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당찬 신부와 24살 열혈청년의 결혼 이야기

소녀가 걸고 다니는 목걸이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성장(盛裝)을 한 숙녀가 한눈에 봐도 가짜임에 틀림없는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다. 하지만 나이 어린 소녀가 가짜 목걸이를 하고 있다면 그건 자연스럽다. 어린 신부 서보은(문근영)은 항상 목걸이를 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도 어색하지만 어차피 어색한 결혼까지 하는 보은이니 목걸이가 보은이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보은이 목걸이는 진짜 목걸이'라고 시작하고 끝난다면 그건 재미없다. 나이도 어린게 해봤자 가짜겠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거 진짜였어' 라고 해야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어차피 영화같은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영화적인 소재로 시작하였다. 요즘 세상에 16살, 고등학교 1학년에 결혼을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할아버지의 거짓 연기에 속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이 영화는 "어차피 영화니까. 정말 영화 같은 얘기지만 아름답다. 멋있다"로 끌고 가야 정답인 영화이다. 그래야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 보은이가 유부녀인 것이 전교생 앞에서 밝혀지고, 전교생 앞에서 남편인 상민이 보은을 감싸는 부분에서 관객이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난 후 행복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 의도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럴 의도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진한 감동은 없었다.

뻔한 사람의 사랑 고백은 재미없다.

그것은 서보은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대역인 박상민(김래원)때문이다. 분명히 사랑할 것만 같은 사람, 나를 사랑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사람,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불쑥 빨간 장미꽃 한 송이라도 내민다면 당황스럽지만 또 그만큼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남자주인공은 박상민은 처음부터 서보은을 사랑한다. 그것은 첫 시작, 외국에서 들어온 상민이 보은에게만 선물을 줄 때부터 나타나, 신혼여행에서 도망친 보은을 감싸주고, 슈퍼마켓에서 장난을 치다 다리를 다친 어린 신부를 기꺼이 그것도 행복에 겨워하며 집까지 업고 가는 장면으로 계속 된다. 박상민은 처음부터 서보은을 많이 사랑했다는 걸 관객은 처음부터 다 알고 간다.

그래서 마지막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상민이 보은을 위해 보은의 벽화를 완성해 주는 것을 보아도,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은 느껴지지 않는다. 왜? 처음부터 상민이는 보은이를 사랑했으니까. 그다지 색다를 게 없다. 감동적일 것도 없다. 관객들은 이미 노처녀 김 선생(안선영)이 22번 서보은에게 벽화를 혼자 그리라고 한 순간 알았을 것이다. '상민이가 도와 줄 걸.' 아니나 다를까? 상민은 친구들에게 피자를 사줘가며 자신의 졸업 작품보다 마누라의 학교 벽화 그림을 그리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그리고, 보은은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자신과 상민의 어린 시절, 그네를 밀어주는 어린 날이 담긴 벽화를 보며 눈물을 짓는다.

만일 상민이 처음의 캐릭터, 24살, 혈기왕성한 대학생, 작업에 능숙한 바람둥이로써 행동했다면 아마 그 장면은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려지는 상민의 캐릭터는 일관성 있게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모습뿐이다. 오히려 영화의 처음 부분에 나타나는 상민의 캐릭터, 학교 선배를 좋아하고,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이나 길거리를 지나가는 늘씬한 여자들을 보면 방향키가 돌아가는 그런 캐릭터가 생뚱 맞다. 상민은 확실한 사건이나 계기 없이 착실한 남편의 모습으로 옮겨감으로써 관객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애매하게 처리되고 말았다.

결혼만 하면 할 줄 알았다며?

관객이 '어린신부'에게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첫째 나이 어린 신부, 고등학교 1학년짜리가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영화는 보은의 캐릭터와 문근영의 연기로 대답한다. 보은이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다. 씩씩하고, 밝은 캐릭터가 영화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문근영의 연기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며 잘 그려지고 있다. 신혼여행에서 도망을 친다든지, 결혼을 했다지만 현실감이 없는 결혼, 결혼이 주는 무게감보다는 아기자기하게 꾸민 침대가 좋고, 아직도 잘 생긴 남학생을 보면 사귀고 싶어하는 철부지 여고생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궁금증, 과연 바람둥이 박상민이 나이 어린 신부, 그것도 자기 몸에 손끝하나 대지 못하는 어린애를 도대체 어떻게 할까? 첫날밤은 어떻게 보낼까? 이런 등등의 질문은 너무 어이없게 처리하고 말았다. 감독은 관객들의 이런 호기심을 너무나 싱겁게 상민의 꿈으로 처리해 버렸다. 너무나 맥없게도. 감독은 이런 감정의 밀고 당김을 좀더 실감나게 다뤄야 했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24살의 남자가 16살 풋풋한 어린 신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여자와 한 집에서 그것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그저 꿈만 꾼다는 식의 처리는 너무 성의 없지 않은가? 고작 단한번의 시도로 달랑 포기했다는게. 감독은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한 생략으로 처리하고 만 것이다.

가짜 목걸이가 아름다워 보이려면

문근영의 가짜 목걸이가 진짜처럼 반짝일 때는 두 사람의 사랑이 확실하게 인정받는 순간이다. 그래야만 그 목걸이가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근영의 목걸이는 애매했다. 가짜 목걸이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진짜 목걸이였다면, 애들 장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 사랑이었다면, 바람둥이 철부지였는줄 알았는데 진짜 사랑하는 사나이였다면 아마 훨씬 더 감독이 생각하는 그런 행복한 순간이 왔을 것이다.

다락방21 작가 김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