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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창동 감독과 16년 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하는 배우 윤정희와의 만남, 그리고 올해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초청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시>는 간병인으로 일하며 이혼한 딸이 맡겨놓은 중학생
손자를 돌보며 고단한 생계를 살지만, 소녀 같은 감수성을 간직한 미자(윤정희)가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고 난생 처음으로 '시' 쓰기에 도전하던 중 집단 성폭행을 당해 투신 자살한 한
어린 소녀의 죽음에 손자가 관계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합의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가해자 부모와
학교측에 따라 돈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원하는 노인에게 몸을 내어주게 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맺힌 응어리를 쓰지 못해 끙끙댔던 시 속에 담아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10대 남자아이들의 죄의식 없는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는 무거운 내용을 소녀 같은 60대
노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특별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관객들과
질문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139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속에서도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으며 시를 쓰기 위해 끙끙대는 미자의 모습을 통해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라는 게 과연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으로 일상을 그려내는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
식탁 위에 놓여진 죽은 소녀의 사진을 보고도 태연하게 밥을 먹은 손자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섬뜩하며, 손자를
대신해 죽은 소녀의 아픔을 느끼며 홀로 흐느끼고 경찰에게 끌려가는 손자를 보고도 그저 배드민턴을 치는 미자의
모습은 왠지 모를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치매) 초기진단을 받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
마지막 엔딩은 긴 여운을 남긴다. 16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와 평범하면서도 엉뚱한 미자와 한 몸이 되고자
했던 윤정희의 노력과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외손자에게 오열하는 연기와 김희라와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욕조 정사신이 인상적이다. 단 한곡의 음악도 사용하지 않은 채 강물소리와 일상적인 소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렵다"는 대사가 오랜
기억에 남는다. 윤정희 외에 김희라, 안내상, 김용택 시인 등이 출연한다.
2010.04.27 /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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