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소통과 치유

영화 <조용한 세상>은 소녀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수사하던 강력반 김형사와 사람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진작가 정호가 다음 표적이 된 위탁아동 소녀를 지켜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고교시절 첫사랑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15년간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사진작가 정호(김상경 분)는 귀국 후 우연히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위탁아동이 된 소녀 수연(한보배 분)을 떠맡게 된다. 거울 같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정호와 소녀 수연의 미묘한 동거, 정우는 씩씩하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수연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웃음을 되찾는다. 한편, 소년연쇄살인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던 김형사(박용우 분)는 실종된 소녀들의 공통점이 위탁아동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다음 희생자로 지목된 소녀가 정호가 동거중인 수연임을 알게된다. 하지만 철통 같은 감시에도 불구하고 수연이는 결국 사라지고, 수연이를 구하기 위한 두 남자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영화는 연쇄실종·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보다는 첫사랑을 잃은 상처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거울처럼 조용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어린 소녀와의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자신이 쌓은 세상과의 벽을 깨고 나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 여기에 사람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류정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 한편,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라는 낮은 울림을 역설한다. 또한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위탁아동의 성폭행 문제는 성폭행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을, 그리고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구조와 소녀를 지키려는 두 남자의 휴먼드라마는 잘 섞이지 못해 재미와 감동은 다소 떨어진다. 범인에게 접근해 가는 과정은 허술하고 작위적이어서 장르적 긴장감은 떨어지며, 남자와 소녀가 나누는 교감과 사랑을 공감하기에는 드라마의 밀도도 다소 떨어진다. 특히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사건과 드라마 속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부분은 흠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의 전작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한 남자의 소통과 치유과정을 미스터리를 휴먼드라마로 풀어낸 <조용한 세상>은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배급을 통해 12월 14일 개봉된다.

2006.12.04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