 부터 있던 교토의 귀족인 헤이안 집안과 신흥 무사 집안인 미나코토 가문의 전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중반부에도 삽입되는데, 999살을 맞은 하케타누키가 무사로 변해 화살을 날리는 인물이 바로 이 전쟁에서 공명을 떨쳤지만 형의 명령으로 자결을 하게되는 미나모토 요시츠네란 영웅이다. 이 요시츠네에게 자결을 명한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일본 최초의 막부 가마쿠라 막부를 연다.


† 수수께끼의 동물, 너구리?!
 

너구리를 주제로 시작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너구리란 동물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예를 들어 문헌에 따라서는 '너구리는 나무에 오르는 것이 특기', 손재주가 없어서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 '나무에 오르기는 잘 오르나 내려오는 것을 잘 못한다' 라고 기술되어 있어 좀처럼 너구리의 실태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기획 초기 단계에서 작품 자체를 포기하려했던 제작진은, 도쿄 마치다시의 시민 단체 『타마 구릉지 야외 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너구리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상적 다큐멘터리로서 현대의 너구리들을 패러디적으로 그려 보고 싶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의지로, 너구리들의 기초 생활 양식과 하수구를 이용해 주택가를 왕래하는 너구리와 인가의 정원에까지 들어와 먹이를 얻어 먹고 있는 너구리 등 도회지에서의 너구리들의 생활 모습 등이 세밀하게 조사되어, 이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너구리와 조우
 

산보를 좋아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제작 기간의 바쁜 스케줄에서도 시간을 내어서 자주 회사 주위를 자전거로 산책한다고 한다.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 근처에는 도립 노가와(野川) 공원을 가장 좋아하는데, 작품 완성을 며칠 앞둔 어느날 평소와 같이 공원으로 나간 감독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대와 대면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상대는 바로 두 마리의 너구리. 이 너구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니면 이전부터 살았었는지, 어떻게 되었던지간에, 그 순간에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있어 그들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성공을 알려주기 위해 온 "행운의 너구리"였다고!!


† CG로 보이지 않는 CG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역사상 최초로 CG가 사용되었다. CG로 처리 한 부분은 도서관에서 '오로쿠 할멈'이 젊은 너구리들에게 자료를 보여 주며 강의하는 장면이다. 책들이 들어서 있는 서고를 카메라가 부드럽게 들어가는 장면이다. 실사 영화라면 비교적 간단히 촬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 배경 동화의 각도가 변해가는 책꽂이를 하나 하나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마 어마한 일손이 드는 부분이다. 이는 완성된 것을 보는 일반 관객에게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어,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보답 받지 못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카하타 감독은 이러한 것이야 말로 기계에 의존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었다.

사용한 컴퓨터는 '인디고' 라고 하는 유명한ILM(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특수효과 회사)이 「쥬라기 공원」에서 사용한 기계이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해서는 완전히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었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닛폰 텔레비전의 CG부와 함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CG로는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십시오」라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주문을 실행해 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니 쉽게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작업은 1993년 7월에 시작하여, 영화 완성의 며칠 전이라고 하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종료 되었다. 미국은 제쳐두고 일본에서는 CG의 화상을 35mm 필름의 해상도를 만족시킬 퀄리티로 제작하고, 필름에 직접 출력하는 것 자체가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시행착오와 피땀어린 결과로 태어난 CG장면! 어떻게 보셨습니까?

제발 「CG라니 대체 어디서 사용한 거야?」라고 생각해 주시길...


†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은 어떻게 깨지는가?
 

인간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 만복사(萬福寺)에 너구리들이 설치 한 텔레비젼을 '곤타'가 주먹으로 부수는 장면을 그리기 위한 제작진의 고심은 실로 대단했다. 브라운관이 깨지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그려내는 것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고, 결국 제작진은 직접 브라운관을 깨보기로 결정했다.

'곤타'가 부수는 것과 같은 조건을 위해, 주차장으로 텔레비전을 들고 나가 전원을 연결해서 켜고, 그 앞에 비디오 카메라 두 대와 스틸 카메라를 준비한 후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 머리에는 핼맷을 쓰고, 오토바이 선수가 입는 복장에, 가죽 장갑을 끼고 금속 뱃트를 든 제작부의 모씨. 그 주위를 열명이 넘는 애니메이터가 숨을 죽이고 둘러 앉았다. 침묵의 순간, 그리고 "펑' 하며 울리는 소리. 홈런~.

그러나 텔레비전은 전혀 깨지지 않았고, 계속된 시도 끝에 쇠 방망이를 들고 와 도전함으로써 간신히 브라운관은 깨졌지만 대부분이 기대했던 폭발도 없었고, 섬광이 튀지도 않았다고. 이 때문에 이 이벤트는 없었던 일이 되고, 여기에 쓰였던 부서진 텔레비전은 제작 기간 중 불단(佛壇) 대신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바로 이 장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주인공들 까메오로 깜짝 등장!
 

<폼포코 너구리 대전쟁>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이 장면!
시코쿠의 세 장로를 주축으로 너구리들은 인간과의 최후의 결전으로 '요괴대작전'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너구리 대집회를 개최한다. 시코쿠의 장로들과 너구리들이 펼치는 화려한 '요괴들의 대향연'이 끝날 즈음,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깜짝 선물이 등장한다. 희안하고 독특한 각종 요괴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틈에 살짝 살짝 보이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그것. 빗자루를 타고 나르는 '마녀배달부 키키', 비행기를 탄 '붉은돼지 포르코', 우산을 쓴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 등 우리에게 낯익은 만화주인공들이 너구리, 요괴들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각종 주인공 캐릭터들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이 한 장면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


† 너구리의 4가지 모습
 

기획 단계에서 언급되었던 많은 작품 중에 스기우라 시게루의 만화 「팔백팔 너구리」가 있었다. 기획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꼬마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로 '이 작품을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게 아쉽다.'라고 생각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작품 안에 스기우라 씨의 너구리 캐릭터를 등장 시킨다. 그것이「스기우라 너구리」. 감독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게스트 캐릭터가 아닌「주인공 너구리들이 정신적으로 '졌다' 라는 기분일 때 자연스럽게 이 모습이 되어 버린다」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였다. 결국, 마음속의 모습이 외견으로 보인다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이디어인 것.

이 발상은 한층 더 확장되어 역으로,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취하는 너구리의 모습과 일상적으로 취하고 있는「직립 상태」라고 불리는 직립 보행 모습, 인간들이 흔히 보아왔던 생물학적인 모습인「너구리」의 모습이 <폼포코 너구리>에서는 보여지게 된다.


† FILMMAKERS 다카하타 이사오 / 원작·각본·감독
 

1935년 10월 29일 미에현 이세시에서 7인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다. 연출가. 1959년 동경대 불문학과 졸업 후, 도에이 동화(東映動畵)에 입사. TV시리즈「늑대 소년 켄?제14화 정글 최대의 작전」으로 애니메이션 첫 연출을 하게 된다. 1968년 극장용 만화 영화「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으로 감독 데뷔. 이후 「알프스 소녀 하이디」「엄마 찾아 삼만리」「빨강머리 앤」(TV?연출),「첼리스트 고슈」「자린코 치에」「반딧불의 묘」「추억은 방울 방울」「이웃집의 야마다군」(영화?감독), 「야나가와의 운하이야기」(기록 영화?감독)등의 작품을 담당하였다. 프로듀서 작품으로는「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다.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으로 전국 영화 연맹 밀리온 펄상을 수상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로 TV 대상 특별상, 「첼리스트 고슈」로 마이니치(每日) 영화 콩쿨 오토상, 「반딧불의 묘」로 제1회 아동 청소년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그랑프리, 「추억은 방울 방울」로 예술선장 문부 대신상, 「야나가와의 운하이야기」로 마이니치 영화 콩쿨 문화 기록 영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94년 일본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95년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호루스』의 영상표현」「이야기의 이야기」「나무를 심는 남자를 읽다」「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것」(토구마 쇼텐)등 다수가 있다.


† 현세 너구리들의 사정 (다카하타의 연출노트에서)
 

어느 날, 근처 지주의 집 뒤에 있던 대나무 덤불이 돌연 모습을 감추어 빈터가 되어있었다. 저녁 무렵이면 둥지에 돌아 온 참새들의 떠들석함이 대단하여 사람들은 이 대나무 덤불을「참새의 숙소」라고 불렸지만, 빈터가 되어버린 뒤, 과연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마, 센리, 츠쿠바 등의 베드 타운이라든지 골프장 등 각 지역 마다 대규모의 삼림 개발이 행해지고 있다. 단기간에 지형마저도 완전히 변화해버린 지역에서 생물들은 생활 영역을 잃어 버리고, 그 대부분의 생물들이 멸종 했을 것이다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변 지역에서 인간들에 의한 수난을 받으면서도, 인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살며 힘겹게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종과의 생존경쟁은 제쳐두더라도 같은 종끼리의 영역 싸움은 훨씬 더 치열 해 졌을 것이다. 아마,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 것이고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집단도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산이나 들에서 살면서, 인간과의 접촉이 많았던 너구리들도, 이 무섭고도 놀라운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엔 인가 근처 뿐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너구리들이 출몰하여, 교통사고 등의 사고도 당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버린 잔밥을 먹기도 하고, 사람들이 던진 먹이를 먹기도 하면서, 끈질기게 생존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 각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것도 또한 개발의 직격탄을 그대로 피하지 않고 옴 몸으로 받아 들인 너구리들의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생존 작전이 아닐까!

이 격동과 전란의 시대를 너구리들은 어떻게 살아 나가고 어떻게 죽어가는가? 가혹한 운명에 항거하면서, 그들 특유의「변신술(학)」은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과연, 이 기술은 감각 기능이 많이 떨어진 현대의 인간들에게 제대로 먹혀 들어갔을까? 그리고 이런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랑의 꽃은 역시 피었을까? 무사히 자손들은 남겨 놓았을까? 이런 이야기들을<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다뤄 보고 싶었다.


† 미야자키 하야오 / 기획
 

1941년 1월 5일 동경 태생. 연출가. 비행기 회사에 다닌 아버지와 전투 이야기를 좋아하는 큰 형의 영향을 받았으며, 독서나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년기를 보낸다. 1963년 학습원 대학 정치 경제학부 졸업 후, 도에이 동화(東映動畵)에 입사.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장면 설계?원화)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참가. 그 후「루팡3세」「미래소년 코난」 (TV?연출) 등의 작품을 거쳐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성의 비밀」로 만화 영화 감독에 데뷔한다. 대표작으로「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이웃집의 토토로」「마녀 배달부 키키」「붉은 돼지」「모노노케 히메」「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하울의 움직이는 성」(영화?감독)등이 있다. 「추억은 방울 방울」「야나가와의 운하이야기」에서는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다.

「루팡3세 카리오스트로성의 비밀」「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로 마이니치(每日) 영화 콩쿨 오토상을,「이웃집의 토토로」로 마이니치 콩쿨 일본 영화 대상과 예술선장 문부 대신상을, 「마녀 배달부 키키」「붉은 돼지」로 마이니치 영화 콩쿨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모노노케 히메」로 마이니치 콩쿨 일본 영화 대상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Osella상을 수상,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슈나의 여행」「모노노케 히메」(토구마 쇼텐), 「토토로가 사는 집」(아사히 신문사), 「무엇이 영화인가」(쿠로자와 아키라/?澤明와의 대담집. 토구마쇼텐)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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