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사대부의 발칙한 상상과 음란한 행복

영화 <음란서생>은 조선시대 명망 높은 사대부 가문의 자제이자 당대 최고 문장가인 김윤서(한석규 분)가 권태로운 삶 속에서 우연히 음란소설 창작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윤서(한석규 분)은 고신 전문가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가문의 숙적인 의금부도사 광헌(이범수 분)와 함께 골치 아픈 사건을 수상하는 도중 우연히 유기전에서 '난잡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장안의 화제라는 그 책에 대한 호기심과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의 자존심에 그는 급기야 몸소 음란소설 써 보는 용기를 발휘하고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흑곡비사'(黑谷秘事, 검은 계곡에서 일어나는 일)라는 음란소설을 발표하고 장안을 강타한다. 하지만 그쪽 세계에서 여전히 2인자인 그는, 1인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광헌에게 소설 속 삽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양반의 점잖음을 잊은 두 사람은 완벽한 호흡으로 장안 최고의 화제작 '흑곡비사 2탄'을 탄생시킨다. 한편, 윤서는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 정빈과 위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음란소설의 영감을 얻게 되지만 결국 정빈이 이 사실을 알게되면서 결국 윤서와 광헌은 위험에 빠져들게 된다.

"사대부인 윤서가 음란소설을 쓰면서 행복해진 것처럼, 그리고 쓰면 쓸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처럼 나 역시 <음란서생>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더없이 기쁘고, 행복해졌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권태롭고 겁쟁이라고 불리는 서생 윤서가 작은 용기를 내어 음란소설을 쓰면서 전에 몰랐던 인생의 행복을 느끼고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음란한 행복'을 쫓는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래서 어둡고 자극적인 음란함보다는 밝고 유쾌한 음란함에 초점을 맞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란'과 '서생'이 충돌하는 제목과 점잖은 양반들이 음란소설을 쓴다는 내용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음란한 어휘를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와 절정의 표정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죄수에게 자문을 구하는 의금부 도사는 그 설정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한석규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이범수의 순진하면서도 능청스런 표정연기가 더해져 재미를 더한다. 또, 영화 곳곳에는 사극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하는 현대적 감각이 살아 숨쉰다. 양반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음란소설'의 집필과 배급을 함께 모의하는 음란콤비와 유기전 음란 브라더스, 왕의 후궁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와의 위험한 사랑을 감행하는 정빈 등의 다양하고 현대적인 인간군상을 비롯해 극중 음란소설이 유포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댓글', '폐인'과 같은 단어와 소설의 결말을 놓고 배급자인 황가와 실랑이는 벌이는 장면 등 현대의 문화적 코드들과 미묘하게 교차하는 요소들이 예기치 못한 공감과 웃음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양반들이 음란소설을 쓰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풍부하지 못하며 초반의 코믹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비극으로 치닫는 후반의 연결고리도 유연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는다. 또, 음란서 배급 전문가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오달수의 감초연기가 빛을 발하지만 그외 캐릭터는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흠이다.

영화사 비단길의 창립작품 <음란서생>은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을 통해 오는 2월 23일 개봉된다.

2006.02.13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