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찾기

"인간"과 "진실"에 관해 한번 쯤의 성찰을 권하는 영화

10여년 전 일어났던 아직까지 미궁 속에 빠져있는 "화성부녀자연쇄강간살인사건"이라는 다소 민감한 소재와 그 소재를 작품 전체에 밀도있게 배치한 탄탄한 시나리오와 봉준호 감독의 빈틈없는 연출력, 그리고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력, 이 모두가 완벽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영화의 건재함과 살아있는 힘을 몸소 체험케 해주는 영화가 바로 <살인의 추억>이다.

80년대의 향수로 이끄는 섬세하게 표현된 미장센과 그 시대를 살던, 죽도록 범인을 잡고 싶어 했던 상반된 성격의 두 형사의 인간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는 우리의 감성을 압도적으로 끌어당긴다.

비오는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강간하고 살인하는 범인. 결박하거나 살인하는 도구도 모두 피해자의 물건들이고 지문하나 음모하나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인다. 71세 노인부터 여중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인들이 차디찬 시체가 되어가는 동안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들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한없이 열악하기만 했던 당시 수사 환경 속에서 그토록 범인을 잡기를 갈망하고 육체와 정신을 쏟아붇는 형사 박두만과 심태윤.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에 그들의 무능함을 탓하는 언론의 비판적인 시선과 마을 주민들의 우려섞인 눈초리 속에서 그들의 수사는 범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듯 풀려나가는가 싶다가도 다시 끝없는 미궁의 나락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실제 사건에 최대한 충실하려한 감독의 세심한 노력이 영화 곳곳에 엿보이며 정말 80년대 사람들이 되어버린 배우들의 역량 역시 주목할만 하다. 특히 송강호 특유의 코믹스러움은 튀지않게 무거운 소재의 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된 듯 하다. 배우로서의 타고난 끼가 다른 어떤 작품에서 보다도 돋보인다. <생활의 발견>으로 영화배우로서 신고식을 치른 김상경 역시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폭발해가는 내면 연기가 인상적이다.
상반된 성격의 두 캐릭터가 한 작품 속에서 이토록 조화될 수 있을까 싶다.

영화는 죽도록 진실을 찾아 헤매다가 그 진실이란 것을 찾지 못한 채 죽도록 안타깝고 가슴아픈 여운을 남긴채 끝이 난다. 5공화국의 붕괴 직전이었던 혼란스러웠던 그 시대에 찾을 수 없었던 진실이 과연 이 시대엔 존재하는 것일까...

<살인의 추억>은 "인간"과 "진실"에 관해 한번 쯤의 성찰을 권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부조리한 사회의 잔혹한 단면인 연쇄살인사건 속에 휘말린 다양한 인간들이 진실을 찾기위해 고분분투하다 결국엔 그 진실의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마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성공적으로 잡은 듯하다.

코리아필름 명예기자 김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