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치유의 판타지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배경으로 한 <가을로>는 백화점 붕괴사고로 연인을 잃은 뒤 상실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잔잔하게 담아낸다.

사법연수생 현우(유지태 분)는 오랜 연인 민주(김지수 분)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준비를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약속을 한 현우와 민주. 현우가 일하는 곳에 찾아온 민주에게 현우는 일이 남았다며, 혼자 가기 싫다고 기다리겠다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백화점을 보낸다. 일을 끝낸 현우는 급한 걸음으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백화점으로 가지만, 순간 바로 눈앞에서 그녀가 있는 백화점이 처절한 굉음과 함께 그의 눈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누구보다 소중했던 민주를 잃어버린 지울 수 없는 아픔.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자책감으로 현우는 지난 십 년을 보냈다. 항상 웃는 얼굴의 해맑은 청년이었던 현우는, 이젠 그 웃음을 잃어버린 차갑고 냉정한 검사가 되어버렸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죽은 민주를 잊지 못하고 급기야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현우는 '신혼여행지'라는 그녀의 다이어리를 건네 받고 그녀의 흔적을 찾아 다이어리에 적힌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중 현우는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마주치고 마치 민주로 착각할 만큼 미스터리 같은 세진을 만난다. 자꾸 마주치는 우연으로 동행을 하게 된 그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세진은 결국 현우에게 백화점이 무너진 그때, 민주와 같은 곳에 매몰되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밝힌다.

영화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라는 사회적 소재를 멜로드라마 틀 안에 담아냈다. 민주는 이미 죽었지만 민주의 내레이션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 인물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마치 세 인물이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입체적인 구성이 매력적이며 이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사랑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게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은 잔잔하면서도 가슴 시린 감동을 자아낸다. "그 길의 추억을 안고 새 길을 달렸으면 좋겠다" 민주의 바램처럼, 떠나는 민주를 바라보는 현우와 세진의 판타지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사랑을 예고하는 결말도 인상적이다. 특히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세 주연배우의 깊은 감정연기는 칭찬할 만다. 특히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상처를 보여준 엄지원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마력은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여행을 떠나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영화 <가을로>는 오늘 개막작으로 첫 상영된 뒤 13일과 19일 다섯 차례 더 상영된다. 극장 개봉은 오는 10월 26일.

2006.10.12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