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슬픔 그리고 웃음이 뒤엉켜 우리를 전율케 한다!

1980년대 후반, 권인숙 성고문 사건(1988년), 박종철 사망 은폐조작(1987년), 아시안 게임(1986년) 서울 올림픽(1988년) 등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격변기였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런 시대에 일어난 한 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그 당시의 조악하고 슬픈 모습을 추억한다.

1986년, 평화로운 농촌마을에 한달 간격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곧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육감에 의존하는 시골형사 박두만(송강호)과 나름대로 과학수사를 하려는 서울형사 서태윤(김상경)의 수사가 시작된다.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처음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박두만은 계속적으로 동네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서태윤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하고 사건이 거대해져 갈수록 지져간다. 급기야 박두만은 무당까지 찾아가고 서태윤마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미제로 남은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코 여느 스릴러 영화처럼 범인에 대한 잔혹성과 궁금증에 대한 것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여기서 <살인의 추억>은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된다. 영화는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수사과정과 거대한 사건 속에 휩쓸리면서 겪는 그들의 인간적인 분노와 슬픔에 통해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부조리한 모습을 담는데 충실한다.

<플란다스의 개>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은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에서 평범한 일상이 아닌, 끔찍한 현실의 아픈 기억을 똑바로 직시하며 그만의 기묘한 코미디를 보여준다. 박두만은 범인이 무모증(?)일 것이라 믿고 종일 목욕탕에 죽치고 있는가하면 급기야 무당을 찾아가고 나름대로 과학수사로 하던 서태윤 역시 학교 화장실에 연쇄살인범이 있다는 한 여중생의 말을 믿고 화장실을 살펴보는 모습은 황당하고 우습기 그지없다. 여기에 사건이 거대해져 갈수록 두 형사가 서서히 상대방의 스타일로 변해 가는 모습은 진짜와 가짜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당시의 어두운 모습을 기묘한 웃음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무겁고 침울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먼저 영화는 범인을 쫓는 두 형사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계속되는 연쇄살인사건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스릴을 선사하고 송강호와 김상경의 완벽할 만큼 사실적인 연기로 재미를 더해준다.

상반기 최고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살인의 추억>은 우리의 지난날 슬픈 자화상이며 아픈 추억인 것이다.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