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노노케 히메 Mononoke Hime (Spirited Away)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역작!! "

1997년, 일본, 애니메이션/액션/판타지/모험, 135분

원작/각본/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음 악 : 히사이시 죠 l 주제가 : 요시카즈 메라
프로듀서 : 스즈키 토시오 l 제작총지휘 : 도쿠마 야스요시
제 작 : 스튜디오 지브리

목소리 : 이시다 유리코,다나카 유코, 요지 마츠다,고바야시 카오루
개 봉 : 2003년 4월 25일(금) 개봉 l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수 입 : 대원 C&A 홀딩스 l 배 급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 제54회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 최우수 영화 음악상 수상!
- 1997년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 1997년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 최우수 영화음악상 수상
- 1998년 '앙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부분 대상
- 1998년 '시바료타로상' 수상
- 2001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네티즌상 수상



대자연의 수호신 원령공주가 온다

고대의 일본....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대자연의 신들과 인간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대자연의 수호신 원령공주가 온다
 

북쪽의 끝, 에미시족의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재앙 신이 나타나 마을을 위협한다. 이에 강한 힘을 소유한 에미시족의 후계자인 '아시타카'는 결투 끝에 포악해진 재앙신을 쓰러트리지만 싸움 도중 오른팔에 저주의 상처를 받고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결국, 재앙신의 탄생 원인을 밝혀 자신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서쪽으로 길을 떠난 '아시카타'는 여행 중에 '지코'라는 미스테리한 수도승을 만나 재앙 신이 생겨나게 된 이유가 서쪽 끝에 있는 '시시'신의 숲과 관련이 깊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한시 바삐 서쪽으로 향한다.

한편, 서쪽 끝 '시시'신의 숲 건너편에 위치한 제철마을의 군주 '에보시' 일행은 식량을 수송하던 중 거대한 들개의 신 '모로' 일행에게 습격을 당해 큰 타격을 입지만 강력한 무기인 총포를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때 마침 '시시'신의 숲의 계곡을 지나던 '아시타카'는 물살에 떠밀려온 '에보시'의 부하들을 구하게 되는데 먼발치서 자신을 지켜보는 들개 신 '모로'와 그의 옆에서 '모로'의 곁에서 상처를 치료해주는 신비스러운 소녀를 보게 되고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는 모노노케 히메 '산'... '아시타가'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다...
 

귀빈 대접을 받으며 제철마을에 머물게 된 '아시타가'는 재앙신이 '에보시'의 총에 맞은 멧돼지 신이었다는 사실과 재앙신의 저주가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깊은 실의에 빠진다. 순간, 적의 침입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시타카'는 총을 든 사수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시타카'가 숲에서 만난 늑대소녀였던 것을 보고 당황하게 된다.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사람들을 공격하던 소녀는 '에보시'의 목을 노리며 달려오지만 총포로 무장한 '에보시'의 부하들은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데.. 순간, 망설이던 '아시타카'는 소녀를 구해 마을을 빠져나간다.

숲과 산을 짓밟아 터전을 넓히려는 인간들과 그들의 야욕에 분노의 재앙신으로 변한 멧돼지를 비롯한 대자연과의 처절한 사투...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서 자연의 편에 선 인간소녀 '산'과 '산'의 목숨을 구해 숲으로 들어온 '아시타카'... 두 사람은 이제 어느 편에 설 지를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인간들은 최강의 군대를 동원하여 '시시'신의 숲으로 진격을 시작하는데...





200억 원의 제작비, 16년의 구상기간, 3년의 제작기간!!
경이로운 기록들의 집합체 <모노노케 히메>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기술적, 사상적 역량이 총집결한 20세기 애니메이션의 결정판이다. <붉은 돼지> 이 후에 5년만에 만들어진 <모노노케 히메>는 무려 총매출액이 4,000억 원에 달하며 순수익은 600억 원에 가까운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낸다. 또한 <모노노케 히메>는 제작비 200억 원,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만 해도 144,000장에 달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특히, 도입부의 재앙신 촉수의 움직임을 표현한 2분10초의 장면에서는 5,300장이라는 작화 수와 1년 7개월의 기간을 소비하였다. 이 기록은 보통 장편애니메이션의 3~4편에 해당되는 작화 수로 이전까지 최고 작화 매수를 기록한 <아키라>를 10년 만에 초과한 기록으로 개봉당시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일본 내에 259개에 달하는 대규모의 극장에서 개봉된 <모노노케 히메>는 1,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일본인의 10%가 보는 기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여기에 약 일년에 달한 상영기간(97년 7월 12일에 개봉되어 다음해 7월 10일 까지 상영)은 폭발적인 흥행을 증명한다. 또한 5명의 미술감독이 진행한 <모노노케 히메>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우로 작품자체에 어느 정도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경이적인 기록들의 집합체인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세계 애니메이션 계에 현재까지도 신화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베니스 영화제' 특별상, 최우수 영화음악상 수상!!
세계 국제영화제를 휩쓴 애니메이션의 최고의 걸작!
 

97년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의 특별상과 함께 최우수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모노노케 히메>는 에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극복하고 그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또 총 수입 4,000억 원이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수입을 올림으로써 미야자키표의 흥행 위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애니메이션 계의 큰 이슈로 떠오른 <모노노케 히메>의 감독인 미야자키는 자신의 작품 전체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되풀이하였으며, 그것을 세계가 공감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그밖에도 97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98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패스티벌' 장편부분 대상', 98 '시바료타로상' 수상, 2001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네티즌 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부산영화제'의 '오픈시네마' 부분에 초청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은 미야자키의 오랜 파트너인 '히사이시 조'는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영화상' 수상일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메인 테마인 '모노노케 히메'는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김수미'가 불러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99년 발매 된 <모노노케 히메>의 앨범은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발매되는 최초의 일본 애니메이션 사운드 트랙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최초로 CG 도입, 미야자키 감독이 그래픽과 손잡았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최초로 CG와 디지털을 대량으로 활용한 작품으로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택한 첫 번째 작품이다. 수작업인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해왔던 미야자키 감독이 CG를 도입하면서도 'CG처럼 보이지 않는 CG', '손으로 그린 듯한 CG'를 위해 셀과 CG를 조화롭게 합성했다. 그 결과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셀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최대한 살 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표현해 낼 수 없는 삼차원적 감각이 가능해 지면서 영화 속 인물들과 사물들의 움직임은 전작과는 다르게 긴박하고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하여 영화의 스펙터클을 느끼게 했다. 색채에 있어서도 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브리 작품 특유의 투명한 색채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여 CG 기술로도 그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CG가 사용된 주요 장면들은 재앙신의 움직이는 촉수들과 죽어서 해골이 되는 장면, '데다라'신의 투명한 몸 속의 흐르는 별들, '야쿨'에 탄 '아시타카'의 질주, 마지막 부분의 산 전체에 식물의 싹들이이 자라나는 장면 등 여러 부분에 사용되어 표현할 수 영역을 더욱 넓혔다. 특히, '야쿨'을 탄 '아시타카'의 질주 장면은 CG 작업의 장점인 실제 속도감과 삼차원적 공간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 CG는 영화전체의 9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약15분의 장면에 사용되었다.


자연 그대로를 재현해 내기 위한 야외 촬영... 완벽에 가깝게 '숲'을 재현해 내다!!
 

미야자키 감독은 완벽에 가까운 작업과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모노노케 히메>의 숲의 재현을 위해 직접 야외 촬영에 임했다. 미야자키와 지브리의 전체 스텝이 참여한 야외 촬영은 두 조로 나누어져 미야자키의 팀과 미술감독 오가 카즈오의 팀으로 이루어졌다. 15명의 스텝과 함께 미야자키 감독이 찾아간 곳은 '신들의 숲'의 배경이 되는 '야쿠시마'. 일본에서도 조엽수림(광택이 나는 잎들을 가진 나무를 말하며 도토리나 잣 등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 상록 활엽수)이 남은 최후의 장소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부해의 이미지의 근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미술감독인 오가 카즈오의 팀은 주인공 '아시타카'가 사는 '에미시'족의 마을을 그리는데 참고하기 위해 너도밤나무의 원시림이 남아 있는 시라카미 산지를 다녀왔다. 그 결과 <모노노케 히메>의 주요 배경은 자연의 모습 속에 녹아 들어가 사실감과 함께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신비한 원시림의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서 영화 전체의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숲의 신비한 모습을 완성시키기 위한 효과음에 있어서도 실제 깊은 산 속의 공기소리를 녹음하여 사용했다. 나무들이 내는 희미한 소리를 효과음으로 사용함으로써 아무소리 없이 고요하지만 편안하면서 안정적인 느낌의 숲 속 정경을 완성, 완벽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이토록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노력들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미야자키의 완벽성을 보여 주며, 과연 걸작을 만들어내는 거장의 모습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 하다.


미야자키의 최초 시대극, '왜 시대극인가?' 자연과 인간, 신들의 대결의 기원을 찾아가다!
 

<모노노케 히메>는 중세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야자키 감독의 최초 시대극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무로마치 시대는 역사적으로 현재 일본을 형성하게 된 혼란의 시기로 이것은 21세기 혼돈의 시대를 앞두고 영화를 만든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미야자키는 말했다. 사람들이 자연에 경외감을 잃기 시작한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모노노케 히메>는 이시기를 그런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가 항상 강조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주제와 함께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는 시대극은 현재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미야자키는 일반적인 시대극과는 달리 무사, 영주, 농민 등은 등장하지 않으며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실재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주민, 유랑민, 정령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기존의 시대극의 선입과에 구속되지 않고 보다 자유스런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한 이유로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미야자키만의 큰 성향을 나타낸다. <모노노케 히메>는 철저하게 일본적인 것을 목적으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로서 일본의 전통의상들과 제철소, '화승총'등 곳곳에 역사적 고증에 의한 일본 전통적인 생활상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다양하고 신기한 일본 고대 신들이 등장하여 영화의 또 다른 신비로움을 주고 있다. 세계 속에 일본의 신비로움을 알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 <모노노케 히메>는 실제로 도 세계 애니메이션 속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철학자', '제2의 월트 디즈니'라 불리는 세계 애니메이션의 전설적 거장!!
감독, 원작, 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 속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계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1941년 도쿄 태생인 그는 고교 3학년 때 토에이 동화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보고, 애니메이션의 표현력과 인간의 움직임의 묘사에 깊은 감동을 받고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대학 졸업 후 도에이 동화에 입사. <걸리버의 우주여행>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71년, 극장용 장편 <아리바바와 40마리의 도적>의 원화, 아이디어 구성 담당했다. 이후 A 프로덕션으로 이적하여 다양한 기획과 작품으로 활약하였다. 1973년, 즈이요 영상으로 이적하여 명작시리즈 첫 번째 작품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 여러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메인 스텝으로 참여했다. 1978년, <미래 소년 코난>을 연출해 애니메이션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979년,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작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 성>로 주목을 받았다. 월간 아니메쥬에 만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연재를 시작한 그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상업적으로 대흥행을 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소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되어 일본에서 80만 관객을 동원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유럽 현지 로케이션을 통해 모든 콘티를 구성 각색했다. 이 영화는 실사에서는 표현 할 수 없는 카메라 기법과 리얼한 배경 등으로 미야자키를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고 승자로 만들었다. 87년 4월 <유천 이야기>를 제작했고, 88 <이웃의 토토로>를 개봉하는 등 일본의 모든 극영화를 제치고 국내 영화제의 상을 휩쓸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다. 이어 <반딧불의 묘>를 개봉시켜 역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두 편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마녀 키키의 특급배달>이 흥행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 그해 일본의 키네마 준보가 집계한 연간 흥행 순위에서 무려 30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관객 확보에 성공하며 79년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이후 20년만에 만화영화가 연간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어 발표한 <추억은 방울방울>이 그 기록을 갱신했다. 92년 7월 개봉된 <붉은 돼지>가 헐리우드의 <원초적 본능>을 제압하며 흥행 기록 갱신. 93년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대상 수상했다. 이듬해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이 국내 흥행에서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을 꺾다.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일본 대표로 출품되었다. 1997년 7월 <원령 공주>가 개봉되어 일본 관객 1천 4백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2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여 세계 영화계의 이변을 낳기도 했다.

<모노노케 히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초석이 되는 작품으로 미야자키 감독 작품 중 최고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를 마지막으로 은퇴 선언하였지만 <센과 치히로의 해방불명>으로 성공적인 복귀와 함께 현재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 <미래소년 코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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