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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똥개’
누군가 ‘똥개야’라고 부른다. 똥개와 동시에 뒤를 돌아보는 또 다른 ‘똥개’가 있다. 동네
똥개라도 솜솜 뜯어보면 의외로 견물(犬物)이 쓸만하듯이, 늘 구부정한 자세로 껄렁하게 돌아 다니는
‘똥개’역시 지저분한 수염과 콧물로도 가릴 수 없는 말끔한 인물을 하고 있다. 동네 아줌마들의
동냥젖을 먹고 자란 철민(정우성)이 그 ‘똥개’이다. 경찰인 아버지와 계란 후라이를 놓고 싸우는
일 빼고는 별다른 불만없이 성장기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느 날, 선배의 패거리가 똥개를 잡아
보신하는 일이 터지자 ‘똥개’의 유유자적 패턴에 변화가 생긴다. 이제 ‘똥개’는 사람을 물게
된다. 그리고 한번 물면 절대 놓치 않는다. 선배의 패거리들을 제대로 물고 난 뒤, 고등학교를
그만둔 ‘똥개’의 일상은 한층 더 후줄그레해진다. 시장 볼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와 부딪히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담그고, ‘로데 5거리’를 동경하고 있는 여자아이와 대낮의 오토바이
질주를 하고, 오합지졸 ‘MJK(밀양주니어클럽)’의 짱이 되고, 시내에 있는 안마시술소에서 정말(!)
안마만 받으러 가기도 한다. ‘똥개 보신 사건’으로 악연을 진 선배 패거리가 조폭 똘마니가 되어
신경을 긁는 일만 빼고는 ‘똥개’의 날들은 충분히 후지고 충분히 지루해서 충분히 평화롭기까지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찰인 아버지 덕분에 선을 넘는 일은 절제되곤 하기 때문이다.
<똥개>의 첫 번째 정보는 ‘제대로 망가지는 정우성’이다. 두 번째 정보는 ‘곽경택 감독과
정우성의 만남’이다. 세 번째 정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두 가지로 충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기대만큼 정우성은 ‘똥개’가 되었고, 기대만큼 곽경택 감독과 정우성의 만남은 유쾌했고
따뜻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름대로 세 번째 정보를 정해보았다. <똥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갱찰’인 아버지와 ‘똥개’인 아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한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의 뜻을 고스란히 받아주지 않고, 아들은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저만치서 으르렁댄다.
그 알량하고 치사한 다툼들은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눈물로 맺힌다. 투정부리고
대들고 원망할 아버지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에, 살아 계실 때 더 으르렁대지 못했다는 자각에
어른들은 가슴 한 귀퉁이가 알싸해진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가 되어 살고 있는, 늙어버린
아들들을 위한 동화인 것이다.
학교를 중간에 자진졸업(!)한 사나이들의 모임‘MJK(밀양주니어클럽)’의 짱 자리를 놓고 결투를
신청하려 왔다가, ‘똥개’가 담근 김치에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부터 알아봤다. 그 시절 친구들은
비장한 일들이 수시로 바뀔만큼 순수하다는 것을. 정비공장에서 일하는 성실하고 착한 대떡이, 스모
선수처럼 거대하고 단순한 응군이, 준비 동작만 완벽한 전직 짱 등의 친구들은 ‘똥개’ 못지 않게
두서없고 소박하며 비루하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 연출하는 ‘개판’에서 풍겨나오는 웃음과 온기는
또 한번 가슴 한 귀퉁이를 알싸하게 만든다. 이젠 그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그 시절과
함께 친구들도 흘러갔기 때문이다. 다시 가질 수 없는 시절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늙어버린 친구들을
위한 동화인 것이다.
부모님에게 난데없이 어리광 부리고 싶고, 친구에게‘똥개야, 놀자!’라며 무작정 불러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구술해 가는 곽경택은 천상 이야기꾼이다. 사소함으로도 충분하게
채울 수 있는 능력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만든 이도 보는 이도 출발을 같은 데서 해야
할 것이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에 같은 마음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곽경택 감독에 대한 새로운
욕심을 갖고 본다면, 충분히 맛있고 영양가 있었지만 뒤끝에 아쉬움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리아필름
객원기자 황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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