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를 찾아서 Finding Neverland

"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명작 동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피터팬>의 탄생 배경을 그린 영화 "

2004, 미국/영국, 드라마, 102분

감 독 : 마크 포스터
각 본 : 데이빗 매기 l 원 작 : 앨런 니
제 작 : 리처드 글래드스타인 & 넬리 벨플라워
촬 영 : 로베르토 셰퍼 l 미 술 : 젬마 잭슨 l 편 집 : 맷 체스

출 연 : 죠니 뎁, 케이트 윈슬렛, 라다 미첼, 줄리 크리스티, 더스틴 호프만

개 봉 : 2005년 2월 25일(금) 개봉 l 관람등급 : 12세 관람가
수입/배급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 2005년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 5개 부문 노미네이트
- 전미 비평가 협회 선정 '2004년 최고의 영화'



세상 모든 동화들의 아름다운 시작...
 

1904년 12월 27일 영국 런던에서의 초연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와 연극,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어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 <피터팬>. J. M. 배리의 세계적인 명작인 '피터팬'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세기 초. 영국 런던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극작가 제임스 배리 (죠니 뎁 분)는 자신의 작품이 흥행에 부진을 보이자 슬럼프에 빠진다. 게다가 연극배우 출신인 아내 메리 (레다 미첼 분)와의 관계도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멀어져 간다. 어느 날 켄싱턴 공원에 산책을 나선 그는 젊은 미망인 실비아 데이비스 (케이트 윈슬렛 분)와 그녀의 네 아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가 없는 제임스는 네 사내아이들의 활달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아이들 역시 제임스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데...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술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함께 해적놀이를 하며 동심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자주 어울리자 런던 사교계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아내 메리의 마음은 남편에게서 더욱 멀어져만 간다. 연극의 제작자이자 극장주인 찰스 프로먼(더스틴 호프만 분)도 제임스에게 우려를 표하지만, 이미 실비아와 그녀의 아이들은 제임스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건 실비아 가족 역시 마찬가지. 실비아 가족과 자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쓴 그는 네 아이들 중 유난히도 예민하고 섬세한 영혼을 가진 피터에게서 이름을 딴 '피터팬'을 완성한다.

190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초연된 '피터팬'은 성황리에 끝나고, 제임스는 일약 런던 사교계의 명사로 떠오른다. 하지만 실비아의 가족에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동화 속에 숨겨진 그들만의 네버랜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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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하여
 

제작자 리처드 글래드스타인이 마크 포스터 감독에게 추천한 데이빗 매기의 시나리오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포스터 감독이 찾고 있던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명작 동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피터팬>의 탄생 배경을 그린 이 작품에 포스터 감독은 곧 매료됐다.

<피터팬>의 작가 J.M. 배리와 류엘린 데이비스 가문 간의 우정을 실화에 바탕을 두고 그린 이 작품은 그토록 오랜 세월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사로잡은 <피터팬>의 매력이 과연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꿈과 상상력의 힘, 순수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 일상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세계를 접해보고 싶은 열망 등이 이 작품엔 녹아있다.

"이 영화는 힘든 현실 속에서 우릴 버티게 해주는 꿈과 믿음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남들에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상상력을 잃지 않을 때 인간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라고 포스터 감독은 설명한다.

매기의 시나리오는 앨런 니의 희곡 <피터팬이었던 남자_THE MAN WHO WAS PETER PAN_>를 각색한 것으로, 이 희곡은 극작가 제임스 배리와 류엘린 데이비스 일가 소년들의 대화를 시리즈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제작자 넬리 벨플라워는 우연히 한 지방극단의 공연을 보고 즉석에서 판권을 사들여 매기에게 각색을 의뢰했다. "앨런 니의 희곡은 부모의 비극적 죽음을 겪는 어린 소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버팀목이 되어준 한 작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내가 늘 좋아했던 작품 <피터팬>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속에 담겨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이 연극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고 벨 플라워는 회상한다.

시나리오 작가 매기는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제임스 배리라는 작가가 <피터팬>을 쓸 당시에 겪었던 일화를 단순히 재구성한 게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등을 그려보고 싶었다. 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작가 배리에 대한 헌사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느끼길 바란다. 인간은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동심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매기에게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쓸 무렵, 첫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내 부친은 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임종을 앞두고 계셨다. 그래서 난 나이를 먹는다는 것, 세월의 흐름 등에 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삶의 그런 문제에 맞닥뜨리기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예술 혼을 꽃피우고, 또 그렇게 태어난 예술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난 관심이 많았다. <피터팬>에서 배리는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행복과, 그 행복을 뒤로 한 채 어른이 되어야 만하는 슬픔을 동시에 그렸다. 바로 그 점에 그의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

미라맥스사의 간부인 미셸 싸이의 조언으로, 넬리 벨플라워는 시나리오 초안을 제작자 리처드 글래드스타인에게 보냈다. 이 무렵 싸이는 글래드스타인과 직접 접촉을 했고, 미라맥스사에서 배급을 맡기로 했다. 다음 순서는 적당한 감독을 물색하는 일. 그러나 이 작업은 의외로 간단히 결정됐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몬스터 볼>의 초기 시사회를 본 글래드스타인은 이 영화에서 보여 지는 캐릭터의 깊이와 미묘한 심리묘사에 감동, 포스터 감독을 기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출연진을 캐스팅할 때 제작진은 작가 배리가 직접 쓴 배우들의 조건을 많이 참조했다. "배리는 배우들에 대한 중요한 연출 지침들을 많이 기록해놨는데, 예컨대, 모든 캐릭터는 성인 역이건 아역이건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연기에 임해야한다고 못 박아 놨다. 이 원칙은 영화 제작에 중요한 지침이 됐다. 그래서 우린 시나리오 앞머리에 이 문구를 써놓았다. 배우들과 스탭들이 영화의 정신을 잘 이해하도록 하기위해..." 글래드스타인의 설명이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중심인물은 작가 배리 역의 죠니 뎁.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오른바 있는 독특한 개성의 배우 죠니 뎁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평한다. "그는 어른이 되길 원치 않았던 작가 역에 적임자였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의 면면을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그의 내면속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이 언제든지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뎁은 이 배역을 맡은 후 발성 코치의 도움을 받아 정통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익혔다. 그는 자신의 배역과 케이트 윈슬렛이 맡은 실비아 데이비스 부인 사이의 감춰진 사랑이 밑에 깔리면서 극의 흐름이 더 흥미진진해진다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관객의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상투적이고 감상적인 러브스토리와는 다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간절함으로 서로를 원하는 두 사람. 이 두 사람 사이의 감동적이고 복잡 미묘한 우정과 사랑이 안타깝게 그려지고 있다"

죠니 뎁의 상대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은 그와 함께 연기를 하면 쉽게 동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죠니는 촬영장에서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난 다섯 명의 사내아이들과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항상 우릴 웃게 만들었고, 그 명석함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영화 <센스 센서빌리티> <타이타닉> <아이리스>등으로 아카데미후보에 오른바 있는 연기파 배우 케이트 윈슬렛은 <피터팬>과 인연이 깊은 배우. 15살 때 연극 무대에서 웬디 역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녀는 보수적이던 귀족사회에서 보헤미안과 같은 정신으로 살았던 네 아이의 엄마 실비아 뒤모리에라는 여인에게 푹 빠져들었다.

"실비아는 매우 흥미로운 여자다. 어린이에 대한 시각이 지금과는 달랐던 시절, 그녀는 무척 현대적인 어머니였다.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집안에서도 어른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당연시되던 때였지만 실비아가 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은 달랐다. 그녀는 아이들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아이들이 자유로운 영혼을 갖도록 격려해주었다. 관습을 거부하는 그녀의 사고방식이 난 무척 맘에 들었다"고 윈슬렛은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갓 잃은 미망인이기에 마음속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제임스 배리라는 인물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리는 그녀가 사교계에서 만나는 보통 남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실비아가 배리에게 끌린 것은 배리가 그녀를 유혹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환상의 세계 속으로 그녀를 기꺼이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리와 실비아 가족 전체의 러브 스토리이기도하다"

제임스 배리와 마찬가지로 실비아 뒤모리에의 삶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와 글들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일부 남아있다. 그 글을 읽으며 윈슬렛이 특히 감동 받았던 부분은 실비아가 암 치료 받기를 거부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아이들에게 알리길 원치 않았고, 고통스런 치료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이길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용기 있는 여자였다. 최후의 순간까지 아이들 곁에서 평소처럼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길 원했던, 대단한 모성애의 소유자였다"고 윈슬렛은 그녀를 평한다.

배리의 희곡 <피터팬>이 연극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인 찰스 프로먼은 부유한 미국인 극단 주. 배리가 기존의 연극과는 전혀 다른 판타지 연극을 쓰자, 흥행에 실패할까봐 걱정하면서도 제작비를 대주는 든든한 후원자다. 실제로 찰스 프로먼은 "드라마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지녔던 인물로 새로운 인재 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었다고 한다. 제임스 배리뿐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 섬머셋 모옴과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그와 인연을 맺었었으며 존 드류, 에텔 베리모어, 줄리아 말로우, 헨리 밀러등의 브로드웨이 스타도 그가 발굴한 배우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한창 전성기 때 비극적으로 죽었다. 원양 여객선을 타고 가다가 배가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는 바람에 바다 속에서 최후를 맞았던 것.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피터팬>의 한 대사를 떠올리고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죽음을 왜 겁내는가? 인생 최대의 아름다운 모험인 것을...')

찰스 프로먼 역은 아카데미 수상 경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맡았다. 그는 포스터 감독과 죠니 뎁이 이 영화에 함께 한다는 사실에 흔쾌히 출연 승낙을 했다고 한다. "<몬스터 볼>을 본 뒤로 난 언젠가 포스터 감독과 꼭 한번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제임스 배리 역은 죠니 뎁이 맡는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 영화에 호감이 갔다. 죠니 뎁은 요즘의 젊은 배우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다. 스타가 되려 하기보단 개성 있는 배역으로 실험적 연기에 도전하는 그의 자세를 나는 높이 산다." 호프만의 말이다

극의 캐릭터 중 가장 소화하기 까다로운 배역중 하나는 제임스 배리의 외로운 아내 매리 역일 것이다. 매리 역의 라다 미첼은 마크 포스터 감독의 전작 < EVERYTHING PUT TOGETHER >에 출연했던 경력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배역 매리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겉으론 차갑고 냉정해보이지만, 속으론 불행한 결혼생활로 고통 받고 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남편...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지쳐가고 있다. 나는 남편과의 좁힐 수 없는 거리로 인해 절망하고 분노하는 그녀의 마음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크 포스터 감독과는 함께 작업해본 터라 그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정형화된 틀에 안주하는 감독이 아니다. 리얼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배우에게 늘 요구한다. 그런 감독의 작품에서 매리라는 배역을 연기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고 기대되는 작업이었다."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캐릭터들은 실비아의 네 아들. 배리는 이 소년들을 슬픈 일상의 현실에서 탈출시켜, 동화와 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초대한다. 제작진들은 이 네 소년 역을 맡을 아역배우들의 캐스팅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데 처음부터 의견을 모았다. 수많은 오디션을 치른 끝에 십여 명의 아역 배우들이 추려졌다. 제작진은 이들을 여러 명씩 모아놓고 함께 대본읽기를 하도록 했다. 그 속에서 보여 지는 서로간의 관계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극중에서 친 형제로 출연할 것이기에 함께 얼마나 친밀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봤던 것.

"아이들이 서로 한 가족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캐스팅된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재능을 갖고 있었다. 유머 감각과 깊이 있는 연기력까지... 어떨 땐 애들 같지 않아 보였다. 모두들 너무 똑똑하고 프로답고 따뜻했다. 6살짜리 루크 스필마저도..." 윈슬렛의 말이다.

죠니 뎁은 아이들이 너무 프로답고 점잖아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장난끼와 천진함을 이끌어내려고 오히려 '작전'까지 써야했다고 한다. "디너 파티 장면 때 포스터 감독과 난 미리 짜고 방귀 소리 나는 장난감을 테이블 밑에 감춰놓았다. 그리고 애들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에 방귀 소리를 냈다. 효과는 100%였다."

제작자 글래드스타인은 피터 역의 프레디 하이모어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피터 팬의 이름은 바로 그가 맡은 배역 피터 데이비스에게서 따온 것. "그는 우리가 피터 역으로 오디션을 본 첫 아이였다. 나중에 몇 명을 더 만나긴 했지만, 우린 처음부터 이미 피터 역으로 그를 점찍어 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배역에 대한 설정을 마치 성인배우처럼 확고히 해놓고 있었다."

출연진중 특기할만한 캐스팅은 <피터팬> 초연 후의 축하 파티 장면 때 잠깐 등장하는 한 여자 관객 역의 로라 두귀드. 그녀가 피터에게 '네가 피터팬이구나'라고 말을 건네자 피터는 '내가 아니고 아저씨가 피터팬이죠'라고 대답하는 그 장면이다. 두어마디 대사뿐인 단역이지만 나름대로 꽤 의미 있는 이 배역을 맡은 두귀드는 제임스 배리의 실제 대녀(GOD-DAUGHTER)인 동시에 류엘린 데이비스 가문 다섯 아이들의 막내인 니코의 딸이기도 하다. 배리가 사망했을 때 두귀드는 9살이었지만 그와 함께 보냈던 소중한 추억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환상의 세계를 현실속으로
 

<네버랜드를 찾아서>의 미술 작업은 20세기 초 런던이라는 현실속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접목시키는 작업이었다. 촬영, 의상, 조명등 프로덕션 디자인의 모든 분야에서 이 두 가지 상반된 세계는 서로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교차한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젬마 잭슨은 이렇게 설명 한다. "감독은 역사적 고증에 발목이 잡힌 시대물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우린 1904년을 화면 속에 고스란히 재창조하기보다는 현실 속에 억눌려 있는 상상의 세계를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주력했다."

"현실과 환상의 접목은 의상 디자이너로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극중 현실 속 인물들이 입는 의상은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실제 의상 실물과 사진을 참고했지만, 네버랜드 세계속의 의상은 아무런 참고 자료 없이 꿈과 환상의 세계만을 상상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기준이 있었다면 에드워드 왕조 풍으로 했다는 것뿐이다." 아카데미 후보 경력의 의상 디자이너 알렉산드라 번의 설명이다.

촬영감독 로베르토 셰퍼 역시 현실의 세계와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상의 상상 속세계를 화면 속에 접목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나만의 비주얼로 누군가의 은밀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었다. 그래서 난 마음껏 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셰퍼와 함께 비주얼 작업을 맡은 사람은 시각효과 디자이너 케빈 토드허그. "'우리와 관점이 다른 작가의 시야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상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배리라는 인물에겐 뭔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감돌게 연출했다. 그리고 판타지의 요소가 가미된 장면에선 약간의 애니메이션과 CGI를 곁들여 꿈속의 세계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CGI와 복합적인 카메라 워크의 마술을 교묘히 조화시켜 실사 화면처럼 보이게 하는 게 내 전문 분야다. 이 영화의 비주얼엔 그런 내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영화는 영국에서 촬영됐다. 런던의 켄싱턴 공원이나 유서 깊은 사빌 클럽, 브롬튼 묘지 등의 명소가 극 중간 중간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제임스 배리의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인 듀크 오브 요크 극장 장면은 써레이에 있는 리치몬드 극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1899년에 설립된 리치몬드 극장은 1990년대에 한번 대대적 수리를 거친바 있다.

그러나 극중 가장 관객을 사로잡는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환상의 세계 '네버랜드'. 울창한 숲과 산호초로 이루어진 네버랜드는 셰퍼톤 스튜디오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네버랜드를 아름다운 야생의 세계로 정의한다. "네버랜드는 극중 모든 캐릭터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타지의 세계다. 우린 관객들 역시 그 판타지 속으로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모습으로 네버랜드를 창조할 수 있다. 네버랜드는 배리의 버젼으로도, 실비아나 피터의 버젼으로도, 혹은 우리의 버젼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네버랜드를 창조하는데 있어 제작 스탭들의 재량권을 최대한 인정해주었다. 어떤 무모해 보이는 시도도 허용되었다. 어떤 지침 따위도 없었다. 각자 떠오르는 대로 마음껏 아이디어를 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젬마 잭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내 상상력을 토대로 디자인 작업에 임했다. 끝없이 뻗어나가는 환상의 세계 속에서 떠오르는 그 무엇을 디자인으로 형상화시켰다고 할까?"

촬영감독 로베르토 셰퍼는 조명 연출에 있어서,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네버랜드에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영국의 기후가 좋은 아이디어를 줬다. 야외 촬영을 할 때면 늘 날씨 때문에 애를 먹었다. 흐리는가 싶으면 곧 금새 해가 반짝 뜨고, 비가 퍼붓다가 흐렸다가 해가 떴다가 하는 식이었다. 구름이 끼었다가 다시 환히 밝아지는 하늘빛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줬다. 그런 느낌을 네버랜드 촬영 때 십분 살리고자했다."


연극 <피터팬>에 대하여
 

오랜 세월동안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은 제임스 배리의 세계적 명작 <피터팬,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에 매료돼왔다. 올해 12월이면 피터팬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된다. 이 이야기는 웬디, 존, 마이클 3남매가 머나먼 환상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시간이 정지된 그곳엔 요정이 살고 있고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 <피터팬> 초연때, '요정을 믿는 사람은 박수를 치라'는 피터팬의 주문에 성인 관객들이 하도 우렁차게 박수를 치는 바람에 피터팬 역의 여배우가 감동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극의 배경은 에드워드 시대 런던 브룸스버리의 평범한 한 중산층 '달링'네 가정. 그러나 초반부터 배리는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유도한다. 아이들의 유모를 개로 설정한 것. (이 개는 이빨로 가족들의 침대를 정리한다). 뒤이어 이 집 아이들에겐 독특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 나선 피터팬이란 소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자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친구인 요정 팅커벨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피터팬은 세 아이들에게 날으는 법을 가르쳐준다. 불가능이 없다는 걸 믿게된 아이들은 피터팬을 따라 낙원의 섬 네버랜드로 날아간다.

네버랜드 섬엔 '사라진 아이들'(LOST BOYS)들이 인디언 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은 악당 후크 선장이 이끄는 해적들과 전쟁 중이었다. 웬디가 '사라진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게 되자 해적들은 그녀와 아이들을 납치한다.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웬디는 눈을 가리고 널빤지 위를 걷다가 바다 속으로 빠지기 직전, 피터팬에게 극적으로 구조되고, 후크 선장은 자신의 숙적인 악어에게 잡아먹힌다.

한편 웬디 남매의 부모들은 사라진 아이들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피터는 아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말 것을 간청하지만 아이들은 부모 품으로 무사히 돌아간다. 피터가 경고했듯이, 그들은 이제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자신들이 경험한 놀라운 체험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4년 12월 27일, 듀크 오브 요크 극장에서 개막 공연을 가진 피터팬은 즉시 사회 문화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이 단순한 어린이들의 모험극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했다. 1954년 메리 마틴 주연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첫 데뷔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어른과 아이들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켜왔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의 보편성과 매력적인 줄거리로 어린이들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즐겨 읽는 문학 작품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달링 가문의 세 남매가 네버랜드에서 벌이는 모험 이야기는 순수한 동심과 악당 해적간의 대결 구도로 읽혀질 수도 있지만, 현실과 판타지, 중산층의 위선과 자유, 모험과 가정의 안락함을 각각 대립시킨 구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도 문학 평론가들은 배리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그가 성장의 멈춤에 대해 결과적으로 과연 긍정적 결론을 내렸는지, 부정적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말한다. <피터팬>의 가장 큰 힘은, 사람들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끄는데 있다고... 그리고 바로 그 힘이야말로 자신이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피터팬>이 남긴 기록
 

J.M. 배리가 <피터팬>을 쓴 후로, 이 작품은 연극으로서뿐 아니라 문학작품으로서도 큰 인기를 끌며 (1911년 <피터와 웬디>라는 제목으로 출간됨), 그 나름의 하나의 생명체로 자리 잡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되며 이 얘기는 유럽,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피터팬이 남긴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면

1. 대중 상업적 장르의 아동 문학을 태동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로빈슨 크루소>나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작품들이 아동물로 각색되어 출간되긴 했지만 배리의 <피터팬>은 문학계에 혁명을 불러오며 아동 독자들도 성인 독자 못지않게 큰 출판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 '네버랜드'라는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켰다. 현재 미국 헤리티지 사전에도 수록돼있는 이 단어는 '멋지고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뜻하는 말로 자리매김했다.

3. 작가 배리가 극중 캐릭터에게 붙인 이름 '웬디'가 소녀들의 이름으로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 배리의 친구 딸 마가렛 헨리가 배리를 '마이 프렌드'라고 발음 못하고 '마이 프웬디'라고 발음하자, 그에 착안해, '웬디'란 이름을 만들었던 것. 마가렛은 비록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했지만, 요즘 비교적 흔해진 '웬디'라는 이름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는 셈이다.

4.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일명 '피터팬 칼라'라고 하는 둥글고 큰 깃이 당시 남학생들 패션으로 유행했던 것.

5. 연극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영화로, TV 프로로, 애니메이션으로 수없이 재탄생되어 세계 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디즈니 테마파크엔 피터팬 놀이기구가, 켄싱턴 가든엔 피터팬 동상이 세워져있다.

6. 피터팬 배역 캐스팅에 있어 성별, 나이의 장벽을 깨는 전통을 확립시켰다. 피터팬 역을 처음 맡은 배우는 37세의 여배우 니나 부치컬트였다. 남자 배우가 피터팬으로 처음 캐스팅된 것은 1982년 영국에서였다. 현재도 피터팬 배역 캐스팅은 성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7.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영국의 GREAT ORMAND STREET 아동 병원에 기탁됐다. 배리는 이 병원에 <피터팬>의 판권을 양도했고, 병원은 지금까지 그로 인해 발생된 거액의 수익금으로 수많은 아동의 병을 치료해왔다.


감독 _ 마크 포스터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성장했고 1990년에 미국으로 이주, NYU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2001년 작 <몬스터 볼>의 성공으로 서정적 화법의 영화에 강점이 있는 감독으로 확실히 부각됐다. 최근 촬영을 끝마친 < WEAN >에서도 그의 이런 특성은 잘 드러난다. 요 몇 년 동안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로 평가받으며 제작사를 정하지 못하고 떠돌던 <몬스터 볼>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도 바로 그의 그런 재능을 제작사측에서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의 겨우 세 번째 작품인 <몬스터 볼>은 할 베리의 여우주연상을 비롯, 아카데미 두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사색적이며 음울한 영상미학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작품 < EVERYTHING PUT TOGETHER >에서부터였다. 유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갓난아기를 잃은 한 여인(라다 미첼 분)이 환영에 시달리는 내용의 사이코 호러물인 이 작품은 2000년 선댄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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