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 대작전-아라한 장풍 대작전

태권도가 아니라 도시 무협이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77년 삼도필름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마루치 아라치의 부리부리한 큰 눈동자와 태권도 동작은 당시 나를 포함한 어린이들의 무한한 성원을 받았었다. 거기에서 이름을 따온 도시 무협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이름에 걸맞게 도시에서 벌어지는 무협액션으로 장풍과 무술이 총망라된다.

깡패에게 얻어터지는 소심한 말단 순경 상환(류승범)은 소매치기를 쫓아 빌딩을 넘나들던 아라치 의진(윤소이)의 장풍을 받고 기절하게 된다. 의진의 집에서 만난 무술의 달인이자 도인(칠선-안성기 등)들은 상환에게 이 세상을 구원할 마루치가 될 기운이 보인다면서 그에게 무술과 장풍 수련을 받을 것을 권한다. 하지만 엉뚱한 노인들이라며 상환은 집을 빠져나온다. 이후 동네 양아치에게 무지하게 얻어맞고 나서야 상환은 그들을 다시 찾아가게 되는데..이후 상환이 마루치가 되어서 아라한의 무한의 경지에 오르게 되고, 그가 칠선들 중 하나인 반대파 흑운(정두홍)에 맞서 싸우게 되면서 마지막 결전에 임하게 된다.

한국 영화 표현의 폭을 넓혔다

이 빌딩 저 빌딩을 넘나드는 마루치 아라치의 경공과 심지어 빌딩 창문 안으로 뛰쳐 들어가는 액션까지 한국영화는 이제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으로 거의 모든 표현이 가능해진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역대 한국영화 중 가장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감독의 설명은 빈말은 아니다. 액션과 무협 그리고 무술과 장풍의 표현에 최대한 공을 들였고 이에 맞춰 류승범의 능청스런 연기도 잘 맞물려진다. 류승범은 성룡도 주성치도 아닌 새로운 신세대 캐릭터의 창출을 예고하는 듯 멋지게 액션 장면을 소화해낸다.

하지만 아쉽다-새로움의 부족, 새술은 새부대에 담았어야...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보고 있으면 무수한 영화들이 떠오른다. 흑운이 갱에서 나오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하이랜더"를, 흑운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반지의 제왕"을, 손바닥 자국이 차에 남는 장면은 "슈퍼맨"을, 도시에서 도인들이 살고 있다는 설정은 "소림축구"를, 유리창 깨지는 액션은 "성룡 영화"를, 세상을 구원할 그를 찾았다 믿는다란 대사는 "매트릭스"를...이처럼 무수한 영화의 한 장면들이 오마쥬인지 패러디인지 모를 장면으로 끼어져 있다. 심지어 아라한 경지에 오를 때 날라 오르는 돌은 만화 "열혈강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영화는 관객들이 키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높고 새로움을 갈구하는 관객들이 얼마나 수준이 높고 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인지는 인터넷에 오르는 영화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 거리와 신기한 소재의 영화를 찾아 고르고 헤맨다. 한국에서 히트한 모든 국산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의 답습이 아니라 한국적인 새로운 소재거리를 개발한 영화라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고 새로움이 없으면 작가는 펜을 들지 말고 감독은 찍지 말아야 한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이런 점에서 아쉽다.

좋은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한국만의 독창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으면...'와호장룡' 같은 새로운 유형의 무협을 창출해 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