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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출의도..
원래 장르영화에 대한 지독한 애착을 갖고 있다. 뭔가에 갈급해져서 자충수를 두는 우매한 사람들부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예 정신줄을 놓고 사는 쉬운 사람들. 하지만 그 마음속엔 악마들이 우글거려 서로에게 파멸의
화학반응을 빚어내는 그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쁜놈이 더 잘잔다> 도 마찬가지로 저열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모여 흥청망청 과잉감정을 던지고 받는 이야기다. 여기에 예전부터 좋아했던 장르인 범죄라는 실마리를
쭉 늘어뜨려 놓은 것 밖에 없다.
<나쁜놈이 더 잘잔다>가 내 머리 속에서 피어 오르던 그 시초의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내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20대 초, IMF라는 거대괴수를 만났다. 그 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뭉쳐진
근육 같은 경직된 조직에 몸을 부대꼈지만, 처음으로 이길 수 없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심을
느꼈다. 대학은 나오면 뭐하나? 취직도 안 될 텐데. 불행히도 IMF는 극복되었다고 방그레 웃으며 아나운서가
뉴스에서 선언했어도 청년들에겐 그 때의 괴물의 그림자가 아직도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꼈던 절망감과
공포. 그것은 더욱 진화된 모습으로 지금의 청년들에게 드리워져 있다. 그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한국이란
사회가 주는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회피하려 늪 구덩이 바닥까지 폐 속에 진흙을 채워가며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했다. 사람들을 앉혀 놓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살만 한가? 우리는 지금 이 꼴로 산다.'
2. 로케이션..
세트를 짓는 것은 예산대비 낭비라 생각해 아예 아현동 철거지역을 수소문 해 한 건물을 세트장처럼 빌려 썼다.
촬영 종료 시점 후 1주일 후에 철거될 건물인지라 재촬영에 대한 공포로 벌벌 떨긴 했지만. 촘촘하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좋았다. 그 다음 많이 촬영한 양평은 영화의 제작자이시기도 한 김태식 감독님의 집이 있는 동네로
영화가 전체적으로 너무 회색빛 짙은 도시 사이로 보이는 우중충함에 지배 될 것 같아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푸르른 시골인 양평에서 로케를 진행했다. 그리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허허벌판은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도
등장했던 화성의 공룡알 화석지로 그 황량함과 이국적인 맛에 기분이 좋아져 꼭 여기서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일 먼저 픽스 된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메꿔 만든 땅이라 그런지 풀들도 듬성듬성 사막처럼
흉물스럽게 나있고 무엇보다 지평선이 사방으로 펼쳐진 모습이 좋아서 택하게 되었다.
3. 김태식 감독 그리고 나..
김태식 감독님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일단 재빠른 진행이었다. 안 되는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순간적으로 생각해내어 빠른 판단을 하는 것 (조감독 시절엔 무척이나 땀 나는 진행이었지만 결국 현장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현장에서 보니깐 조감독이 못 따라
올 정도로 광속진행 되더라. 프러덕션 진행에 있어 시간 누수 없이 모여진 가족들을 최대한 이용해 먹는 것이
연출자의 기본 도리가 아닌가 감독님에게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고.
준비하는 과정에선 당연히 김태식감독님이 제작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교류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운하리만큼 간섭을 많이 안 하셔서 고마운 점도 많았다. 일단 김감독님 성격상 뭔가를 강요하는 스타일은
아니시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항상 주시려 노력하셨다. 무척이나 고마웠던 점이다.
4. 연기연출..
연기 연출함에 있어 첫 째로 생각했던 것은 영화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하는 날 것의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는
가이드라 생각해라 대신 그 안에 있는 인물과의 상성에 대해 보다 연구하고 연기해라..라고 많은 주문을 했다.
개인적으로 스크린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티 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저열한
존재들이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냥 주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편하게 연기하라고 시켰는데 이게 오히려 더
힘든 것이구나 하는 것을 나중엔 깨달았다. 하지만 각기 자기 캐릭터의 옷을 잘 입어주었고 (프리프러덕션에서
내가 욕심을 많이 내서, 배우들 리딩을 엄청 많이 했다.) 결국 만족할 만한 연기를 얻어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배우들간의 친화력, 나와의 친화력 그리고 캐릭터와의 친화력을 구성하기 위해 프리프러덕션 동안
리딩을 무려 10회 정도 진행했다. 변명은 '회차가 짧으니 미리 연습해서 현장에 가자.' 였지만 일단 우리가
소통이 되어야 캐릭터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겠지 않나해서 내가 욕심을 낸 부분이었다. 다행히
어느 배우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았고 여러 번 서로 얼굴보고 작품 얘기 하면서 많이 친밀해 졌다.
서로 기탄없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으며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 마다 배우들은 점점 캐릭터에 빠져들게 되었다.
5. 차기작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차기작에 대한 고민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계속 이런 계통으로 남자들의 겨드랑이 땀내 같은 마초물을 쓰느냐와
그래도 좀 나이도 드는 만큼 친관객적인 말랑한 이야기들을 쓰느냐... 최근에는 두 작품을 번갈아 같이 쓰고
있다. 하나는 '나쁜 놈...' 보다 더 강한 느와르 물이고 다른 하나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멜로 코미디이다. |