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매력 [남자 태어나다]

일취월장인가. 아니면 와신상담인가.
뭐라 말하기도 민망한 영화[천사몽]의 박희준 감독이 선보인 두 번째 영화를 경험하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질문이다. 감히 표현하자면 곽경택 감독의 [닥터K]를 보면서 [친구]를 떠올릴 수 없었던 이치와 같다. 박희준 감독의 [남자 태어나다]는 다르다. 분명히 [천사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번에는 배우도 요리하고 드라마도 잡는다. 거기다가 웃음과 감동까지 낚아챈다.

[남자 태어나다]는 분명 남자들에 관한 영화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마쵸드라마(machodrama-남성우위극)라는 생각은 버리자. 이런 생각은 영화를 즐기는데 방해물로 작용할 가능성만 커진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섬에서 벌어지는 대학 보내기 소동은, 꽤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화면을 메우는 캐릭터들은 살아 숨쉬고, 드라마는 촌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흐르지만 생명력이 있다. 예상대로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악인 혹은 싸워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자신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싸우면서 꿈을 키워간다.

이 영화는 위의 성격처럼 아날로그이다. 모던하고 비주얼한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다.
[천사몽]에서 지녔던 모든 것을 버린 것처럼 영화는 구식이고 정직하다. 투박한 맛이 살아있고,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 속에서 살아난다. 이 영화가 빚진 것이 있다면, 바로 배우들의 연기이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동화되어서 영화에 절대적인 힘을 더해준다. 아마도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토록 감독의 절치부심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이 영화가 놀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투른 연출력도 노출되며, 비약적인 상황도 눈에 띄고, 크게 자극하는 무언가도 없다. 하지만, 영화는 정직하고 투박한 맛이 있다. 세 남자와 코치의 열렬히 살아보기가 예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교 없이 정직하게 대사와 몸짓으로 일구어내는 제 탄생은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근래의 기교 넘치고, 치장에만 신경 쓰는 영화 틈에서 낡은 라디오 같은 영화가 반가운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머리로 보려는 생각만 접어둔다면, 이 영화는 가슴으로 느끼기에 충만한 매력을 지닌 영화이다. 디지털세상에서 오히려 풋풋하게 다가오는 낡은 라디오의 잡음처럼 말이다.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