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당한 부모의 눈물의 호소

지난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된 영구미제 실화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는 <죽어도 좋아><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과 배우 설경구, 김남주, 강동원, 김영철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지난 1991년 1월 29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유괴당한 9살 이형호 어린이가 44일 후 한강 배수로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됐던 이 비극적인 사건은, 범인이 끊임없는 협박전화로 비정하게 부모를 농락했다는 점, 그 범죄 수법이 경찰의 추적을 유유히 따돌릴 정도로 치밀하고 지능적이었던 점이 당시 세간에 큰 화제가 됐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더불어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당시로선 드물게 과학수사가 진행되고, 지난 15년간 총 인원 10만 여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난 1월 결국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1992년 SBS 다큐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조연출로 이 사건을 직접 취재하면서 충격과 분노를 느꼈던 박진표 감독은,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쉽게 잊거나 용인하지 않도록 영화적으로 재조명하기로 결심하고 제작에 착수하고 드디어 2007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영화는 유괴범에게 어린 아들을 빼앗기고, 집요한 협박전화에 시달리게 된 부모의 피말리는 44일간을 그린다. 영화를 통해 실제 범인의 단서를 알리고자 한 유가족과 감독 의지처럼, 영화는 다른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은 모두 영화적으로 재구성했지만 범인에 관해서만은 철저하게 실제사건에 근거한 객관성을 고수했다. 또 실제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되겠다는 유가족의 애끊는 심정을 담기 위해 '현상수배극'을 표방하며 마지막 엔딩신에 실제 범인의 협박전화 녹취 음성과 몽타주, 필적 등을 공개하는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단순하게 범인을 잡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며 실제 부모의 눈물의 호소를 담은 셈이다. 영화는 '유괴'라는 소재로 차용하고 있지만 장르적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실제사건처럼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면서 철저하게 아이를 빼앗긴 피해자 부모의 심정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 놈을 잡기 전에는...'이라는 포스터 카피처럼,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의 애절함과 무력함, 죄책감 등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막힌 심정이 두 주연배우의 혼신의 열연에 힘입어 고스란히 전달된다. 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어린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잔인한 협박을 해대는 지능적인 유괴범 ‘그놈’과 아이를 돌려달라 절규하며 ‘그놈’의 지시에 따라 서울전역에서 '조리돌림'(죄지은 사람을 끌고 다니면서 망신시키는 일)을 당하고도 아이를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어다니는 절박한 부모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며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자아낸다. 유괴범과 부모 사이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고 무능력한 경찰들의 에피소드가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두 주연배우의 열연과 함께 실제사건 범인의 목소리 특징을 실감나게 재현해낸 강동원의 목소리 연기도 인상적이다. 우정출연도 좋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게 목사로 출연한 윤제문의 등장은 중간 극의 흐름을 깨뜨리는 아쉬운 부분이다.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국민과 더불어 범인을 꼭 잡겠다는 감독과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그놈 목소리>는 12세 관람가로 2월 1일 개봉한다. 과연 <그놈 목소리>가 공소시효라는 사회적 이슈를 자연스럽게 환기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제작사 측은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등과 함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와 그 소급 적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다.

2007.1.22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