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광대들의 피할 수 없는 비극과 인간애

김태웅 원작의 연극 '爾(이)'를 영화화한 <왕의 남자>는 조신시대 연산조를 배경으로, 연산과 그의 애첩인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궁으로 들어가게 된 광대들의 피할 수 없는 비극과 인간애를 그린다.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 분)은 힘있는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이준기 분)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공길과 함께 연산(정진영 분)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 분)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되고 공연은 대 성공을 이루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 연산의 최측근인 내관 처선(장항선 분)의 도움(?)으로 궁으로 들어간 장생의 놀이패는 간신히 공길의 기지로 왕 앞에서의 공연을 무사히 넘기고 이들의 공연에 흡족한 왕은 궁 내에 광대들의 거처, 희락원(喜樂園)을 마련해 준다. 이어 장생의 놀이패는 탐관오리의 비리를 풍자극을 선보이고 급기야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이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을 선보인다. 하지만 놀이가 진행될 때마다 중신들과 선왕의 여자들을 죽어나가고 공길이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장생과 공길은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연산군 시절의 이야기를 영화적 픽션과 광대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흥미롭게 풀어낸다. 또, 광대가 펼치는 놀이판을 통해 단순히 웃기기보다는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마저 화려한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광대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져준다. 자신의 분노와 자유에 대한 욕망을 광대들의 통해 표출하는 연산군과 그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는 장녹수의 모습에서는 인간적이 연민이 느껴진다. 연극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풀어낸 감독의 이야기 솜씨와 절묘한 유머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며 극을 끌어가는 탄탄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개성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더해져 영화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새로운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준 정진영의 연기는 단연 일품이며 가공의 인물을 흡입력 있게 연기해낸 감우성과 중성적인 매력의 아름다운 공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신인 이준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광대들의 신명나는 놀이판도 볼거리. 스타급 배우가 나오진 않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명연기에 힘입어 충분히 관객들의 입소문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왕의 남자>는 시네마서비스 배급을 통해 오는 12월 29일 개봉된다.

2005.12.13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