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과 연쇄살인사건의 만남

영화 <혈(血)의 누(淚)>는 19세기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섬 동화도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연쇄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수사관(차승원 분)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 스릴러물로,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지자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관 원규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되고 잇달아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수사관 원규는 사건을 파헤치면서 제지소 소유주인 김치성 대감의 아들이자 실질적으로 제지소의 실권을 쥐고 있는 인권(박용우 분)과 대립하고 제지소의 전 주인이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참형 당한 강객주에게 은혜를 입었던 두호(지성 분)를 만나고 자신 역시 연쇄살인사건과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되면서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고립된 섬에게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인간 내면에 도사린 극단적인 이기심과 탐욕의 얼굴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낸다. 고풍스러운 사극과 지적인 연쇄살인사건의 아이러니한 만남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지만 연쇄살인사건의 다룬 요즘의 스릴러 영화와 별반 다르게 없으며 한 인간의 복수와 원혼의 저주를 얽혀 전개되는 뻔한 스토리는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또, 소재와 완성도면에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설명위주의 전개방식의 스릴러 영화의 묘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특히 자신만의 논리로 사건을 이지적으로 추리하지만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혼란과 죄의식으로 갈등을 거듭하기도 하는 햄릿같은 인물인 원규의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원규로 분한 차승원의 연기 역시 밋밋한 수준에 그쳐 '조선시대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조합에 균열을 일으킨다. 또, 잔혹한 살인사건에 비중을 둔 나머지 각 인물들의 비굴함을 제대로 포착하질 못해 결국 후반부에서 한꺼번에 표출되는 영화의 메시지는 다소 버겁게 느껴진다. 주변인물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질 못하고 점도 이 영화의 약점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 조선시대의 다섯 가지 극형(효시, 육장, 도모지, 석형, 거열)을 영화적으로 사실감 있게 표현한 것은 칭찬할만하고 '연기자 박용우의 재발견'은 큰 수확이다. 광기어린 마을 사람들의 비명과 혈우(血淚)로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동화도의 라스트 장면은 충격적인 동시에 인상적이다.

좋은영화의 11번째 작품 <혈의 누>는 시네마서비스의 배급을 통해 오는 5월 4일(수) 개봉된다. 순 제작비 57억(마케팅비 포함 74억 예정)이 투입됐다. 상영시간 119분, 18세 관람가. 한편, 제목 '혈의 누'는 이인직의 신소설과는 무관하며 한자그대로 '피 혈(血), 눈물 누(淚)'를 뜻하며 영화의 주요 내용인 연쇄살인의 극단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2005.4.21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