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사람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지난 2002년 영화 <색즉시공>으로 막강호흡을 자랑하며 420만의 흥행파워를 과시했던 임창정·하지원, 그리고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다시 뭉쳐 기대를 모았던 영화 <1번가의 기적>은 철거를 앞둔 달동네 '1번지'를 중심으로 재개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침입한 철거깡패 필제와 가나함과 역경 속에서도 저마다 별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경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천하의 나쁜 노무새끼지만, 속은 따뜻한 철거깡패 필제(임창정 분)는 주민들을 위협해 철거 승낙 도장을 받으려왔지만 승률 0%지만, 병든 아빠를 위해 동양챔피언을 꿈꾸는 여자 복서로 명란(하지원 분)을 비롯해 집 나간 엄마 대신 할아버지와 살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거지라고 놀림받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어린 남매, 하늘을 날고 싶다고 시도 때도 없이 필제의 컨테이너 지붕 위로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는 엉뚱한 아이까지 그들의 뒤치다꺼리에 바쁘다. 한편 달동네를 벗어나고자 다단계에 빠진 선주는 매일 마주치는 자판기 총각 태석의 구애가 싫지 않지만,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서서히 명란과 아이들과 동화되어 가는 순간, 필제 조직의 다른 철거깡패들이 1번가에 들이닥치면서 마을의 철거는 현실화된다.

'철거하러 온 철거깡패가 순박한 사람들에게 동화된다'는 설정이 얼핏 뻔한 이야기를 예상케 하지만, 철거깡패의 등장은 이야기를 단초를 제공할 뿐 사회적 약자인 달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들의 희망과 좌절과 슬픔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 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여기에 인간미 넘치는 임창정의 코믹연기와 하지원의 변신과 열연, 특히 경상도 사투리 남매의 앙증맞은 코믹연기가 따스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순박한 남자로 변신한 이훈의 연기도 볼만하다. 특히 어린 남매가 동네 아이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고, 집을 빼앗긴 아줌마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명란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눈물이 절로 나오게끔 한다. 철거되는 집을 뒤로하고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라며 노래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긴다. “진정성을 가지고 가슴으로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판타지적인 결말은 아쉽다.

따스한 웃음과 감동이 살아 있는 영화 <1번가의 기적>은 15세 관람가로 2월 15일 구정 시즌 개봉한다.

2007.1.26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