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림트 Klimt

" 20세기가 낳은 천재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사랑, 예술을 그린 영화 "

2006, 오스트리아/독일/영국/프랑스, 전기 드라마, 97분

각본/감독 : 라울 루이즈
제 작 : 매튜 저스티스 外
촬 영 : 리카르도 아로노비치
편 집 : 발레리아 사르미엔토
세트 디자인 : 카타리나 보퍼만
의상 디자인 : 비르깃 허터

출 연 : 존 말코비치, 베로니카 페레스, 새프론 버로우즈, 스테판 딜레인, 니콜라이 킨스키

개 봉 : 2006년 6월 29일(목) 개봉 l 관람등급 : 18세 관람가
수입/배급 : 스폰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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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개봉관 8개, 최종 확정!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사랑, 예술을 그린 영화 <클림트>의 개봉관이 확정됐다. 확정된 개봉관은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압구정)와 CGV 인디영화관(강변, 상암, 인천, 서면), 메가박스(코엑스, 목동) 등 총 8개 관이다.

파격적 관능과 고도의 장식적 스타일, 화려한 금박 등 독특한 화풍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클림트는 최근 대표작 중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Ⅰ’(1907)이 화장품 재벌이자 맨하튼의 뉴에 갤러리 관장이기도 한 로널드 로더에게 1억3천5백만 달러라는 회화 거래 사상 최고가에 판매되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클림트>는 칠레 출신의 거장 라울 루이즈의 환상적인 연출력과 ‘클림트의 현신’에 다름 아닌 존 말코비치의 매혹적인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클림트 평생 영감의 원천이었던 로맨틱한 모험을 중심으로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 세기말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그가 감당해야 했던 비난과 찬사 등을 눈부시고 화려한 비주얼로 그려냈다.

클림트의 ‘황금빛 월드’를 스크린으로 만나는 설레임이 있는 영화, <클림트>는 6월 29일에 개봉한다. (2006.6.22)

코리아필름 편집부


존 말코비치 주연 <클림트> 6월 29일 개봉!
 

20세기가 낳은 천재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사랑, 예술을 그린 영화 <클림트>의 개봉일이 6월 29일로 확정됐다.

아카데미 예술에 반하여 아르누보 성향이 강한 고도의 장식적 스타일을 추구했으며 파격적인 관능을 추구한 클림트는 19세기말 당시, 고국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야유를 받지만 파리는 환호와 찬사를 보낸다. 영화는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클림트가 신비로운 프랑스 무희, 레아를 만나게 되고, 이때부터 평생동안 그에게 터질듯한 영감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그녀와의 열정적 사랑을 중심 줄거리로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주축이 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의 프러덕션이 손을 잡고 3년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시킨 <클림트>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최고 배우들과 최고의 제작진들이 승선한 거대 프로젝트다. 영화의 핵심인 클림트 역은 연극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특유의 카리스마와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배우 존 말코비치가 맡아 열연했는데 예리한 감성, 정열적인 영혼과 더불어 외모까지 흡사해 “존 말코비치는 구스타프 클림트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또한 세부 디테일까지 정확한 ‘클림트 월드’를 창조하기 위해 빈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 말 빈에서 유행하던 혁신적 아르누보 스타일의 의상과 세기말 빈의 벨 에포크의 매력이 넘치는 화려한 헤어스타일은 황금빛을 머금은 클림트의 작품만큼이나 눈부시고 환상적인 비주얼의 향연을 선사한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격변의 진통을 겪은 세기말의 빈과 파리를 배경으로 이 새로운 물결의 선봉장으로서 예술가 클림트가 겪는 비난과 찬사, 예술에 대한 열정, 로맨틱한 모험 등을 그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매혹적으로 스크린 위해 펼쳐놓은 <클림트>는 6월 29일 만날 수 있다. (2006.6.05)

코리아필름 편집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곧 쾌락이다.”

꽃 같은 열정과 신비한 관능의 화가 클림트
 

세기말의 흥분과 긴장감이 감돌던 1900년. 화려하고 관능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을 상징하는 클림트의 그림은 고국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야유를 받지만 파리는 환호와 찬사를 보낸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철학”이라는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클림트는 축하파티에서 프랑스 무희이자 여배우인 레아를 소개받고 이때부터 그에게 터질 듯한 영감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레아에 대한 열정이 시작된다.


에로스와 아름다움, 사랑과 열정으로 직조된 매혹의 태피스트리
 

환상의 뮤즈이자 에로틱한 이상, 육체적 욕망의 현신으로서 그녀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 거울처럼 투영되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여성성은 클림트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영원한 탐색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레아와 똑같이 생긴 또다른 레아가 등장하고 의문의 사나이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쫓자 클림트는 점차 환영에 시달리고 그의 정신적, 예술적 방황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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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KLIMT PROJECT 클림트의 ‘황금빛 월드’를 창조하라!
 

클림트가 죽은 지 정확히 100년 후인 2002년, 대망의 ‘클림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주축이 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의 프러덕션이 손을 잡고 3년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시킨 <클림트>는 각국의 최고 배우들과 최고의 제작진이 승선한 거대 프로젝트였으며 이처럼 국제적인 협력이야말로 예술적으로 도전거리가 엄청난 영화의 재정과 배급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제작자 디터 포클라코(Dieter Pochlatko)는 각본과 연출에 있어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포악한 영혼> 등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라울 루이즈 감독을 일찌감치 점찍어 두었고 클림트 역에는 오로지 존 말코비치만을 염두에 두었다. 다행히 라울 루이즈 감독이 먼저 연출 제의를 승낙했고 이미 루이즈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는 존 말코비치 역시 합류를 결정했다. 말코비치 외에도 베로니카 페레스(독일), 스테판 딜레인(영국), 새프론 버로우즈(영국), 니콜라이 킨스키(프랑스) 등도 곧 프로젝트에 승선했다.

촬영은 2005년 1월에서 3월까지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의 쾰른에서 이루어졌다. 세부 디테일까지 정확한 클림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영화의 많은 부분은 빈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내부 촬영을 위해서만 스튜디오 세트를 사용했다. 19세기 말 빈에서 유행하던 혁신적 아르누보 스타일의 의상이 100벌 넘게 제작되었으며, 세기말 빈의 벨 에포크적 매력이 넘치는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환상적인 비주얼의 향연을 선사한다. 촬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루이즈 감독과 함께 작업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빛의 마술사’ 리카르도 아로노비치가 맡아 황금빛을 머금은 클림트의 작품만큼이나 풍부하고 다양한 색체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음악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포악한 영혼> 등에서 이미 루이즈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칠레 출신의 호르헤 아리아간다가 맡아 최고의 팀워크을 보여줬다.


2. JOHN MALKOVICH IS GUSTAV KLIMT 클림트 현신, 존 말코비치
 

연극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특유의 카리스마와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배우 존 말코비치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에 자신의 이름과 페르소나를 빌려준 것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뉴욕비평가협회, 시카고비평가협회 남우조연상 수상)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예민함과 아트 가펑클의 감미로움을 모두 가진 배우 존 말코비치는 예리한 감성, 정열적인 영혼과 더불어 외모까지 흡사해 촬영중이나 영화가 공개된 후에도 “존 말코비치는 구스타프 클림트”라는 명제가 공공연히 쓰일 정도로 예술가 클림트를 연기함에 있어 대체불가능함을 보여줬다. 라울 루이즈 감독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포악한 영혼>에 이어 세번째로 함께 작업했다.

존 말코비치는 195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1976년 그는 친구인 게리 시니즈와 함께 시카고의 스테픈울프 극장을 설립했다. 7년 후 뉴욕에 온 그는 샘 셰퍼드의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트루 웨스트>에서의 호연으로 오비에상을 수상했고 1985년 브로드웨이 연극을 TV영화로 만든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더스틴 호프만과 연기했으며 첫번째 에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4년 <마음의 고향>이라는 영화로 첫 스크린 데뷔를 했으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사선에서>(1993)의 사이코 정치 암살범 역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다. 1998년에는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도노시티아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말코비치는 현재 연기와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주요 필모그라피
<아트 스쿨 컨피덴셜>(2006)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리버틴>(2004) <포악한 영혼>(2001) <존 말코비치 되기>(200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99) <아이언 마스크>(1998) <콘에어>(1997) <여인의 초상> <메리 라일리>(1996) <사선에서>(1993) <마지막 사랑>(1990) <위험한 관계>(1988) <유리 동물원> <태양의 제국>(1987) <킬링 필드> <마음의 고향>(1984)


3, KLIMT VS RAUL RUIZ 라울 루이즈 감독, 클림트와 예술적 영혼을 공유하다!
 

“나는 클림트의 작품이 겨냥 당했던 것과 유사한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전체보다는 세부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표현보다는 장식을 중요시했던 것과 같이. 그러나 이런 경향은 인류가 ‘디테일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때’,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시대적 특징이었다. 영화는 아름다움과 환희, 그리고 데카당스로 가득차 있지만 결코 죽음과 미래에 대한 전조도 놓치지 않고 있다. 나는 영화가 한 세기의 마지막이었던 당시를 잘 반영하길 바란다.”

라울 루이즈 감독은 연출에 있어 클림트 작품의 독특한 스타일에 의존했다.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풍부하고 도발적이며 획기적인 신기원을 이룩한 예술가 클림트의 삶을 스크린으로 가져오기 위해 눈부신 아름다움과 환상적인 색채, 공간의 왜곡과 복잡한 앵글을 사용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매독으로 인해 악화되는 클림트의 정신 상태와 함께 통렬하게 표현되는 것들(공감이 미세하게 변하고 물체와 벽이 움직이고 빛의 근원이 흔들리며 배우의 움직임은 율동과 같고 연기는 파편화된)을 정교화하여 포착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60여 가지의 스타일 효과로 놀라운 테크닉을 보였던 감독은 <클림트>에서 결국 120여 가지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고, 클림트의 예술은 물론 그가 살고 있던 19세기 말의 아름다움과 환희, 데카당스를 풍부히 재현해냈다.


4. KLIMT & THE END OF ERA 세기말의 열정과 환희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영화는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을 단선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환각이나 착시라고 해도 좋을 만한 환상이 개입하고 세기말 빈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성적인 긴장감으로 가득한 퇴폐적 분위기를 끝없이 돌고 도는 어지러움과 기분 좋은 흥분이 특징인 ‘왈츠’와도 같은 구성으로 잡아냈다. 불가사의하게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갑작스럽게 끝나는 왈츠와 물질과 상상의 형태가 뒤섞이고 중심점을 향한 끝없는 나선형 장식들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처럼 영화 <클림트>는 역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격변의 진통을 겪은 세기말의 빈과 파리를 배경으로 이 새로운 물결의 선봉장으로서 예술가 클림트가 겪는 비난과 찬사, 예술에 대한 열정, 로맨틱한 모험 등을 그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매혹적으로 스크린 위해 펼쳐놓는다.

영화의 한 축은 한 평생을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의 그림처럼 살다간 클림트의 삶과 예술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모델들과의 사랑(클림트는 이들과의 사랑으로 10명이 넘는 자식을 두었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클림트를 묵묵히 받아주었던 평생의 정신적 연인 에밀리 플뢰게와의 관계(‘키스’의 주인공), 육체적 욕망과 환상적인 에로스를 대변하는 레아와의 사랑, 클림트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힌 에곤 실레와의 우정과 예술적 교류 등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직조해냈으며, 이 모든 건 매독에 걸린 클림트의 환상과 함께 현기증이 날만큼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기가 바뀌는 시점, 빈의 커피하우스에 모여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당시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이루고 있다. 장식을 배제하고 철저히 기능 중심의 순수주의 건축을 주창했던 아돌프 루스와 철학가 비트겐슈타인, 쇼킹한 알레고리로 오스트리아 정부와 빈 상류사회의 반감을 산 클림트를 끝까지 옹호했던 여성 평론가 베르타 추커칸들과 후원자 세레나 레데러 등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의 사건과 대화를 바탕으로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의 긴장감을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영화는 클림트의 예술과 그의 인생에 대한 성스러운 오마주를 받친다.


GUSTAV KLIMT (1862~1918) & HIS ART
 

“예술가 클림트가 궁금한 사람은 내 작품을 보라.”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적 화가이자 ‘빈 분리파’의 설립자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인습적이지 않고 에로틱한 그림들로 20세기 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금은 세공업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 예술가의 정식 수련은 빈의 국립응용미술학교(미술공예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빈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클림트는 1883년 벽화를 중심으로 특화된 독립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19세기 아카데미의 전형적 화풍을 따랐고 이런 특징은 1888년 빈 부르크 극장의 벽화와 미술사 박물관의 계단실 장식에서 보여진다.

1897년 클림트의 성숙한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아카데미 예술에 반하여 아르누보 성향이 강한 고도의 장식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화가들의 모임인 빈 분리파를 결성하였다. 곧 그는 빈 대학의 강당 천정에 걸릴 세 편의 우화적인 벽화를 그리게 되고 극심한 비난을 받는다. 이 작품들의 에로틱한 상징과 비관적 성격은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고 벽화는 거부되었다. 1902년 작품인 벽화 ‘베토벤 프리즈’와 브뤼셀의 ‘스토클레 프리즈’(1905~1911)하우스의 식당 벽화는 정확한 선형의 드로잉과 과감하고 자의적인 장식 패턴 및 금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클림트는 추상적 모티브와 구상적 모티브, 양식화를 두루 사용하였으며, 모자이크 기술을 사용한 클림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키스’(1908)를 비롯 빈의 패셔너블한 예술 후원자인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1906),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등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클림트의 작품인 ‘키스’에서는 키스하는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아하고 유기적인 윤곽으로 추상화된 모자이크 형식의 로브에 둘러싸인 채 꿈처럼 떠있다. 또한 그림자를 배제하고 평면적이면서도 정교하게 구성된 장식으로 오히려 피부의 풍부한 관능을 강조하고 있다. 선과 생물학적 장식의 리드미컬한 부유와 금박은 클림트의 미증유적 그림의 특징이며 아르누보 운동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DIRECTOR 환상적 이미지를 연출하는 시인, 라울 루이즈 감독
 

장 뤽 고다르 이후, 매 장면마다 지적인 재미와 예술적 실험을 행하는 흥미롭고도 혁신적 감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라울 루이즈 감독은 20년간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한 가지 스타일에 매이는 법이 없었다. 1956년과 1962년 사이, 아방가르드 씨어터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100편이 넘는 희곡을 직접 쓴 그는 35mm는 물론 16mm, 비디오, 영화, 유럽 TV, 다큐멘터리부터 픽션 영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칠레 출신인 루이즈 감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라틴문학 거장들의 우화 전통에 영향을 받아 현실과 환상이 물 흐르듯 미끄러지며 섞이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연출하는 시인이다. 영화 속 룰은 영원히 바뀌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독과 함께 흥미롭고 지적인 게임에 동참하도록 권유한다. 감독이 사용하는 영화 속 기술은 영화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해서 기묘한 웰지안(wellesian-오손 웰즈) 앵글과 클로즈업, 당황스런 시점 쇼트와 현혹적인 컬러, 미로와 같은 내러티브로 관객의 호흡을 매번 흔들고 비껴가는 테크닉들을 보여준다. 루이즈만의 독창성과 함께 피에르 클로소프스키(l’hypothese du tableau vole 1978)를 비롯 프란츠 카프카(<유형지> 1970), 라신(<베레니케> 1983), 셰익스피어(<리차드 3세> 198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보물섬> 1985) 등 그가 영향을 받은 무수한 인물들 역시 루이즈를 말해준다. 그의 주요한 영감의 원천은 오손 웰즈와 할리웃의 B급 무비로, 라울 루이즈 감독은 라신과 칼데론의 고급예술과 로저 콜만의 저급예술의 편가르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주요 필모그라피
<클림트>(2006) <시골에서의 나날들>(2004) <포악한 영혼>(2002) <두 어머니의 아들 - 순수의 연극>(2000) <꿈 속의 사랑싸움>(200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99) <섀터드 이미지>(1998) <범죄의 계보>(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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