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영화 아니라니까요!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신의 사랑을 감추며 진수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려는 ‘연희’, 본의 아니게 인주에게 자신을 속이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온 ‘형태’, 그리고 한눈에 필이 꽂혀버린 봉자를 구하기 위해 한 겨울의 냉수마찰도 불사하며 디스코 왕이 되기를 자처하는 ‘해적’까지. 저마다의 사랑은 점토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체육 시간에 유유히(?) 학교에서 도망쳐 시시껄렁한 소일거리로 간식 값을 마련하고, 주저 없이 담배를 물고, 소주를 사거나 혹은 집에서 몰래 씨바스 리갈이나 빼내와 먹는 봉팔(임창정), 성기(양동근), 해적(이정진). 지대가 너무 높아 똥 푸는 차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인 달동네 꼭대기, 그들의 터전에서 우적거리며 살아가는, 깡패, 건달, 양아치도 아닌 그들에게도 보일 듯 말 듯한 삶의 목표는 있다.

주먹으로 치고 박는 해적의 일상에 나타난 운명적인 여인 봉자. 그녀가 봉팔의 동생임을 알게 된 해적은 아버지의 사고로 빚을 갚기 위해 술집으로 간 열 일곱 살 봉자를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클럽 사장(이대근)은 봉자의 몸값으로 주먹질 대신 해적에게 디스코 왕 경연대회에서 1위를 할 것을 요구한다. 해적은 과연 디스코왕이 되어 봉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김동원 감독이 1998년 완성한 <81,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26분짜리 단편을 1시간 30분가량의 장편으로 만든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일까. 운동장 탈출 장면이나 달 모양처럼 번뜩이는 편집의 세심함과 구석구석 배치해 놓은 정은표, 안석환, 이대근 등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입심이 관객들의 웃음을 사는데 충분했지만 스토리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영화를 흡입력 있게 끝까지 이끌어가는 뒷심이 부족했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마론인형으로 포장된 한채영의 연기와 임창정의 코믹연기 역시 함량 미달이었다.
반면 곱상한 이정진의 망가진 역할과 원로 카리스마 이대근의 모습은 젊은 영화의 신선함을 주었고 철저히 고증된 것은 아니었지만 1980년대 당시의 일상을 재밌게 재현한 감독의 재치는 눈여겨 볼만 하다. 세계적인 재즈 아카펠라 그룹인 <리얼그룹>의 음악도 들을 만 하다.(영상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아쉽게도 춤이 한 소재가 된 영화 <울랄라 시스터즈>처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만 ‘순진한 세상’에 살고 있을 법한 ‘순수한 세 남자’의 삶과 사랑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개봉은 6월 6일.

코리아필름 명예기자 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