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원혼의 저주 - 공포와 스릴러를 섞어버린 '페이스'

요즘 관객은 영리하다. 잘 안 속는다. 그리고 겁도 없다.
이런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포영화를 만들려면 절묘한 반전도 필요하고 반전까지 힘있게 밀어붙이는 내용과 논리적인 개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포영화는 큰 돈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지만 쉽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까다로운 관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짜임새를 만들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자신감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장르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다. 어설프게 장르를 혼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존의 장르적 특성을 따라가는 영화가 오히려 내용적인 면에서 충실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복안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페이스'는 나름대로 짜임새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장르를 혼합할 정도의 능력이나 소재는 아니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공포영화에서는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여고괴담'처럼 고등학교의 모순과 문제점을 빗대어서 공포감을 줄 것인지, '링'처럼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오싹함을 선사할 것인지, '스크림'처럼 관객들에게 공포와 머리싸움의 즐거움을 줄 것인지, 아니면 막무가내 사지절단형으로 피가 무작정 사방으로 튀는 영화로 관객에게 어필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야만 한다. 공포 영화를 보는 목적으로 휴머니즘이나 순애보적인 감동을 요구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공포를 통한 즐거움이다.

한국판 천녀유혼

해골을 통해서 원래의 얼굴을 복원하는 복안전문가 이현민은 심장을 이식 받은 딸의 상태가 나빠지자 사표를 제출하고 딸의 요양을 위해서 노력한다. 사체를 녹여서 증거를 인멸해 버리는 연쇄살인이 계속 일어나고 단서는 오로지 두개골뿐이다. 상사는 현민에게 복안을 부탁하지만 현민은 거절한다. 그 뒤로 계속해서 귀신에 시달리는 현민.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요구라고 생각한 현민은 복안을 시작한다. 그리고 살해당한 사람들은 전부 현민의 딸과 같은 조직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로 밝혀진다. 딸의 심장 이식수술과 이번 연쇄 살인이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현민. 미궁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복안에 매달린다. 현민은 복안을 통한 증거를 확보하고 점점 살인자의 정체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귀신만 나오면 추리물도 공포영화가 되는가

'페이스'의 약점은 모든 것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복안이라는 참신한 소재와 딸의 심장 이식 수술이라는 소재를 합치고, 여기에 연쇄 살인 사건을 더해서 추리 수사물을 만들었다. 현민의 직업이 경찰과 관계된 일이니까 결국 경찰 수사물이다. 경찰과 사체를 약품에 녹여서 버리는 연쇄살인범의 영화다. 그런데 귀신이 나온다. 귀신이 나오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두뇌 게임을 요구하는 미스테리 수사물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귀신이 나오면서 장르는 공포 영화로 돌변한다.

무작정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귀신을 등장 시켜서는 곤란하다. 꼭 귀신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귀신의 역할은 가엾은 딸 배역의 어린 배우와 시체를 주무르면서 잔뼈가 굵은 경찰청의 복안 전문가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깜짝 깜짝 놀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공포 영화가 된 수사물은 뒷심이 딸릴 때쯤에서 갑자기 천녀유혼으로 변한다. 그리고는 애틋한 멜로를 살짝 섞더니 나중에는 부녀간의 사랑이 물씬 올라오는 가족애를 보여주며 끝난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애매하다. 경찰을 도와서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귀신이라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복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두개골도 들고 다니고, 녹음기에 녹음도하고, 사랑의 감정도 전할 수 있는 귀신이라면,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어린 아이를 괴롭히며 놀래킬 이유가 없지 않을까?

관객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논리적인 개연성이 이런 두뇌싸움의 반전을 노리는 영화에서는 무엇보다도 꼭 필요하다. 단순한 음향 효과와 불쑥 불쑥 나오는 귀신을 보며 놀라는 것은 한두번만 보면 약발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약발로 두시간의 장편 영화를 이끌어가면서 재미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캐릭터들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심장 수술한 딸을 살리고 싶은 현민, 복안을 부탁하는 선영, 딸의 심장을 수술한 심장 전문의,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뻔한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이 각자의 개연성을 상실한 채로 따로 놀고 있다. 불쑥불쑥 끼어 드는 이야기와 대화로 설명하는 단서들은 관객들에게 무척이나 친절하지만 재미를 반감시킨다.

이번 영화로 장기 기증에 대한 얼토당토 않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확산 될까봐 걱정이다.

결국 복안이라는 새로운 소재와 연쇄살인이라는 장르를 섞어서 공포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기존 공포 영화의 실패 요소를 그대로 끌어안고 말았다. 반전도 결과도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공포 영화로 전락했다. 수시로 관객을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는 의욕뿐이다.

하지만 공포와 놀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성공한 명작 공포 영화와 보고 나면 이야기도 가물가물한 공포 영화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다락방21 작가 강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