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웃음과 풍자

멈추지 않는 기차에서의 일대소동.
[라이터를 켜라]는 무제한으로 달리기만 하는 세상을 꼬집으며 의미 있는 웃음을 던진다. [주유소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을 집필한 박정우 작가는 이번에도 코미디의 습격에 성공하고 나아가서 생각의 여지도 선사한다.

멈추지 않는 기차는 세상의 축소판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한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만년백수 '어리버리' 허봉구는 라이터 때문에 기차에 오르고 악전고투를 벌이면서 마치 '포레스트검프'처럼 자신도 모르게 영웅이 된다. 사실 그가 영웅이 된 것은 바로 다수의 승객들 때문이다. 다수의 승객들은 목청만 높일 뿐 행동이란 없다. 그런 승객들에겐 어리버리 허봉구가 제격이다. 그를 다그쳐서 자신의 목청을 실현화시키고 자신들은 안전한 객실에만 머물면 되는 것이다. 허봉구는 자신의 의지로 기차에 올랐고 일련의 분투기로 삶의 열정도 되찾지만, 허봉구를 위험한 기차지붕으로 몰아 올리는 이들은 바로 승객들로 또 다른 이름의 '허봉구'인 것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 세상을 구원해줄거라 생각하는 나약하고 힘없는 대다수의 허봉구 말이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듯 국회의원 박용갑은, 자신이 리더이고 민족투사였다고 힘주지만 사실은 조폭의 힘을 빌어 선거를 치루고 그에 답하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이 일련의 소동을 야기하는 비열하고 치사한 '정치인'인 것이다. 박용갑이 보여주는 위선과 어리석음은 기차를 멈추게 하려는 경찰간부들의 어리숙한 대화와 맞물려서 웃음을 자아내고 이는 승객들이 주는 웃음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위선적인 웃음과 어리석음은 승객이나 정치가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가가 힘주어 말하는 민족투사나 승객이 허봉구를 기차지붕으로 몰아 올리는 행위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허봉구의 라이터를 취득한 조폭 양철곤은 의원에게서 돈을 받아내려고 기차를 탈취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려는 가장의 모습이 역력하다. 마지막에 이런 가장의 모습은 양철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극대화시키고, 결국에는 허봉구에게 '구원'에 가까운 한방으로 양철곤의 무제한 질주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양철곤은 허봉구에게 '그깟 라이터가 도대체 뭐냐'라고 묻는데, 허봉구에게는 삶의 열정을 새롭게 불태우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고 양철곤에게는 자신의 삶에서 라이터만큼이나 하찮게 여겼을 혹은 잊었을 '바른'삶의 조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세상과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로 이 영화는 풍요롭지만, 이런 내면을 읽지 않고 영화를 즐겨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라이터를 켜라]는 그만큼 충분히 즐거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초반의 어리버리 허봉구의 일상은 안쓰러운 연민의 웃음이 일품이고,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멈추는 순간까지는 기발한 상황이 전달하는 웃음과 액션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처음과는 상반된 허봉구의 늠름한 모습으로 유쾌한 결말을 선사한다. 즐기기만 하여도 혹은 풍자를 속시원하게 읽어도 그 어느 방향도 모두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잘 만들어진 영화 [라이터를 켜라]는 지금 무제한으로 우리의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