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챔피언의 의미...

1984년 이계인 주연, 이혁수 감독의 [울지 않는 호랑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1982년 11월 14일 멘시니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 경기 후에 사망한 김득구 선수에 관한 영화였다.
그리고 지금 2002년 유오성 주연, 곽경택 감독의 [챔피온]이 개봉한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김득구 선수가 스크린에 부활한다.

무언가의 필연적 사명감에 젖어서 김득구를 다시 얘기한 곽경택 감독.
김득구씨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묻고 싶었다는 곽경택 감독은, 유오성이라는 배우를 빌려 차분하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김득구를 되살려 놓는다.
그런 사명감 때문일까, 영화는 '권투선수'가 아닌 '최선을 다한 사람' 김득구를 그림으로써 강한 드라마도 버리고 영화적으로 활동감의 절정을 이룰 권투경기도 많이 절제한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곽경택 감독의 전작 [친구]같은 강렬한 드라마나 극적 구성은 찾기 어렵지만 감독의 치밀한 조사와 투영에 입각한 사실적이고 소소한 드라마로 은근한 재미와 감동을 유출하고 있다. 악하거나 비트 강한 캐릭터 그리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건이나 갈등은 없지만, 영화는 감독의 사명감에 가까운 뚝심이 느껴지고 '챔피언'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가히 계몽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만한 힘이 넘쳐난다.
물론 여기에는 유오성의 혼신의 연기가 많은 지원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흔히들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는 '배우영화'라고도 하는데, 유오성의 연기를 보다보면 실제로 김득구씨가 저렇게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사한다.
배우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챔피언]은 착하고, 정직한 영화이다.
2002년 현재에 난무하는 기교적이고 오락적인 영화와는 길이 많이 다르지만, 이런 영화 한편을 지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감독의 확고부동한 일심과 최선을 다하는 연기,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진실한 고찰이 살아있는 영화...바로 [챔피언]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김득구의 아들은 아무도 없는 허름한 체육관을 찾고, 거기서 김득구의 미소와 훈련장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만난다. 우리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너희들도 최선을 다해라. 김득구는 미소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권투경기 중계시 늘 울려 퍼지던 음악을 들려주며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이렇게, 지금 우리는 삶이라는 권투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마지막까지 일러준다...

코리아필름 정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