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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룡-들 Enter the Clones of Bruce


" 세기의 아이콘 이소룡 사망 후, 세계 곳곳에서 포스트 이소룡이 되려는 '이소룡-들'이 등장하던 시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

2023, 미국, 다큐멘터리, 95분

감 독 : 데이빗 그레고리

출 연 : 이소룡, 여소룡, 허쭝다오, 거룡, 양소룡

2024년 6월 19일(수) 개봉 l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수입/배급 : ㈜에이디지컴퍼니 예고편
국내 홈페이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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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과몰입러 이경규의 그 영화! <이소룡-들> 6월 개봉 확정!
 

영화 <이소룡-들>이 6월 개봉을 확정하고 티저 포스터와 무빙 포스터를 공개했다.

6월 극장 개봉을 확정한 영화 <이소룡-들>은 세기의 아이콘 이소룡 사망 후, 세계 곳곳에서 포스트 이소룡이 되려는 '이소룡-들'이 등장하던 시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체스영화제,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대표적인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다. 특히 <이소룡-들>은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이소룡의 열렬한 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대부 이경규가 선택한 영화로 알려지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개봉 확정 소식과 함께 공개된 티저 포스터는 강렬한 비주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단 네 편의 영화로 세기의 아이콘에 등극한 것은 물론이고 여전히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액션스타로 호명되고 있는 이소룡의 얼굴과 이소룡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트레이닝복의 컬러를 차용한 블랙과 옐로의 조화는 이소룡과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비주얼로 눈길을 끈다. 여기에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이소룡이었다'라는 카피와 <이소룡-들>이라는 제목은 영화가 앞으로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이소룡-들>만의 위트와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낯익은 얼굴이 이스터에그처럼 숨겨져 있는 티저 포스터와 무빙 포스터는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이소룡 과몰입러 이경규가 선택한 영화 <이소룡-들>은 오는 6월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 (2024.05.07)

코리아필름 편집부


"이소룡을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1973년, 세기의 아이콘 이소룡이 단 4편의 영화를 남긴 채 사망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이소룡을 원했고, 그로 인해 여소룡, 거룡, 양소룡 등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이소룡의 뒤를 잇는 '룡'들이 등장하면서
'이소룡-들' 신드롬이 일어나는데…

전설 이소룡, 장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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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네 편의 영화로 세기의 아이콘이 된 사나이!
모두가 영화를 꿈꾸게 한 전설의 시작!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이소룡-들>의 탄생!
 

<이소룡-들>은 세기의 아이콘 이소룡 사망 후, 세계 곳곳에서 포스트 이소룡이 되려는 '이소룡-들'이 등장하던 시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1940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이소룡은 홍콩에서 아역배우 시절을 거친 뒤 18세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TV 시리즈 [그린 호넷]에서 '카토'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까지 생전에 단 네 편의 영화를 남겼지만, 이 네 편의 작품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전설이 되었다. 세기의 액션스타이자 실제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절권도 창시자이기도 한 이소룡은 당시 그 자체로 독보적인 캐릭터이자 아이콘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인에 대한 많은 편견을 바꾼 영웅으로서도 칭송받았다.

영화 <이소룡-들>은 모두가 영화를 꿈꾸게 만들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소룡이라는 인물과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서 끝내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그가 영화계에 남긴 족적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따라간다. 이에 시체스영화제,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은 물론 해외의 대표적인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또한 "믿을 수 없는 영상으로 가득 차 있다!"(issuu.com), "쾌활하고 재미있다"(ScullyVis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다"(Variety) 등 영화가 선사하는 오락적인 재미에 대한 호평과 함께 "'브루스플로이테이션'에 대한 놀라운 다큐멘터리"(Cinema Crazed),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의 역사를 관통하는 흥미로운 작품"(Screen Crush), "영화 역사상 가장 기이한 장르를 처음으로 선보인다"(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적 현상을 심도 있게 파고든 기록물로서도 의미를 더하며 작품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높인다. 영화는 세계적인 아이콘에서 결국 하나의 장르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게 된 전설적인 인물 이소룡과 그에게 열광했던 이들에게 그 시절의 향수와 함께 뜨거운 설렘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소룡 사망 후, 전 세계에 '룡'들이 나타났다?!
여소룡, 거룡, 양소룡, 흑룡까지!
전설 이소룡, 장르가 되다!
 

세계적인 액션스타이자 세기의 아이콘 이소룡의 사망 후 이소룡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포스트 이소룡을 표방하는 이들이 수백편의 영화를 만들어내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이라는 장르가 탄생했다.

1973년, 신작이었던 <용쟁호투>의 개봉을 앞두고 이소룡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전 세계 영화계는 포스트 이소룡이 될 만한 인물들을 찾아내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전기와 속편(Sequel), 전편(Prequel), 스핀오프 등 이소룡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굴된 버마 출신의 여소룡(Bruce Le), 대만 출신의 허쭝다오(Bruce Li), 한국 출신의 거룡(Dragon Lee), 그리고 홍콩 출신의 양소룡(Bruce Liang) 등이 당시 액션 영화계를 누비며 수백 편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버마 출신의 여소룡은 '브루스 레(Bruce Le)'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쿵후 도장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배우로 데뷔했다. '브루스 라이(Bruce Li)'라는 활동명으로 활약했던 대만의 이소룡인 '허쭝다오'는 이소룡의 쿵후를 구사하며 활동한 배우다. 한국의 이소룡 문경석은 '드래곤 리(Dragon Lee)'이자 '거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배우로, 이소룡의 닮은꼴로 사랑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소룡의 상징이었던 쌍절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조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소룡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홍콩 출신의 양소룡은 '브루스 량(Bruce Liang)'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등장한 다양한 배우들은 각기 다른 생김새와 개성으로 종횡무진 활약해 이소룡과 그의 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곧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할 만큼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소룡에서 출발해 다채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며 이후, 다양한 스토리, 장르와 합쳐졌다. 이는 이소룡의 이름인 브루스(Bruce)와 영단어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을 합성한 단어 '브루스플로이테이션'으로 명명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렸다. <이소룡-들>은 세계적인 아이콘에서 결국 하나의 장르로 영원히 남게된 전설적인 인물 이소룡과 그 시대의 문화적 열풍을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이소룡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이소룡 과몰입러가 선택한 바로 그 영화!
모두가 영화를 꿈꾸던 그때의 향수를 다시 한번!
 

<이소룡-들>은 개봉 전부터 대한민국 예능 대부, 방송인 이경규가 수입에 참여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경규는 지난 3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이소룡에 흠뻑 빠졌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소룡-들> 수입 소식을 알렸다. 이경규는 "이소룡은 내 영혼의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소룡에 미쳤었다"라고 이소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히며 이소룡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어릴적 가방에는 항상 쌍절곤을 넣어다니며 무술을 연마했고, 스스로 이소룡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이자룡(李子龍)' 이라는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이소룡을 사랑한 이경규. 그의 첫 연출작이자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친 액션 영화 <복수혈전>(1992) 또한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을 만큼 이경규에게 있어 이소룡은 그 자체로 꿈이자 인생이었다.

이소룡이 이경규의 오랜 꿈이었던 것처럼, 영화 <이소룡-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모두가 이소룡에 미쳤었던, 모두가 영화 안에서 살아 숨쉬던 기이할만큼 독특했던 한 시절을 소환하며 그때의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는 이소룡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혹은 무술을 잘 구사한다는 이유로, 함께 협업했다는 이유로 선택된 수많은 '룡'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현재 삶까지 들여다본다. 의도치 않게 모방 배우가 되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룡'들 뿐만 아니라 이후 홍콩 액션 영화를 세계적인 붐으로 이끌었던 홍금보, 성룡 등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역시 이소룡은 영웅이자 아이콘, 최고의 무술가이자 영화 그 자체였다. 이소룡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존재로 모두의 마음 속에 자리매김했다. 모두가 이소룡을 꿈꾸던 그 시절, 이소룡은 언제 어디에나 어떤 모습으로든 세계 곳곳에 존재했다. <이소룡-들>은 이소룡을 기억하고, 이소룡을 사랑했던 장년층에게는 그때의 뜨거웠던 열정과 함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이소룡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끝내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영웅이자 아이콘의 이야기로 색다른 즐거움을 전할 것이다.


↘ Director 데이빗 그레고리(DAVID GREGORY)
 

"그 누구도 '브루스플로이테이션'에 관한 완결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어요"

데이빗 그레고리는 2000년에 그가 공동 설립한 유통사인 블루 언더그라운드를 위해 첫 장편 다큐멘터리 <텍사스 체인 쏘 대학살 - 더 쇼킹 트루스(Texas Chain Saw Massacre - The Shocking Truth)>를 만들었다. 이후 <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배드랜드(Badlands)>,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 <헤더스 앤 더 맨 후 펠 투 얼스(Heathers and The Man Who Fell to Earth)>와 같은 DVD용 단편 영화와 1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감독했다. 2008년에는 공포 영화 <플레이그 타운>으로 장편 극영화 데뷔도 마쳤다.

2011년 그랑기뇰(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공포와 선정성을 강조한 단막극)에서 영감을 받은 앤솔로지 호러의 장편 영화 <더 씨어터 비자레>를 공동 제작 및 연출했으며, <로스트 소울: 더 둠드 저니 오브 리차드 스탠리즈 아일랜드 오브 닥터 모로>는 시체스영화제에서 오피셜 판타스틱 파노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멕시코 모비도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멜버른, 시드니,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후 연출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블러드 & 플레쉬 - 더 릴 라이프 & 개스틀리 데스 오브 알 애덤슨(Blood & Flesh: The Reel Life & Ghastly Death of Al Adamson)>과 <테일즈 오브 더 언캐니(Tales of The Uncanny)>는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 참여한 호러 다큐멘터리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는 40개 이상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미드나잇 관객상, 판타지아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포함해 12개의 주요 상을 휩쓸며 해외 영화제로부터 찬사를 끌어냈다.

현재 데이빗 그레고리는 세계에서 가장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제작/배급 레이블 세베린 필름(Severin Films)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로 활동하고 있다.


↘ Cast & Character 버마 이소룡, 여소룡(BRUCE LE)
 

1950년 생, 버마(현 미얀마) 출신으로 본명은 황건룡(Huang Kin-lung)이다. 1974년에 쇼브라더스 유한공사가 제작한 이소룡 스타일의 TV 시트콤 및 영화인 <가십 스트리트(Gossip Street)>에 캐스팅되면서 발굴된 배우이다. 계약 배우로 일하면서 <라이벌스 오브 쿵푸(Rivals of Kung Fu)>(1974), <대가성>(1975), <슈퍼 인프라맨>(1975) 같은 쇼브라더스 유한공사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계약 종료 후 그는 그의 첫 공식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데, <당산대형 2>(1976)라는 제목의 영화였고, <당산대형>에서 실제 이소룡이 맡았던 역할을 맡았다. 또한 <용문비지>(1976)를 통해 필리핀계 중국인 영화 감독 조셉 콩(실명: 조셉 벨라스코)을 만나게 되는데 이 두 사람은 이 첫 작품에서의 협업 이후로 수많은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이제 여소룡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황건룡은 조셉 벨라스코 감독과 함께 <브루스 앤 소림 브론즈맨(Bruce and the Shaolin Bronzemen)>(1980), <브루스 리의 클론들>(1980) 등을 포함하여 총 8편의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추가로 작업했다. 1976년에서 1982년까지, 여소룡은 최소 스물 다섯 편의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만들었고 대체로 삼류 홍콩 제작사인 P.T. 인산트라(P.T. Insantra)에서 제작했다. 이들 중 몇 편은 미국에서 예상보다 두 배 가까이 팔리기도 했고, 동시에 두 가지 타이틀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으며 일부 영화들은 새로운 영상을 더하고 재편집해서 새로운 제목을 붙인 채 다시 판매되기도 했다. 여소룡은 이후에 딕 랜들 프로듀서가 제작하는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출하고 직접 영화에 출연했다. 이들 중 한 영화가 <흉종>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딕 랜들 프로듀서의 아내로 '칙 노리스(Chick Norris)'라는 예명을 사용했던 커를리스 랜들(Corliss Randall)과 공동 주연을 맡았으며, 딕 랜들의 스페인 이탈리아 고어 영화 <피시스(Pieces)>(1982)에서 잊지 못할 카메오 연기를 펼쳤다. 여소룡은 현재까지도 영화업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Cast & Character 한국 이소룡, 거룡(DRAGON LEE, 문경석)
 

1940년에 한국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문경석이다. 그는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맡았던 김태청과 함께 태권도를 연마했고, <맹룡과강>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이소룡이 물리치는 일본인 파이터 역을 맡았던 황인식과 합기도를 훈련했다. 이러한 접점이 있었던 것과는 별개로, 문경석이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동네 영화관의 간판을 그리던 한 사내가 그에게 이소룡을 닮았다며 영화사 화천공사를 소개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화천공사는 그들이 새롭게 발굴한 이 뉴페이스를 <더 라스트 피스트 오브 퓨리(The Last Fist of Fury)>(1977)에 출연시켰다. 화천공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두 명의 홍콩 제작자 토마스 탱과 조셉 레이는 한국에서 낮은 가격에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찍고자 했고, 그로 인해 문경석은 거룡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두 명의 제작자와 거룡은 곧장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1977년부터 1983년까지 거룡과 함께 스무 편이 넘는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만들었으나, 촬영본을 재활용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실제로 정확히 몇 편의 영화로 탄생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다른 출연작 중 <웨이 오브 쿵푸(Ways of Kung Fu)>(1978)에서는 브루스 레이(Bruce Lei)라는 예명을 사용했으며, <정무지보>(1979)의 미국판 영화 포스터와 광고에서는 브루스 리이(Bruce Rhee)라는 예명으로 쓰였다. 거룡은 한때 영화관을 운영하는 극장주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방송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 Cast & Character 대만 이소룡, 허쭝다오(BRUCE LI)
 

대만계 체조 선수이자 체육 교사였다. 연기 수업을 몇 차례 들은 바 있는 허쭝다오는 대만의 독립 무술 영화의 거물인 곽남굉이 발굴한 배우이다. 곽남굉은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서 그를 단역으로 출연시켰고, 이후 허쭝다오는 그의 첫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전기 영화인 <일대맹룡>(1947)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이 영화와 허쭝다오의 다음 이소룡의 전기 영화인 <브루스 리: 위 미스 유(Bruce Lee: We Miss You)>(미국판 제목: <드래곤 다이 하드(The Dragon Dies Hard)>)는 얼라이드 아티스트(Allied Artists)를 통해 미국에서 개봉했는데 이소룡의 부인인 린다 리(Linda Lee)가 건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이유는 고인이 된 그녀의 남편의 이미지를 위에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와 광고에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허위 광고 혐의는 <굿바이 브루스 리: 히스 라스트 게임 오브 데스(Goodbye Bruce Lee: His Last Game of Death)>에서도 계속되었다. 필라델피아의 폭스 극장에서 티켓 값을 지불하고 영화를 본 수십 명의 이소룡 팬들이 영화가 표절이란 사실에 격분하였고 이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소비자 보호 단체가 해당 영화를 기소하였으며 판사들은 영화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다. 또 다른 전기 영화 <돌아온 이소룡>(1976)은 미국에서, 특히 뉴욕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이유에서 인지 이 영화의 성공 때문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존 피터스가 이소룡 전기 영화를 만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이 또한 미국 TV로 방영될 첫 미국말 더빙 중국 쿵후 영화였다.) 허쭝다오는 <사망유희>(1978)의 주연 역할을 제안 받았으나, 골든 하비스트(Golden Harvest)에서 이소룡의 미완성 영화의 완성에 관한 허쭝다오의 신중한 조건을 만족시켜주지 않아 거절했다. 1974년부터 1982년까지 허쭝다오는 20여 편의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했다. 그는 이소룡의 유산을 가장 존중하는 모방 배우였고, 그 자신이 유명 인사가 되는 것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핑크 트랩(Pink Trap)>(1985)이었다. 오늘날 그는 공인 접골사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 및 노인들을 위한 체육 교실을 열고 있다.


↘ Cast & Character 홍콩 이소룡, 양소룡(BRUCE LIANG)
 

1948년 홍콩 출생으로 본명은 양재생이다. 그는 전 스트리트 파이터로 광둥 오페라, 고주류 가라테, 그리고 영춘권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스턴트맨 및 조연 역할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오사원 감독의 초기 영화 <신용소호강호>(1974), <리틀 슈퍼맨(Little Superman)>(1974), <쿵푸 스팅(Kung Fu Sting)>(1976) 등 여러 편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골디그 영화사 프로듀서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졸작으로 악명 높은 <더 드래곤 리브스 어게인>(1977)에 그를 이소룡 역할로 캐스팅했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모영과 함께한 <파계>(1977), 3-D 성룡 영화 <비도권운산>(1978)이 있으며, 짐 켈리가 주연한 <특수요원 루카스>(1978)에서는 배우 및 무술 연출로 참여했다. 그의 두 번째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는 허쭝다오와 함께 출연한 <아이언 핑거(Iron Finger)>(1978)였다. <쇼 다운 앳 디 이쿠에이터(Showdown at the Equator)>(1978)와 <더 피스트, 더 킥스, 앤 디 이블(The Fists, The Kicks, and the Evil)>(1979)은 미국에서 각각 <리 리브스 위드인(Lee Lives Within)>, <리 킥스 백(Lee Kicks Back)>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1980년대 후반에 그는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15년 뒤 주성치가 <쿵푸 허슬>(2004)에 그를 '야수'로 캐스팅하면서 다시 영화계에 등장했다. 이후 수년 동안 거의 23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