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틀로얄2 : 레퀴엠 Battle Royale 2


" 전세계를 강타한 사회문제작,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

2003년, 미국, 액션/호러, 133분

감 독 : 후카사쿠 킨지, 후카사쿠 겐타
각 본 : 후카사쿠 겐타, 키타 노리오
촬 영 : 후지사와 마사카즈
미 술 : 이소미 토시히로
음 악 : 아마노 마사미치 l 액 션 : 모로카지 유타

출 연 : 후지와라 타츠야, 마에다 아이, 오시나리 슈고, 다케우치 리키

개 봉 : 2004년 4월 9일(금) 개봉 l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수 입 : ㈜동아수출공사, ㈜동아엔터테인먼트
배 급 : 무비즈엔터테인먼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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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얄2: 레퀴엠> 한 맺힌 국내 흥행 도전
 

- 일본 폭력 미학의 거장 故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유작.
- 한 장면 연출하고 골수암으로 별세. 조감독인 아들에 의해 완성.
- 전편 흥행 기록 넘어선 액션 대작. 오는 4월9일 개봉.

2001년 개봉한 <배틀로얄> 속편의 제목은 <배틀로얄2: 레퀴엠>이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처럼 이 영화 역시 부제가 붙었다. 그러나 왜 '레퀴엠'인가? '진혼곡'이라는 뜻의 '레퀴엠'에는 영화와 속 깊은 관련이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배틀로얄>은 중학생들이 서로 죽고 죽인다는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일본 국회에서 논의될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던 작품.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바로 일본 폭력영화의 거장이자 70대인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70대의 나이에 잔혹한 전쟁 서바이벌 <배틀로얄>을 만들었으니 그의 노익장은 젊은이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졌다.

세계적인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신의 영화 <킬빌 Vo.1>에서 <배틀로얄>을 만든 故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 <킬빌>을 바친다고 할 정도로 그는 긴지 감독의 열렬한 매니아이자 숭배자였다. 1973년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카사쿠 긴지감독은 안타깝게도 <배틀로얄2: 레퀴엠>의 오프닝 장면만 찍은채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세계적 거장으로 칭송 받는 긴지 감독의 <배틀로얄>은 일본에서 250만명이 관람해 대박을 터뜨렸지만, 18세 관람가를 받았던 국내에서는 20여만명이 채 안되는 흥행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비디오와 DVD로 출시되면서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약 100만명에 이르는 인기를 누리며 많은 배틀 매니아가 탄생되었고, 최근 진행된 전야제에서는 좌석이 모두 매진 되는 등 개봉을 앞두고 점점 영화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오는 4월 9일 <배틀 로얄 2: 레퀴엠>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누구보다 노심 초사하는 사람은 바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아들이자 속편을 완성한 후카사쿠 겐타감독이다. <배틀로얄2>의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이 골수암을 앓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에도 불구하고 속편 제작에 박차를 가했던 긴지 감독의 뒤에는 늘 그림자처럼 그와 함께하던 아들 후카사쿠 겐타가 있었다.

첫 촬영하기 전날 심한 의견충돌로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현장에 가보지 못했다는 겐타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참회와 유지를 이어받아 마침내 2편을 훌륭히 완성해내고 제목 뒤에 아버지의 정신을 기린다는 부제 '레퀴엠'을 붙였다. 2003년 7월 일본에서 개봉한 <배틀로얄2: 레퀴엠>은 전편의 성적을 뛰어넘은 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흥행 공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3월 11일 일본에서 진행된 <배틀로얄2: 레퀴엠>의 현지 시사회에서 후카사쿠 겐타감독은 "아버지의 유작이 한국에서도 성공해 자신의 이름보다는 후카사쿠 긴지라는 아버지의 명성이 더 알려졌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전편에서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와 테러리스트로 변한 아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배틀로얄2: 레퀴엠>은 오는 4월 9일 개봉된다. (2004.03.31)

코리아필름 편집부


<배틀로얄2: 레퀴엠> 유료 전야제 개최
 

- 오는 3월 27일, 28일 양일간 코스튬 플레이, 서바이벌 게임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 풍성.

지난 2001년 개봉하며 수 많은 배틀로얄 매니아를 양성해냈던 <배틀로얄>의 후속편 <배틀로얄2: 레퀴엠>(동아수출공사/동아엔터테인먼트 수입)의 개봉을 앞두고 오는 3월 25일 매니아들의 요청에 의해 유료 전야제가 열린다. 이번 행사가 타 영화의 유료 전야제와 다른 점은 바로 열혈 매니아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전야제라는 점.

전편이 개봉 된지 어느새 횟수로 4년째에 들어섰지만 다음 카페, 네이버, 하나포스, 네이트, 코리아닷컴 등 국내 대형 포털 사이트에 포진되어 있는 <배틀로얄>의 매니아 약 10만명은 여전히 뜨거운 관심과 식지않는 애정을 보여주며 2편의 제작과 개봉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또 그 사이 이들은 전편의 흥행성적을 훌쩍 넘어선 2편의 국내 개봉을 기다리며, P2P 사이트의 불법 다운로드와 불법 DVD 보지 않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벌이는 등 <배틀로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개봉이 확정되자 곧 <배틀로얄2: 레퀴엠>의 공식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battle2.cafe)를 만들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전야제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날 전야제에 참여하는 모든 매니아들에겐 <배틀로얄2: 레퀴엠>의 팜플렛과 사진자료가 배포되고, 주연인 후지와라 타츠야와 후카사쿠 겐타 감독이 직접 사인한 오리지날 포스터와 폴라 로이드 사진, 그리고 MP3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등 푸짐한 상품도 준비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매니아들을 위한 전야제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코스튬 플레이 대회와 대부도에서 열리는 서바이벌 게임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3월 27일 코엑스 몰에서 최종 결선을 치루게 될 코스튬 플레이 대회는 <배틀로얄2>의 공식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battle2.cafe)에서 배틀로얄로 코스프레한 사진을 올려 선발된 인원이 코스튬 플레이 대회에 최종 결선에 오르게 된다.

또, 다음날인 3월 28일에는 대부도에서는 영화 속 내용처럼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서바이벌 대회가 펼쳐져 영화만 관람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즐기는 쌍방향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극찬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유작인 <배틀로얄2: 레퀴엠>은 1편에서 살아남은 테러리스트들과 국가간이 전쟁을 그리며 오는 4월 2일 개봉된다. (2004.03.23)

코리아필름 편집부


<배틀로얄2: 레퀴엠> 4월 2일 개봉확정
 

20세기말, 학생들과 어른들의 대립으로 친구를 죽이는 충격적인 스토리로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배틀로얄>의 속편 <배틀로얄: 레퀴엠>이 1편보다 더 강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오는 4월 2일 국내 개봉이 확정되었다.

1명이 죽으면 나머지 한 명도 동시에 죽는다는 페어 태그메치 방식을 영화에 도입시켜 또한번 논란이 재현된 <배틀로얄2: 레퀴엠>은 사실적이고 잔인한 폭력장면으로 18세 관람가를 받았던 <배틀로얄1>과는 달리 이번엔 15세 관람가를 판정을 받아 청소년층 관람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 것으로 사료된다.

전작의 성공에 힙입어 <배틀로얄2: 레퀴엠>은 지난해 5월 개최된 칸느 영화제 마켓에서 각국 배급관계자들의 큰 인기를 모았으며 영국, 독일, 러시아뿐 만이 아니라 그 동안 일본영화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그리스 등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배급 오퍼가 들어와 전 세계 30여개국 확대상영을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무작위로 뽑힌 한 학급을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하는 신세기 교육개혁법, 통칭 'BR법'… <배틀로얄2: 레퀴엠>은 1편에서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후지와라 타츠야)와 나카가와 노리코(마에다 아키)가 그 섬을 탈출하고 3년 후 BR법을 시행한 국가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도가 파괴되고 계속되는 혼란에 세계는 테러의 시대로 들어선다.

국가는 나나하라 슈야를 테러리스트의 주모자로 단정짓고 국제지명수배를 내리고 학생들은 나나하라 슈야를 죽이기 위해 강제로 섬에 잠입하게 된다. 새로운 룰인 페어 태그매치로 2인1조가 되어 한 사람이 죽으면 나머지 한 사람도 죽는 공포의 서바이벌… 과연 어느 팀이 나나하라 슈야를 죽이고 이 섬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전설적인 감독 후카사쿠 긴지의 유작으로 전편의 흥행을 넘어 일본에 280만의 관객을 돌파한 최고의 시리즈 <배틀로얄 2>는 사실적인 전쟁씬과 장엄한 스케일로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 층을 형성하며 10~20대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는 올해 최고의 액션 영화이다. (2004.02.26)

코리아필름 편집부


<배틀로얄 1> STORY
 

가까운 미래의 일본.
실업자 1천만명, 등교거부 학생 80만명, 교내폭력으로 순직한 교사 1200명.
실업자가 양산되고, 학생들은 학교를 파괴한다. 자신감을 잃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두려워해 강력한 법률 하나를 제정한다. 이름하여 '신세기 교육 개혁법 배틀로얄'

BR법이라고도 하는 이 법률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학급 중 무작위로 한 학급을 선발, 3일간 무인도에서 친구들끼리 실제로 서로를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 최후의 생존자만이 살아 돌아갈 수 있는 끔찍한 법률이다.

이번 배틀로얄의 대상으로 선정된 3학년 B반의 42명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에 무인도로 납치되고, 어리둥절한 학생들 앞에 예전의 담임 선생이었던 기타노 선생이 등장하여 BR법과 전투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 BR 1의 룰
1. 반경 10km의 무인도에서 기관총, 단검, 낫 등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서로를 죽여야 함.
2. 목에 장착된 목걸이를 통해 중앙통제소에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며, 억지로 풀려고 하거나 수상한 짓을 하면 목걸이는 자동폭발.
3. 시간이 지날수록 제한구역을 늘리며 제한구역에 남아있을 경우에도 목걸이는 자동폭발.
4. 제한 시간은 3일, 오직 한 사람만이 집에 돌아갈 수 있으며, 만약 3일이 지난 후에도 우승자가 가려지지 않을 경우 전원 사살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타노 선생이 떠든다는 이유로 학생의 이마에 칼을 꽂자, 학생들은 그제서야 이 끔찍한 살인극의 참가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흩어진 학생들은 이제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BR법 규칙에 따라 친구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나나하라 슈야와 노리코 역시 냄비뚜껑과 망원경이 전부인 그들의 무기를 가지고 배틀로얄에 참가하게 된다. 나나하라는 자신의 곁에 있는 노리코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둘의 무기로는 역부족이었고, 그때 3년전 대회 우승자로 다시 배틀로얄에 참가한 카와다 쇼고가 나나하라 슈야와 노리코를 도와주면서 셋은 함께 하게 된다.

학급의 친구들은 모두 죽고, 전 대회 우승자인 카와다 쇼고 덕분에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와 노리코는 기타노 선생을 죽이고 섬을 탈출한다. 하지만 배틀로얄 대회도중 큰 상처를 입은 카와다 쇼고는 죽음을 맞으면서 나나하라 슈야와 노리코만이 살아남지만 기타노 선생을 죽였다는 이유로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지명수배를 당하게 되고, 나나하라 슈야와 노리코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다.


배틀로얄 2 : 레퀴엠 STORY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무작위로 뽑힌 한 학급을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하는 신세기 교육개혁법, 통칭 'BR법'… 3일 이내에 자기 이외의 친구 모두를 죽이는 방법 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과연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BR에서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후지와라 타츠야)와 나카가와 노리코(마에다 아키)가 그 섬을 탈출하고 3년. 세계는 테러의 시대로 들어선다. BR법을 시행한 국가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도가 파괴되고 계속되는 혼란에 국가는 나나하라 슈야를 테러리스트의 주모자로 단정짓고 국제지명수배를 내린다.

수도붕괴 1년 뒤. 반BR법조직 '와일드세븐'의 리더가 된 나나하라는 모든 어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어른들은 나나하라를 말살하기 위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게임인 '신세기 테러대책특별법 - 통칭 BR2'를 가동시킨다.

전국의 불량학생과 문제아를 모아놓은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 B반의 학생 42명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스키학교로 향하던 중 군에 납치되어 군복을 강제로 입게 된 채 군의 거대한 텐트 속에 갇히는데 이들의 담임이었던 리키(RIKI, 다케우치 리키)가 나타난다. 리키는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이들이 이번 'BR2'에 참가하는 학급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과 BR2의 룰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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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 일본열도를 강타한 충격의 사회문제작,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한 최고의 영화
 

2000년 12월 16일. 20세기말, 전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배틀로얄>. 중학생끼리 서로 죽인다는 내용이 국회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큰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작품에 열광한 10~20대의 젊은이들은 영화에 그려진 '42명의 삶과 우정, 그리고 죽음..그들의 청춘군상'을 지지했다.

관객동원 215만명, 흥행수입 31억엔, VHS, DVD 판매와 대여 합계 29만장 이상(특별편 포함)을 기록,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아직도 인기리에 대여되고 있으며 개봉된지 2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는 인기를 자랑하는 <배틀로얄>.

2002년 7월. 차기작 기획 중 '다시 한번 아이들과 작품을 하고싶다' 는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강한 희망에 따라 <배틀로얄2>의 제작이 결정되었다. 프로와 아마추어 배우 등 총 6천명이 출연 응모해 오디션이 개시되었다. 전작에 이어 각본과 프로듀서를 맡은 장남인 후카사쿠 겐타는 모든 오디션에 참석하여 항상 아버지 긴지 감독 옆에서 지원을 하며 제작을 향한 준비를 해나갔다.

2002년 9월 25일. <배틀로얄2> 제작발표회 기자회견장에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스스로 골수암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래도 BR2를 계속 찍고 싶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오디션에서 선발된 학생 42명과 테러리스트 역의 배우들은 2개월동안 가혹한 훈련과 리허설을 거쳤다.

2002년 12월 16일. 크랭크인 직후 몸 상태가 나빠진 긴지 감독을 대신하여 겐타씨가 감독대행을 하였으나 2003년 1월 12일,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결국 영원히 눈을 감았다. 2003년 1월 18일. 후카사쿠 겐타 신감독의 지휘하에 촬영이 재개되었다. '바이올런스 영화'의 거장인 후카사쿠 긴지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배틀로얄2>의 제작에 쏟아부은 정열은 후카사쿠 겐타와 후카사쿠 필름측 스탭과 캐스트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긴지감독의 뜻을 이어갔다.

캐스트에는 <배틀로얄>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나나하라 슈야 역의 후지와라 타츠야와 나카가와 노리코 역의 마에다 아키 외에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 B반 42명의 학생 역에는 오시나리 슈고, 사카이 아사나, 스에나가 하루카 등이 출연한다. 또한 전편에서 교사 기타노의 딸 시오리 역으로 목소리만 출연했던 마에다 아이가 BR2의 유일한 지원자 기타노 시오리 역으로 출연한다.

나나하라와 함께하는 반(反)BR조직인 와일드 세븐의 멤버에는 이시가키 유우마, 가토 하루키 등 신선한 얼굴들이 넘치고, BR2의 참가를 지휘하는 선생님 역으로는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선택으로 다케우치 리키가 연기한다. 그 외 기타노 다케시, 치바 신이치, 미타 게이코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후카사쿠 긴지 감독을 추모해 출연하였다.

* BR2의 룰
1. 외딴 섬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 나나하라를 발견해 죽이면 승리
2. 제한시간 3일간
3. 2명이 한팀이 되어 치르는 페어 태그매치

이렇게 해서 테러리스트와 싸워야하는 전쟁에 학생들이 강제로 투입된다. 수도의 파괴로 가족을 잃고 나나하라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과 지원하여 BR2에 참가하는 학생도 있는 상황에서 참가를 거부한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죽은 아이와 같은 출석번호의 아이도 새로운 룰인 '페어 태그매치'에 따라 목걸이가 폭파하여 죽는다. 그리하여 남은 '40명'의 학생들은 6척의 자동조종 보트에 태워져 최전선인 전장으로 보내진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보트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파도에 온몸이 젖어가면서 겨우 섬에 상륙하자마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섬광탄과 박격포가 빗발처럼 쏟아지는 속에서 필사적으로 총알을 피하는 학생들. 하지만 전신에 총을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이, 보트에 직격으로 맞은 폭탄 때문에 공중으로 산산히 부서지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나나하라를 죽이기 위해 공격해 오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자신들과 똑 같은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와일드세븐' 조직은 BR국가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던 신념에 따라 필사적으로 공격한다. 격렬한 전투 끝에 살아남은 학생은 단 '26명'. 다시 어른들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된 나나하라와 학생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후카사쿠 겐타 - 나의 '레퀴엠'
 

이 영화는 전작에서 죽은 교사 기타노의 딸 시오리가 아버지의 유작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002년 12월, 공교롭게도 크랭크인 날에 촬영된 그 씬이 바로 내 아버지가 촬영한 마지막 씬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후카사쿠 긴지에게 있어서, 촬영장은 항상 돌아가야 하는 소중한 '집'이었으며, 스탭은 항상 소중한 '가족'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계속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영화감독이란 어떤 직업일까 하고 상상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스스로 촬영을 끝내보고, 나는 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지 않았는지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수많은 캐스트나 스탭에게 둘러싸여있는 촬영현장이과 심야작업이 이렇게나 즐겁고 멋진 장소라면 말입니다….

<스타워즈>가 공개된 해에, <우주에서 온 메시지>라는 영화를 만든 아버지는 5살의 나에게 조금은 쑥스러운 듯이 웃으시며, '일본은 가난하니까 말야…대나무봉을 들고 헐리우드와 싸운단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웃는 얼굴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저는 항상 시나리오를 마지막 씬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테러리스트가 된 나나하라 슈야가 마지막에 죽는 장면을 생각했을 때, 아버지는 한마디로 '너는 그런 라스트를 보고 싶으냐?'하고 꾸짖었습니다. 후카사쿠 긴지는 만년에 항상 라스트씬에 희망을 그려넣었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계속되는 아이들의 희망을 말이지요. 그분 뒤로 남겨진 우리들 '후카사쿠 구미'는 이제부터 어떤 희망의 이야기를 엮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 겨우 BRⅡ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내 주변에는 소중한 사람들, 할머니, 친구, 그리고 아버지라는 세 사람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소중했던 그 사람들과의 추억을 가슴에 품은 채 나도 또한 낡은 신을 벗어버리고, 지금보다 더욱 먼 지평선을 향해 달려나가려고 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함께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들 '후카사쿠 구미'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대나무봉을 들고 전세계와 싸워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ABOUT MOVIE 전편의 흥행을 넘어 28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최고의 시리즈 <배틀로얄 2>
 

제작 당시 많은 시민 단체의 반대 시위와 문부성 장관이 상영규제를 촉구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배틀로얄1>은 영화의 상영규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일 극장에 새벽부터 관객과 내외신 기자들 1,000여명이 몰려들어 지대한 관심을 입증했다.

전국 200여개가 넘는 극장에서 상영된 <배틀로얄1>은 개봉 당일 극장가를 평정하고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에 등극, 215만명을 동원하면서 31억엔이라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일본내에서의 좋은 반응에 이어 홍콩에서도 개봉되어 단 6일만에 364만 달러 (홍콩 달러 기준)의 흥행 수입을 올렸는가 하면 대만과 프랑스 등 총 22개국에서 개봉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비디오, DVD가 해외에서 계속 팔리고 있다.

이런 전작의 성공에 힙입어 <배틀로얄2>는 지난해 5월 개최된 칸느 영화제 마켓에서 작품이 완성전인데도 불구하고 각국 배급관계자들의 큰 인기를 모았다. 더불어 영국, 독일,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일본영화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그리스 등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배급 오퍼가 들어와 전 세계 30여개국 확대상영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2003년 7월 5일 개봉 된 <배틀로얄2>는 전국 261개관에서 상영되어 전작보다 250% 증가된 입장기록을 세우면서 흥행수입 40억엔, 280만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과 더불어 해외의 평가도 아주 좋았다.

영국 BBC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방송을 제작했는가 하면, 토론토, 로테르담, 토리노 등 세계 영화제의 경쟁부문의 출품 요청이 쇄도하면서 마침내 베스니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으며 또한 배틀로얄의 원작 소설은 100만부를 돌파했고, 배틀로얄 만화는 현재 9권까지 발행되어 누계 발행부수만 500만부를 돌파했다.


Production Note 후카사쿠 감독 투혼의 연기지도 - 대규모 대형텐트 리허설
 

세로 20mⅩ가로 11m의 이 대형텐트에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B반의 학생들이 끌려온다. 거기에 나타난 교사 RIKI는 공포스럽게 '이젠 너희들이 전쟁을 해야 한다'고 선언. 나나하라 슈야를 죽이라는 명을 받게 된 42명의 학생들과 선생 RIKI가 나오는 장면이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바로 텐트에 끌려온 학생들의 연기를 보고 긴지 감독이 소리친다. 그때까지 쓰고 있던 확성기를 버리고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텐트 안의 병사, 학생들을 둘러싼 철망과 그 높이, 그리고 텐트 자체의 넓이에 대한 리액션이 모자란다고 주의를 준다. 감독이 중시하는 것은 역시 42명 학생들의 '리액션'인 것이다.

텐트에 들어오는 교사RIKI. 그리고 학생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RIKI에 대한 리액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자 바로 '좀 더 선생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라구. 보통 때 너희들 선생따윈 물로 보잖아?'하는 긴지 감독의 말 한마디로 그때까지 학생들을 긴장시키고 있던 분위기가 풀려간다. 감독의 희망에 보답하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감독과의 대화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학생들. 주연들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을 총괄하는 후카사쿠 감독, 이것이 후카사쿠 긴지의 연출의 힘인 것이다.


후지와라 타츠야…"제 가슴속엔 언제나 후카사쿠 긴지감독님이 있습니다."
 

'무엇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제부터는 마음 속의 후카사쿠 긴지와 싸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겐타씨의 이 말과 함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뜻을 이어, 신생 후카사쿠 구미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약 1주일 만에 촬영이 재개되었다. 거대 텐트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쳤다. 각각이 깊은 슬픔을 넘어서서 '후카사쿠 겐타 감독'을 중심으로 현장을 움직여 나간다. 텐트 안의 촬영은 1주일동안 계속되었다. 모니터 앞에서 배우의 대사를 맞춰보고 자신도 입을 움직이는 겐타 감독. 그 모습을 보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스탭은 없었을 것이다.

후쿠다 카즈미의 목걸이 폭파 장면에서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써서 학생들에게 '다들 공포와 혼란이 패닉상태에 달아있잖아. 소릴 질러봐, 계속 삑삑거리는 목걸이, 끊임없이 지껄이는 RIKI, 총을 겨눈 병사들, 각각에 대한 리액션이 필요해. 결코 카즈미만 리액션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면 안된다구. 주의해봐' 하고 주문을 했다. 그 리액션에 대한 집착, '무엇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여기 있었다.

전작에서도 직접 모든 액션을 해내고 주위의 스탭을 놀라게 했던 후지와라 타츠야.
이번에도 당연히 스탠트맨 없이 액션에 도전했다. 나나하라 슈야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다는 설정부터 전작을 넘어서는 멋진 액션을 해야만 했다. 그것을 위해서 크랭크인 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배우의 액션훈련에 참가했다. 총 겨누는 방법 등을 지도 받고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와일드 세븐의 아지트 촬영에서는 장렬한 총격전이 전개됐다. 영화뿐 만이 아니라 수많은 연극무대를 거쳐 온 후지와라. 이번에도 그의 연기가 빛난다. 때때로 현장에서는 본 촬영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지와라를 볼 수 있었다. 그 행동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전수해 준 '아드레날린 증강법'으로 고개를 숙이고 20초 정도 숨을 멈추면 눈이 충혈되고 박진감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후지와라도 겐타 감독과 마찬가지로, '자기 속에 있는 후카사쿠 긴지'와 싸우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사상 최초로 삽입된 베토벤의 '안녕, 피아노여'…
슬픈 멜로디로 깊은 인상을 남기다.
 

영화 전편에 걸쳐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것이 '안녕, 피아노여'라는 곡이다.
시오리의 방, 그리고 아지트 안의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도 흐르는 이 곡은 베토벤의 작품이다. 그 아름다운 선율은 이별을 아파하는 듯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곡이다. 그런데 이 곡은 단순히 감독이 선곡을 한 것이 아니다.

크랭크인 전에 시오리 방의 세트를 내려다보던 긴지 감독이 갑자기 시오리의 대역을 써서 리허설을 하자고 말했다. 그날 의상을 맞춰보고 있던 여자 불량학생 그룹 세 명을 그 자리로 불러와서 '피아노를 좀 쳐 보라'고 감독이 요구했다. '제가 칠 수 있는 곡으로 할게요'하고 시미즈 사에이가 친 곡이 바로 '안녕, 피아노여'였다.

결코 완벽한 연주가 아니었지만 긴지 감독은 매우 마음에 든 듯, '이렇게 가끔씩 틀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는, 그 때 녹음한 것을 집에서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곡을 배경으로 '시오리의 방'에서는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아지트 안의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는 겐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후카사쿠 부자의 경쟁 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일드 세븐의 아지트, 나가사키 로케이션 현장 공개
 

나나하라 슈야가 이끌고 있는 와일드 세븐. 그들이 있는 곳이 센간(戰艦)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섬에서 전개되는 액션의 대부분이 나가사키의 어느 섬에서 촬영되었다. 나나하라 일행의 아지트, 학생들의 상륙장면, 아지트로 돌입하는 장면이 주요한 내용이다.
학생이 상륙하는 모래사장은 500m정도 펼쳐져 있는데 그 검은 모래사장에는 높이 60m정도. 이 절벽은 그 스케일의 거대함과 동시에 뭔가 불길함을 수반하고 있다.

이 특이한 입지조건, 그것은 이번 상륙작전에서는 긴지 감독이 추구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영화의 상륙장면 그 자체다. 또한 상륙한 학생들은 먼데 있는 몇 채의 폐건물을 보게 된다. 여기서 테러리스트들의 포격이 계속되는데, 실은 이 폐허의 한곳은 미술 스탭이 만든 가짜 건물이라 바람으로 날아가버려 언덕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여기가 예전에 아파트가 늘어서있던 거주지역이었다는 것은 그 누가 보아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 현장을 본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긴 전장이야'.


천국과 지옥의 현장 센간섬 상륙씬, 최고의 액션 장면 촬영
 

보트에 탄 학생들은 자동조종으로 센간섬에 도착한다. 보트에서 뛰어내려 해안으로 올라와 마구 튀는 총탄과 박격포 속에서 바리케이트를 넘어 아지트로 향한다. 폭파와 물보라 속에서 카메라가 학생들을 쫓는다. 박력 넘치는 영상이다.

이 작품 촬영에서 가장 배우들이 고생을 한 것이 바로 센간섬 상륙 씬이다. 나가사키라고 해도 촬영때는 3월이었다. 흰 입김이 나오고 바람은 매우 차다. 그 속에서 바다에 뛰어들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 추위도 대단하지만 보트가 바리케이트에 부딪히는 해프닝이 생기는 등, 위험한 상황도 많았다. 학생들이 짊어진 배낭이 튜브처럼 바다위로 떠다녔다. 그 부력으로 몸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고, 얕은 곳에서 물에 빠지는 학생이 속출했다. 바다 속에서 몸을 일으켜도 학생들의 뒤에서는 보트가 파도에 실려 들어온다.

그런 거친 촬영이었기 때문에 컷이 나오면 안도감에서 우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겐타 감독도 '정말 천국과 지옥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가사키의 바다에서의 촬영은 고통이었다고 말한다.


감동이 있는 크랭크 업 현장 - 미우라 해안 로케이션
 

크랭크업 예정이었던 미우라 해안 로케이션 촬영일. 언제나처럼 촬영 감독의 목소리로 촬영이 시작된다. 힘들고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이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정말로 기뻤다'고 말한 학생들. 마지막 촬영이 종료됐을 때 하라다 감독은 언제나처럼 '자, 학생 여러분, 빨리 돌아가세요'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에 대답을 하는 듯 학생들이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모두 함께 대답했다. 촬영이 끝나고 제작부가 준비한 맥주를 손에 들고 건배 준비를 했다. 하라다 감독이 '이 영화는 과연 언제 끝날까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끝났습니다. 만약 긴지 감독이 계셨다면 또 '지금부터 다시 찍자'고 말했을 것 같군요'하고 말했을 때 겐타감독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고… 그렇게 B반의 촬영은 끝났다.


SPECAIL <배틀로얄2> 일본 주요 언론 취재 기사
 

2002년9월26일 데일리 스포츠

후카사쿠 감독 암 고백
"이 싸움으로 생애를 마친다는 것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다"
<배틀로얄2> 제작발표 결사(決死)의 각오로 메가폰 잡다

"만약 이 싸움에서 생애를 끝낸다 해도 내게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일본영화계의 거장 후카사쿠 긴지 감독(72)이 25일 신작 <배틀로얄2>(2003년 여름 공개예정)의 제작에 임한다는 것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석상에서 후카사쿠 감독은 직접 골수암이라는 것을 밝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찍고 싶었다"는 전쟁을 테마로 한 작품에 문자 그대로 결사(決死)의 각오로 도전한다.

6년 전엔 전립선 암

감독의 외동아들로서 작품의 프로듀서, 각본까지 담당하는 후카사쿠 겐타씨(30), 배급을 하는 도에이의 오카다 유스케 사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임한 후카사쿠 감독. 보통 때와 변함없는 말투로 "누구에게나 주어진 수명이란 게 있으므로 남에게 폐를 끼칠 가능성이 적을 때에 이 작품을 찍고 싶다"며 남다른 각오를 말했다.
병에 대해서는 겐타씨가 설명했다. 실은 후카사쿠 감독은 96년에 전립선 암을 앓고 수술을 했었다. 그 후 2000년 여름에 등뼈 등에 전이되었다. 내장기관과는 달리 잘라낼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는 방사선치료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는 촬영을 말렸지만 "이 작품으로 생애를 마친다 해도 후회는 없다"며 제작에 대한 결의를 보여주었다. 원래라면 말려야만 했을 입장에 있는 겐타씨이지만 "사랑하는 아버지이지이면서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감독이다. 겨울 촬영은 굉장히 고통스럽겠지만,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팔팔하시다"며 오히려 후카사쿠 감독의 의사를 존중했다. 오카다 사장도 "전액을 투자할 각오"라고 선언. 후카사쿠 감독의 '최후의 싸움'을 주위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어른과 아이의 전쟁을 테마로

<배틀로얄1>은 2000년에 공개된 중학생들이 서로 죽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이번 <배틀로얄2>는 어른과 아이의 전쟁을 테마로 그려내 간다. 전쟁 중, 전쟁 후의 상흔들 속에서 청춘시대를 보낸 후카사쿠 감독이 느끼는 의문과 차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담은 그야말로 영화감독 인생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 한다.

2003년 1월 19일 스포츠 호우치

- 후카사쿠 감독에게 바칩니다.
미완성 된 후카사쿠 감독의 BR2, 아들 후카사쿠 겐타 감독이 완성시키다.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유작 <배틀로얄2>의 촬영이 도쿄 도에이 촬영소에서 재개되었다. 긴지 감독의 영정과 유골이 놓인 촬영소 안에 넘치는 긴장감 속에서 정식으로 메가폰을 이어받은 장남이자 프로듀서, 이제는 감독이라 불리우는 후카사쿠 겐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촬영이 재개된 이 날은 교실에서 42명의 학생들에게 서로 죽이는 'BR법'을 설명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슬픔에 젖어있을 틈이 없이 촬영은 12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이날 이후 매일 촬영 전 아침 10시. 출연자, 스탭 16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후카사쿠 긴지 감독님, 오늘도 당신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겐타씨의 결의에 찬 인사로 촬영은 시작되었다.

장례식에서 겐타 감독은 '5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왜 아버지는 집에 잘 돌아오지 않으시는 건지 궁금해 했는데 지금은 현장과 촬영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현장, 아버지가 바라고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며 '이제부터는 마음속의 아버지와 승부'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겐타 감독은 '<배틀로얄2>는 후카사쿠 긴지 작품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라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성실하게 찍는 것이 아버지께 공양하는 것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촬영에 임하는 각오를 보였다.

이렇듯 처음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언제나 함께였던 아버지와 아들, 후카사쿠 긴지와 후카사쿠 겐타는 감독이라는 이름은 크레딧에도 나란히 오르게 되었다.

2003년3월16일 일본경제신문

1월에 암으로 돌아가신 영화감독 후카사쿠 긴지가 죽기 직전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배틀 로얄2>. 그 촬영이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권력과 시대에 계속 도전해 온 반골의 작가가 인생의 끝에 담아내고자 했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배틀로얄2> '최후의 숙제' 그 답은 어디에?
장남이 감독,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촬영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 장래의 꿈을 말하는 5살의 장남, 겐타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퉁 튕기며 후카사쿠 긴지는 말했다. "너는 서른이 될 때까지 나를 넘어 설 수 없을 것이다". 예언은 묘하게도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배틀로얄2>의 촬영을 이어나가게 된 겐타는 서른 살이다. 이것이 첫 감독 작품이다.

감독이 바뀌는 것에 대해 당황해 하는 스텝도 많았다. '우리들은 후카사쿠 긴지와 일을 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이다. 솔직히 복잡한 기분이었다'며 오랫동안 후카사쿠 구미의 조감독을 해 온 하라다 테츠는 털어놓았다. 겐타의 연출에 대해, 베테랑 스텝들로부터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이런 식으로 찍지 않는다'는 말들도 나왔다.

'아버지가 남긴 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모두가 풀어나가고자 하고 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아버지가 하고 싶어했던 것을 상상하여 부풀려갈 수 밖에 없다'고 겐타씨는 말한다. 전작에서는 각본과 프로듀스를 맡았고 속편의 각본도 아버지가 눈 감으실 때까지 협의해서 써나갔다. 누구보다도 작품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다.

'다시 한번 '배틀'에서 테러와 전쟁을 그려내고 싶다'는 긴지 감독이 말을 꺼냈던 것은 작년 3월. 2001년 9월 1일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테러는 절대악'이라는 풍조에 강하게 반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러라는 형태로 밖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이 있다. 원래 폭력은 그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겐타씨. 그런 심정의 뒷편에는 긴지 감독 자신의 전쟁체험이 있다. 권력자에게 바치는 '신군(神軍), 황국(皇國)'을 믿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신 당했다. 그 분노에서 출발하여 강자의 논리에 저항하는 영화를 만들어 온 것이다.

이번 주인공도 필연적으로 테러리스트로 정해졌다. 전작에서 살아남은 소년, 나나하라 슈야를 리더로 극악무도한 국가와 싸워나가고 있다는 설정. 젊은 테러리스트 집단과 그들을 죽이기 위해 국가가 보낸 중학생들과의 전투가 줄거리의 축이 된다.

촬영은 지금 나가사키의 대규모 세트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 탄광마을 이었다가 30년 정도 전에 버려진 장소다. 휠체어를 탄 긴지 감독을 위해 스텝들이 만든 '긴지 로드'라는 언덕길을 무거운 기자재를 메고 스텝들이 묵묵히 오가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아지트는 바다에서 강풍이 불어오는 벼랑 위에 만들어졌다. 버려진 건물에 나무판자를 대고 회색으로 칠한 거대한 요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핑크색이나 노란색 천이 걸려있어 유원지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긴지 감독은 전장에 아이들다움을 표현하기를 원했다'고 미술감독이 말한다.
동시에 신경을 썼던 것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다. 미술에 참고하기 위해 스텝이 아프가니스탄까지 가서 찍어 온 사진 중에 긴지 감독이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부서진 전차(戰車)에서 즐겁게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을 그려내면서도 긴지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이들의 미래나 희망이 아니었을까'하고 프로듀서인 가타오카씨는 말한다. '라스트 씬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준비에 막 착수했을 무렵, 가타오카와 겐타에게 긴지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거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이 찍혀있었다. 가장 앞쪽에는 전화로 망가진 폐허가 있고, 중앙에는 꽃이 핀 전원, 그리고 원경에는 웅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다.
'그 사진에 응축되어 있는 어두운 과거로부터 밝은 미래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최후의 숙제'에 대한 답을 모두가 찾아 나가고 싶다'는 가타오카. 영화는 6월에 완성되고, 7월 5일에 공개된다. 엔딩롤의 '감독'에는 긴지, 겐타 두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들어갈 예정이다.


리뷰 "후카사쿠의 유작! 정수를 담은 영화!"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마지막 작품 <배틀로얄>의 속편. 전편에서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가 테러리스트로서 파괴 활동에 나선다. 정부는 테러 대책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문제아들이 모인 중학교 한 반 아이들을 나나하라를 죽이는 전쟁으로 내몬다.

속편인 <배틀로얄2:진혼가>는 사실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단 하루만 참여한 영화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쓰러져 세상을 떠나 킨지 감독의 뒤를 이어 아들이자 영화의 프로듀서였던 겐타(健太)씨가 감독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영화이다. 그의 영화가 지향했던 모든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후카사쿠 영화의 정수란 먼저 폭력이다. 폭력은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강력히 끌어당긴다. 9.11 테러 이후의 세계를 테러리스트의 시점에서 본 것도, 중학생끼리 전쟁을 하게 해 서로를 차례차례 죽이게 하는 전개 자체가 폭력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또한 2인 1조가 되어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사람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룰에 의해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영화의 전반부는 전쟁의 횡포와 비참함을 일깨운다. 다음은 액션. 총격전, 폭발과 격렬한 움직임을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로 쫓는 것 또한 킨지 감독의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킨지 감독을 느끼게 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반골정신.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지배와 일본의 복종을 비판하기 위해 감독은 나나하라로 하여금 "세상은 하나가 아냐! 63억의 평화와 정의가 있다!"고 절규하게 한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어른들의 분별과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지배와 억압을 없애기 위해 일어선다.

과격하다는 점에서는 킨지 감독의 영화이지만 아무리 겐타 감독이 아버지의 유지를 그대로 이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점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정의와 행위의 정당성을 고려하는 태도이다. 킨지 감독의 작품에서는 폭력 속에서 선택하게 되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 폭력에 대한 혐오스러움 만이 여기저기 분출된다. 하지만 이번 속편에서는 전쟁을 남의 일로만 체험했던 30대 겐타 감독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영화 내내 이성의 눈이 동작하고 있다.


Special 신세기 테러대책특별법, BR2 법은 무엇인가.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정치, 경제,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어느 군사대국'의 '글로벌리즘'이라 불리는 독점적 권력은 빈부의 격차에 고민하는 후진국 입장에서는 증오라고도 말할 만한 적의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전세계가 반발하는 테러의 위협에 떨고 있던 200X년의 12월, 반BR법조직인 와일드 세븐에 의해 수도붕괴 테러가 발생했다.

이것을 우려한 여당 테러대책본부는 같은 연맹국인 '어느 군사대국'의 요청을 받고 미성년자들에 의한 테러문제를 심의하기 위해서 문화과학부와 긴급토의를 한다. 임시 아동테러문제심의회를 소집하고 BR법의 개정을 염두에 둔 법정비에 들어갔다.

이듬해 3월, BR법 제10조(BR2법 제10조와 거의 같은 의미)에 기초를 두어 동심의회로부터의 BR법 개정안의 답신을 받고 임시국회에서 BR법의 일부개정을 신속하게 승인. 같은 해 4월1일, 정부는 신세기 테러대책특별법(통칭 BR2법)을 공포, 시행.

이것을 받은 BR2법 집행위원회가 발족했다. 같은 해 6월, 수도붕괴테러 용의자 그룹이 섬(통칭 전함섬. 센간지마. 戰艦島) 남쪽해안으로부터 상륙했다는 것을 확인. 자위대 해군, 해상보안청에 의해 즉시 주변해역을 폐쇄했다. 그리고 다음 번 BR대상 학급이었던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B반이 BR2 제1회 대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결의되었다.


감독 - 후카사쿠 긴지
 

1930년 7월 3일생.
53년에 도에이 입사.
61년 치바 신이치가 주연한 <풍래방(風來坊)탐정 붉은 계곡의 참극>으로 감독데뷔.
73년에 스타트한 <의리없는 전쟁>시리즈로 영화계에 선풍을 일으키면서 '액션의 거장'이라는 이름을 굳힘.
82년 <카마타 행진곡>으로 각 영화상을 독점.
최근작으로는 <언젠가는 반짝반짝 빛날 날> (92), <충신장외전 시부야 괴담>(94), <장난감>(99)등이 있다.

그만의 다이나믹하고 폭력적인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나 '존 우' 등 해외의 감독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배틀 로얄>(00)에서는 폭력묘사 때문에 R15 등급을 받는 등 공개 전부터 화제를 일으키며 대히트를 했다. 2003년1월12일 세상을 떠났다.


감독 - 후카사쿠 겐타
 

1972년 9월 15일생.
아버지이자 영화감독인 긴지의 영향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촬영현장에 익숙한 생활을 했다. 세이죠 대학 문예학부를 졸업한 후 청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그 후 도에이 텔레비전의 프로덕션에서 조감독이 되었고, 이후 프리랜서 조감독으로서 <몸도 길도>, <소나기 일지>, <장난감> 등의 작업에 참가했다.

<배틀 로얄1>에서는 프로듀서&각본을 담당했다.
이번 작품은 아버지인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최후의 뜻을 이어받아 각본&감독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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