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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아바론 Avalon 2000> 2000년, 일본, SF, 106분 감 독 : 오시이 마모루 |
현실과 가상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답은 reset. 가상세계에서는 자신의 상황, 고통, 상처, 심지어
목숨까지 되돌릴 수 있다.
뛰어난 플레이어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얻게 되는 불사(不死)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일단은 영화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 "현실과
상상을 어떻게 구분한다는 거지?"
영화는 가상현실에서의 전투씬으로부터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설정되어진 클래스(전투에서의 역할 및
캐릭터)에서 실력과 기술을 닦아 가상공간에서 전투를 전개하고, 적을 무찌르면 포인트와 플레이어의 레벨업에 이용되는 커리어를
얻으며 게임은 자동 종료된다. 일종의 RPG(Role Playing Game)로 플레이어는 게임 단말기가 있는 지국에
모여 서버 안의 가상전투 필드로 접속, 게임을 하게 된다.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가까운 미래, 현실에서의 절망을 잊으려는 듯 젊은이들은 이 게임에 열중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 게임을 '아바론'이라고 부른다.
'아바론'이란 켈트족의 전설에 의하면, 아더왕이 죽은 뒤에 9명의 여신의 안내를 받아 갔다고 하는 서쪽바다의 극락섬으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안식의 땅, 사과나무가 만발한 낙원을 말한다.
즉, 아바론은 죽음이 없는 윤회의 세계, reset이 가능한 컴퓨터 게임의 세계와 일맥상통하며, 현실같은 게임의 세계,
가상현실 세계를 의미한다.
주인공 애슈는 최강이라고 소문난 플레이어로 예전에는 무적이라 소문난 '위저드'라는 파티 (가상전투 아바론에서 무리를
지어 플레이하는 팀)의 멤버였으나 의문의 해산이후 솔로 플레이로 레벨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어느날, 애슈는 '위저드'의 멤버였던 스터너와 재회하고 '위저드'의 리더였던 머피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머피는 '아바론'에 존재한다는 최종단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던 클래스SA (Special
A)에 도전했다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미귀환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임의 마지막 단계인 클래스SA는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리얼한 가상현실의 단계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곳이다. 즉 클래스SA에서는 reset이 통하지 않는, 현실과의 구분이 모호한 세계인 것이다.
애슈는 위저드 해체의 비밀과 클래스SA의 궁금증 때문에 게임의 마지막 단계인 클래스SA에 도전하고
마침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곳곳에서 현실과 가상세계를 대비시키면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 맞춰볼래?'하며 호기심에 발동을 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많은 힌트가 제공되듯이 여러 가지 암시를 뿌려두고서 말이다.
그 힌트 하나는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reset이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가장 커다란 징표이며,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그것.
가상현실에서 reset이 가능한 것처럼 화면 역시 여러 번 reset된다.
애슈가 '아바론'지국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차 속의 풍경, 고스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애슈의 얼굴이 reset된다.
현실의 반복성, 클래스SA에서의 reset불가.
또 다른 힌트는 가상현실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귀환자. 그들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식물처럼 빛과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 미귀환자일까? 아니면 이미 피안에 도달한 사람들일까?
클래스SA에 존재해 있는 머피가 그랬듯이, "상상과 현실에 현혹되지 말라"는
대사가 그랬듯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단단하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현실인가, 현실과 가상현실이 진정 따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감독은
끊임없이 관객을 의심시킨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연유되는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질문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답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직접 한국을 방문했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영화의 주제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을 향해 "영화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느끼라"면서 관객 각자의 몫으로 떠넘겨버렸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면, '공각기동대'의 그 충격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굳이 골라보아도 좋을 그런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애니메이션 같은 실사영화, 웅장한 배경음악과 이국적인 화면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지만 머리만은 계속해서 지끈거리게 만드는 고약한 영화임을 전제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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