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다 Frida


" 멕시코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불꽃 같은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

2002년, 미국 /캐나다, 드라마, 120분

제작사 : 미라맥스 l 감 독 : 줄리 테이머
제 작 : 셀마 헤이엑, 사라 그린, 제이 폴스타인, 리즈 스피드, 낸시 하딘, 린드세이 플릭킹어, 로베르토 슈나이더
원 작 : 헤이든 헤레라 l 각 본 : 로드리고 가르시아,애드워드 노튼
촬 영 : 로드리고 프리에토 l 음 악 : 엘리엇 골덴탈
프로덕션 디자인 : 펠립 페르난데즈 델 파소
의상 디자인 : 줄리 웨이스 l 미 술 : 베르나르도 트루일로


출 연 : 셀마 헤이엑, 알프레드 몰리나, 제프리 러쉬, 애슐리 쥬드, 안토니오 반데라스, 에드워드 노튼, 발레리아 골리노, 미아 마에스트로

개 봉 : 2003년 11월 21일(금) 개봉 l 관람등급 : 18세 관람가
수입/배급 : 코리아 픽쳐스㈜ 예고편

- 2002 베니스 국제영화제 개막작
- 2003 아카데미 작곡상, 분장상 수상



<프리다> 장기상영 돌입 이벤트
 

지난 11월 12일 전국 16개 극장에서 개봉했던 영화<프리다>가 개봉 2주차가 넘도록 평균 좌석 점유율 60%를 기록하며 꾸준한 관객 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까지 집계된 총 관객 스코어는 5만, 비록 작은 숫자이지만 대한극장 점유율 95%, 서울, 메가박스 70%, 강남 씨티극장 87%를 기록하는 등 적은 스크린 수에 비해서는 알찬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이는 <프리다>를 찾을 관객들이 가장 밀집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극장을 선별하여 프리미엄식으로 개봉한 배급 전략이 성공한 것. 게다가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한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은 바 크다.

이렇듯 좋은 성적으로 꾸준히 연장 상영될 조짐을 보이는 <프리다>는 관객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20자 평 쓰기 이벤트 및 예매 이벤트가 준비중이다. 맥스무비와 메가박스 극장에서는 연속적인 매진행렬을 축하하며 2차 예매 이벤트를 진행한다. 영화 <프리다>를 예매하면 영웅 DVD 및 <프리다>책, 영화 OST는 물론 멕시코 전통술 데낄라 등 푸짐한 상품이 제공된다.

올해를 한 달 앞둔 싸늘한 겨울 초입, 따뜻한 감동과 삶의 에너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프리다>를 특별한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도 좋은 월동준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2003.12.09)

코리아필름 편집부


형편 없어서 아름다운 '키치' 패션의 선구자 '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 이색 패션쇼 시사회
 

오는 11월 21일 개봉하는 영화 <프리다>를 홍보하는 프리비젼에서 일반시사회에 패션쇼를 곁들이는 이색이벤트를 준비했다.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지난 17일 영화 <프리다>의 일반시사회에 초대, '영화'와 '패션'을 함께 보여준 것. 올해 5월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작품 패션쇼에서 공개되었던 이 의상들은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20세기 초현실주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이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프리다 칼로의 스타일리쉬한 패션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몸을 사랑하며 '장애'를 극복했던 그녀에 대해 관객들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사실 패션계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마돈나가 추앙한 이 멕시코 화가를 주목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녀에게 영감을 받았을 정도로 프리다 칼로의 패션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피에스타'(라틴 문화의 축제)에 가는 듯한 복장만을 고집했다. 멕시코의 전통 의상 '테후아나'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화려하게 입는 데 굉장한 재주가 있었는데, 밑단에 흰 목면 러플이 너울거리는 벨벳 스커트, 프릴 앞치마와 자수가 화려하게 장식된 블라우스를 즐겨 입었다. 게다가 롱스커트 안에 입은 페티코트에는 멕시코의 음란한 속어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걸을 때마다 절거덕절거덕 소리가 날 정도로 크고 요란한 장신구들을 유난히 사랑했다. 심지어 특별한 자리에는 다이아몬드로 장미가 새겨진 금니를 끼기도 했다고. 말하자면 그녀는 형편없어서 아름다운, '키치(Kitch) 패션'의 선구자였다. 오죽하면 1938년 자신의 전시회를 위해 칼로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한 무리의 인파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렇게 물었을까? "그런데 서커스는 어디에서 열리죠?"

프리다 칼로가 소위 이렇게 '튀는' 의상을 고집한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여섯살 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구가 되고, 18살 때 버스 안의 쇠 난간이 복부 왼쪽을 뚫고 질을 관통하는 끔찍한 교통사고까지 당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직성이 풀릴만큼 자기애가 강했던 그녀는, 상처받은 자신의 몸을 저주하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을 표현했다.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왕성한 성적 욕구의 포로로 만들 만큼 프리다 칼로는 관능적이었다.

졸업작품전 때 선보였던 총 10벌 가량의 의상들은 다년간 국내외 패션쇼 경험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간호섭 교수의 지도 아래 제작된 것으로, 대학생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이미 구스타프 클림트 아트웨어 패션쇼를 기획했던 경험이 있는 패션 디렉터 간호섭 교수는 예술과 전통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접목하는 시도로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이벤트는 5월에 진행했던 패션쇼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당시 진행했던 동덕여대 학생들과 간호섭 교수 및 이가자 헤어샵의 후원으로 준비되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와 더불어 멕시코 전통의 멋과 프리다 칼로의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패션쇼를 감상하는 두 배의 기쁨을 느끼게 됐다. 프리다 칼로의 불꽃 같은 인생을 담은 영화 <프리다>는 오는 11월 21일 개봉한다. (2003.11.18)

코리아필름 편집부


그들의 만남은 가장 큰 사건이자 최대의 축복이었다!

"내 인생엔 두 가지 대형사고가 있었어. 차 사고와 디에고, 바로 당신!"
 

남미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멕시코의 한 마을.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로운 탐구 대상으로만 보이던 사춘기 소녀시절, 버스와 전차가 부딪치며 일어난 인생의 첫 대형사고는 첫번째 사랑의 실연과 함께 그녀의 온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상처를 남겼다.

그 후 프리다는 침대에 누워 두 팔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 깁스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프리다는 성숙한 숙녀의 모습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달라고 요구한다. 직접 내려와서 보라는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낀 디에고는, 결국 프리다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마음의 정조를 약속한다.

불완전한 미모를 가진 여자라도 그녀만의 매력을 찾아낼 줄 아는 진정한 바람둥이 예술가와 성실한 사랑을 원하는 프리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디에고와의 결혼이 자기 인생의 두번째 대형사고이자 최대의 축복일 줄은…



열정과 실력으로 뭉친 드림팀, 2003 아카데미를 뒤흔든 불꽃
 

<아모레스 페로스>, <8마일>을 촬영한 로드리고 프리에토, <황혼에서 새벽까지>, <데스페라도> 등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필립 페르난데즈, 그리고 미술 감독 베르나르도 트루일로까지 대부분의 스탭들은 멕시코인들로 구성되었다. 멕시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그 당시의 멕시코를 완벽하게 재창조해내며 영화에 리얼리티를 더했다. 미국 출신으로 <아메리칸 뷰티>, <12 몽키스> 등 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던 줄리 웨이스 역시 <프리다>를 작업하는데 있어서의 가장 큰 힘은 자신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준 멕시코 사람들에게 있었다고 전한다. 실제 그녀의 재단사 중 한명은 프리다와 함께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었다. 멕시코의 의상실, 상점, 역사책을 샅샅히 뒤진 웨이스의 노력은 여사제처럼 멋진 프리다의 의상을 고스란히 복원해내며 헤이엑이 프리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처럼 프리다에 대한 사랑과 실력으로 뭉친 이들은 자발적인 열정으로 작업하였고, 그 결과 <프리다>는 한 예술가의 가장 섬세한 초상인 동시에 가장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되었다.

또한 <프리다>는 2003년 아카데미 작곡상, 분장상을 수상하였고, 의상상, 분장상, 여우주연상, 미술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애슐리 쥬드, 제프리 러쉬, 에드워드 노튼,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헐리우드 스타군단 총출동!
 

<프리다>엔 셀마 헤이엑 이외에도 헐리우드 캐스팅 1순위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디에고의 친구였던 이탈리아 출신 망명 사진 작가 티나 모도티 역에는 애슐리 쥬드가 열연하였고, 디에고를 슬럼프에 빠지게 만든 벽화 철거 사건의 주인공, 미국 백만장자 록펠러 역에는 에드워드 노튼이, 디에고와 쌍벽을 이루던 당대 최고의 화가 시케로스 역에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열연하였다. 그리고 제프리 러쉬는 프리다의 정치적 신념의 기둥이었고, 디에고 이외에 유일하게 존경심과 사랑을 느꼈던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로 분하였다. 특히 제작 당시 셀마 헤이엑의 남자친구였던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셀마 헤이엑의 오랜 친구들이었던 이들은 <프리다>에 참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셀마 헤이엑의 열정과 에너지가 자신을 이 영화로 이끌었다고.


두 명의 프리다 - 프리다의 환생, 셀마 헤이엑!
 

프리다 칼로의 오랜 팬이었던 셀마 헤이엑은 루이 발데즈 감독이 프리다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포트폴리오를 보낸다. 자신이 프리다 역을 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듣자, 그녀는 대답했다. "그럼 내가 그 역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셔야겠군요." 이 당돌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멕시코 여인은 몇 년이 흐른 뒤, <프리다>의 주연 뿐 아니라 제작까지 맡게 된다. 다소 중성적 외모의 프리다를 관능미와 섹시함으로 대표되는 셀마 헤이엑이 연기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가졌지만 헤이엑은 16살부터 47세까지의 프리다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실제 프리다의 옷이 맞춘 듯 꼭 맞았다는 셀마는 프리다의 외모뿐 아니라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녀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하며 스크린 안에서 살아 숨쉬었고, 영화 속 프리다의 그림 중 몇 점은 셀마가 직접 그리기도 했다. 결과, 영화 개봉 당시 전세계 언론은 마치 프리다가 되살아 난 것 같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프리다>는 셀마 헤이엑의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입증하는 작품임과 동시에 제작자로서의 가능성 또한 보여준 작품이다. 그녀는 프리다와 디에고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돌로레스 올메도를 찾아가 작품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고, 트로츠키와 프리다가 교감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장소인 Teotihuacan에서의 촬영을 정부 공무원들이 허가해주지 않자 대통령을 찾아가 특별허가권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주변에서 이를 지켜본 이들은 마치 프리다의 영혼이 그녀를 이끌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한다. <프리다>를 만들어낸 힘의 원천은 그녀의 프리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었다.

감독 줄리 테이머는 "헤이엑은 프리다를 연기하도록 운명지어졌다. 그녀는 전혀 두려움이 없으며 지칠 줄 몰랐다. 그녀와 함께 일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한다.

<프리다>는 셀마 헤이엑을 위한, 셀마 헤이엑에 의한, 셀마 헤이엑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 <에이리언 3>
엘리엇 골덴탈이 선사하는 팝과 블루스의 환상적인 결합!
 

배우들의 연기, 화려한 영상와 함께 <프리다>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엘리엇 골덴탈의 영화음악이다. 멕시코 전통 음악과 흥겨운 라틴풍 음악이 한데 뒤섞인 <프리다>의 영화 음악은 프리다의 감정변화와 그녀가 겪는 사건들에 따라 때론 로맨틱하게, 때론 격정적인 선율로 흐르며 보는 이의 오감을 자극한다.

멜로디의 친근함을 가장 중시했던 엘리엇은 멕시코 기타인 비우엘라(Vihulea), 일반 클래식 기타, 아코디언, 멕시코 하프, 마림바, 글래스 하모니카 등 어쿠스틱 악기들의 앙상블을 만들어냈고, 이는 약간의 불협화음을 결합, 절묘한 비트의 일치감을 만들어냈다. 이는 전적으로 엘리엇의 능력으로, 그는 <프리다>의 영화음악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멕시코와 라틴음악연구에 골몰했다. 고심 끝에 그는 일반적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중요한 선택을 하는데, 바로 멕시코 민속악기와 마리아치 음악, 볼레로, 란체라에 대한 화성변환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라틴 음악은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쓰인 적이 있으나 엘리엇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미국의 팝과 블루스 음악과의 조화로운 접목을 꾀한 것이다. 이는 위험한 도박이었으나 결국 그는 <프리다>에서 영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에 2003년 아카데미는 그에게 음악상을 선사하며 과감한 도전에 손을 들어주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 <에이리언 3>의 음악을 담당했던 엘리엇 골덴탈은 "사운드 트랙 내의 많은 민속 음악들이 프리다가 사랑했고, 그녀가 들었을지 모르는 음악들과 일치한다"고 덧붙인다. 술집에서 셀마 헤이엑과 샤벨라 바르가스(Chavela Vargas)가 열정적으로 부르는 노래인 'La Bruja'는 실제로 디에고가 좋아하는 노래중의 하나였다. <프리다> 음악의 백미는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Burn it Blue'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감독 줄리테이머가 직접 작사한 곡으로, 멕시코의 국민가수 카에타노 벨로소와 릴라 다운스가 직접 부른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바람보다 자유롭고, 폭풍보다 열정적인 사랑! 고통조차 사랑한 여인, 프리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100권이 넘는 책으로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라틴계 여성 최초로 기념우표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끊임없이 그녀를 회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미술사적 의의 이외에도 온갖 역경으로 가득차 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집중한다.

교통사고, 갖가지 질병,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일생동안 끊이지 않고 그녀를 따라다녔던 절망스런 사건들은 그저 듣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참혹한 것들이었다. 그녀가 이런 역경들을 그저 참고, 악으로 버텨낸 것이라면 존경스러울 수는 있을지라도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불행이란 극복하고 지워버려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창작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조차 자신의 일부라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끌어안았던 여인,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즐기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해 있던 불멸의 여인, 프리다. 현재까지 전세계가 그녀에게 열광하고 매료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리브해 태양만큼 강렬한 러브스토리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커플,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프리다>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감독 줄리 테이머의 가장 큰 관심은 프리다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사이의 관계에 있었다. 디에고가 프리다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일차적 키워드이자, 무엇보다 쉽사리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차가 덮쳐버린 버스안에서, 피범벅이 된 채 쓰려져 있는 그녀의 몸에서 반짝이는 금가루와 그 위로 떨어지는 황홀한 빛의 유리가루는 잔인함과 황홀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날 그녀의 오른쪽 히프를 통과해 질을 관통한 버스손잡이보다 더 그녀에게 잔인했던 건 바로 남편 디에고였다. 그들은 죽도록 사랑했고, 또 죽도록 미워했다. 프리다는 그를 변함없이 사랑했고, 그녀의 이런 무조건적 사랑은 결국 디에고를 변화시킨다. 그들은 프리다가 고통으로 신음하며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함께한다. 별거 중에도 둘의 집을 이어주던 다리처럼…

사랑에 있어서도 준 것과 받은 것에 대한 공평함을 따지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려내야하는 우리들에게 프리다와 디에고의 러브스토리는 낯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는 순간, 우린 눈물과 웃음을 쏟아낸 시원한 감동을 느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미워하고사랑하고 상처주면서도 끝까지 함께 했던, 너무나 낯설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20세기 가장 강렬한 러브스토리에 뜨거워진 심장을 느끼면서…


화려한 칼라의 향연, 가슴으로 그림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 영화와 미술의 환상적 꼴라주!
 

그림 속의 해골들이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뛰어다니고, 척추대신 쇠기둥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화상은 흰색 눈물을 흘린다. <프리다>에서 그림은 3차원으로 튀어나오고, 3차원의 인물들은 그림 속으로 평면화 된다.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가 혼재되어 있는 프리다의 작품들처럼 영화 <프리다>는 실사와 그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인다.

이는 감독 줄리 테이머에게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그 당시 드물게 개인적 사건과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던 프리다를 그림을 빼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건과 함께 보여지는 작품들은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고 강렬한 그림에 담긴 프리다의 고통과 즐거움을 절절하게 전해준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림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 <프리다>. 영화를 보기 전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고 있는가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 대해 무엇을 느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실제 그림을 사용한 듯한 착각을 주는 영화 속 작품들은 40명의 목수와 35명의 세트화가, 15명의 프리다, 디에고 전문 복제 화가들로 구성된 미술팀의 결실로, 그들은 '두 명의 프리다.(The Two Fridas)'(1939), '동생 크리스티나의 초상화. (Portrait of My Sister Cristina)'(1928), '프리다와 디에고. 웨딩 초상화. (Frida and Diego or The Wedding Portrait)'(1931), '내 치마가 거기 걸려있다. (My Dress Hangs There)'(1933)', '레온 트로츠키에게 헌사된 자화상. (Self Portrait dedicated to Leon Trotsky)'(1937), '도로시 헤일의 자살.(The Suicide of Dorothy Hale)'(1938/39), '짧은 머리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Cropped Hair)'(1940), '부러진 척추. (The Broken Column)'(1944), '생명의 열매 (Fruit of Life)'(1953) 등을 포함하여 50편에 가까운 프리다의 작품과 디에고의 벽화를 복원해냈다.

황홀한 그림들과 강렬하고 화려한 이국적 칼라로 시각적 즐거움을 던져주는 <프리다>의 영상은 그 자체가 바로 프리다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1983년부터 2003년까지, 한 세기를 뛰어넘은 노력의 결실
프리다의 영혼이 축복한 꿈의 작업.
 

1983년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책 [프리다]가 출판되었을 때, 프로듀서 낸시 하딘은 이 책을 들고 모든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라틴계 화가의 이야기를 영화화해 줄 스튜디오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꼬박 10년이 흐른 뒤, 화가 프리다가 재조명 되면서 프리다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름이 되었다. 이 무렵 그를 만난 셀마 헤이엑은 영화의 주연뿐 아니라 프로듀서를 자청한다. 알프레도 몰리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러쉬, 애슐리 쥬드 등 꿈의 캐스팅으로 무장한 헤이엑은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을 찾아가고, 시나리오는 물론 그녀의 철저함과 불굴의 의지에 반한 웨인스타인은 영화 <프리다>에 투자, 제작을 결정한다. 곧 줄리 테이머를 감독으로 영입한 뒤 2001년 늦은 봄, 20여년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프리다>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촬영은 프리다와 디에고가 살았던 1920년대 코요아칸과 가장 흡사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인 푸에블라에서 대부분 진행되었고, 멕시코 정부의 협조하에 국립 예비학교, 마제스틱 호텔, 디에고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교육부 청사 등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는 프리다의 생가는 멕시코 시티의 Churubusco 스튜디오에 집과 안마당을 똑같이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난 평범한 전기 영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_감독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1952년 미국 메사츄세스에서 태어난 줄리테이머는 연극, 오페라, 뮤지컬, 인형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라이언 킹>은 '이 놀라운 연극적 상상력의 승리를 직접 경험해 보라'는 극찬을 받으며 테이머에게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겨줬다. 이 작품에서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한 무대미술과 의상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 줄리 테이머의 연출력은 <프리다>에게 있어서 유일무이한 선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he Green Bird', 'Juan Darin:A Carnical Mass'등을 연출하며 연극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테이머는 각색, 연출을 맡은 TV 영화인 'Fool's Fire'로 감독 데뷔를 하였다. 에드가 엘런 포우의 단편 소설 [Hop-Frog]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선댄스 영화제에 첫 선을 보인 뒤, 1994년 4월 PBS에서 방송되었다. 그리고 1999년 앤소니 홉킨스와 제시카 랭이 출연한 <티투스>로 정식으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잔혹극인 <티투스 안드로니커스 Titus Andronicus>을 원작으로 직접 각색한 이 작품은 그녀의 연출력이 연극에만 제한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현재 그녀는 2005년 로스엔젤레스 오페라에서 시연하고, 링컨센터 페스티발에서 상연될 예정인 오페라 'Grendel'을 준비중인데 이 작품은 <프리다>의 음악 감독인 엘리엇 골덴탈이 음악을 맡은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그리고 차기작으로는 200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상연될 예정인 'The Magic Flute'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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