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적 캐릭터들이 엿보이는 공포영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노랫말이 음산한 음악과 함께 퍼스트 씬을 장식한다. 그러나 컴컴한 부엌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물과 머리카락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공포영화에 익숙해진 이유인지 머리카락의 공포는 낯익을 정도이다. 바야흐로 공포영화의 귀신들이 기계화시대에 발맞추어 <링>의 비디오테이프, <폰>의 핸드폰으로 보여주었다면 <령>의 물귀신은 새로움과 원시적인 분위기를 흐르게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물귀신에 대한 공포보다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한다.

‘가족’에서 기인하는 공포

공포영화의 동기부여는 가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출생배경과 주위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원인을 제공한다. <령>도 가난한 집에서 자란 지원과 수인은 죽마고우친구이다. 그들이 죽마고우가 된 것은 가족환경이 비슷해서 친해진 것이다. 그러나 지원의 아버지가 사업이 번창하면서 지원의 집은 부유해지기 시작된다. 그런 지원은 가난했던 과거를 감추고자 한다. 그래서 함께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자 수인을 이용하게 된다. 어느 날, 지원은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그 기억을 되찾으면서 지원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공포로 찾아오기 시작된다.

지원의 눈에서 보는 령

<령>에서 만나는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주인공 지원의 기억 속에서 넷 친구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큰 눈만큼 공포에 질려 물귀신에게 죽음을 당하는 은서, 정신병자가 된 미경, 불안감에 방황하는 유정, 그리고 나쁜 기억은 잊은 채 착하게 보이는 지원의 모습까지 영화는 빠르게 보여준다. 왕따 당하는 은서는 불쌍해 보이지만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엿보여준다. 지원의 기억을 쫓아갈수록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놀라며, 미경과 유정이 공포감에 떠는 모습도 긴박감을 조성해준다. 특히, 주목할 것은 몽환적 분위기가 나는 지원의 엄마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에서 홀로 있는 엄마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귀신에 홀린 듯 지원을 향해 밝게 웃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진다.

수인의 눈에서 보는 령

또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수인을 통해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즐기는 가운데 과거의 얼굴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경은 정신병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에게 모든 것을 돌리는 모습, 지원과 수인이 물 속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과거 은서의 모습, 묵묵히 이들을 바라보는 유정, 과거의 모든 것을 묵과시키고 용서해주라는 지원, 지원처럼 되는 것이 꿈이면서 자신의 과거를 창피해하는 또 다른 모습들이 정서적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피해자 < 가해자에서 보는 령

영화는 가해자 지원을 통해 네 명의 친구를 보는 시점으로 클라이막스까지 끌어준다. 보통 공포영화가 원한이 있는 피해자가 복수를 하는 것을 가해자가 이해하는 스토리였다면, 가해자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하고 피해자의 실마리를 파헤치면서 가해자 스스로가 이해하려는 스토리로 꾸며져 있다.

한편, 피해자 수인의 입장은 지원의 과거 속에만 존재할 뿐 수인의 과거는 없다. 두 친구의 죽마고우가 등장하는 공포영화 <가위>에서 청순한 은주(하지원)와 당찬 여인 혜진(김규리)처럼 서로가 모르는 어릴 적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은주처럼 마을버스가 불타는 사건이 있었듯이 지원이 모르는 수인의 과거가 있었다면 공포감을 더하지 않았을까?

코리아필름 조진영 기자

식상한 소재와 빈약한 스토리로 승화되지 못한 공포

영화 <령>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 지원(김하늘 분)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친구들의 방문과 그들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서서히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되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공포를 담고 있다.

지원의 잃어버린 기억과 친구들의 알 수 없는 죽음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돼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한다. 피가 난무하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와는 다르게 심리적인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친한 친구로부터의 배신과 왕따, 그리고 복수라는 식상한 소재의 빈약한 스토리는 숨겨진 진실과 극중 지원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게되면서 느끼게 되는 혼란과 두려움을 공포로 승화시키지는 못한다. 게다가 기존 공포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화 속 공포 장치들과 느슨한 구조는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공포의 강도를 약하게 만들고 만다. 또한, 김하늘의 밋밋한 연기로 인해 캐릭터가 단조로워져 극의 집중을 떨어뜨린다.

<연애소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의 팝콘필름에서 제작한 <령>은 쇼박스의 배급을 통해 오는 6월 18일 개봉된다.

2004.06.07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